진도에 거주하는 세월호 활동가 김남용씨(52)는 세월호 기억관을 ‘생활의 일부’라고 했다. 단원고 2학년 8반 우재 군의 아빠 고영환씨가 팽목항을 떠난 후에도 그는 이곳을 지키고 있다. 아픔이 너무 컸던 공간이기 때문에 기억관을 찾는 사람들이 위안을 얻고 가는 장소가 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12시 즈음 점심을 먹는데 전원 구조라고 TV 자막이 나왔어요. 배가 좌초되고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물에 떠 있다가 구조됐나 보다 생각했지요. 그런데 오후가 되면서 뉴스 멘트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다음 날 팽목항에 왔을 때는 아비규환이었어요. 믿기지 않았어요. 워낙 큰 배니까 대부분 살아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가졌거든요. 그런데 점점 수습되는 분들이 나오면서 이제까지 상상 못했던 그런 참사가 벌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지역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도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래서 청년단체, 농민회 등 지역 단체를 통해 수습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죠. 미수습자들이 수습될 때까지 분향소를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출처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08/0000034356?sid=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