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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언어의 정원> 감상문
게시물ID : animation_1008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검은날개
추천 : 8
조회수 : 1725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08/15 00:44:26
언어의 정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최신작 <언어의 정원>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아들과 손을 잡고 온 母子를 봤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센티미터>에서도 그랬지만 이 애니메이션 역시 어른들을 위한 동화였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의 손을 잡고 영화관을 온 아이가 어떤 느낌으로 이 이야기를 감상 했을 지 궁금하다.

<언어의 정원>은 단순히 '만화니까' 혹은 '지브리 애니메이션 정도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관람하려 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추해 주고 싶다.
러닝타임이 46분 밖에 되지 않는 애니메이션이지만 
하루 종일 생각을 해도 해답이 나오지 않는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생각할수록 깊은 여운만 남는다.
즉 감상 후에도 끊임없이 의미를 찾아 뇌를 활성화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당신의 마음 속을 촉촉하게 적시고 싶다면 적극 추천을 해 주고 싶다.
뿐만 아니라 아주 잠시지만 마음 속에 물이 꽉 차오르는 것도 느낄 수도 있음을 알리는 바이다.

사실 이 영화에 가장 큰 단점은 러닝타임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디즈니, 지브리, 픽사 외에는 제대로 흥행한 적 없는 장르가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하다 못해 자국에서 손수 제작한 애니메이션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런 애니메이션 장르인데,<언어의 정원>은 러닝타임이 46분 밖에 되지 않는다.

최근 400만을 돌파한 <더 테러 라이브>도 90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다.
과거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90분이라면 그래도 준수한 편이였다.
하지만 근래에 나오는 영화의 러닝타임은 기본이 2시간을 훌쩍 넘긴다.
결국 <언어의 정원>은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예능 한 편, 드라마 한 편에도 미치지 못하는 러닝타임이기 때문에 관객은 선택에 있어 용기(?)를 내야 할 수도 있다.

이것은 마치 과자를 샀는데 질소가 과자보다 더 많이 들어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만일 이 과자가 최고급 산해진미라면 어떠할까?
1만원에 46분만 소비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지만
나의 감히 <언어의 정원>은 최고급 과자라 말하고 싶다.

러닝타임이 짧아도 여운이 길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타 영화보다 러닝타임이 훨씬 길다고 생각한다.

먼저 영화 속에서 우리를 설레게 만들고 가슴을 따뜻하게, 시원하게, 촉촉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나온다.
그것은 '비'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과거 <초속 5센티미터>에서 '눈 = 그리움' 으로 표현했다.
하얀 눈이 쌓이 듯 자신의 추억도 시간이 지나며 점점 쌓여져 간다.
그리고 점점 사라지고 잊혀진다.
형태는 분명 남아있지만 너무 많이 쌓인 추억 때문에 
추억이 어디 있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초속 5센티미터>에서 이러한 모습을 '눈'으로 표현했다.

<언어의 정원>은 '비 = 설렘'으로 표현했고 말하고 싶다.
사실 '비'는 정서상 표현법이 '눈물, 슬픔'으로 해석 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지만 본 애니메이션에서는 '설렘'이라는 정서를 통해 '촉촉함' 이란 느낌을 유지시킨다.
즉, 누군가를 기다리는 '설렘' 
그 '설렘'을 이루고 연결시키는 매개체는 '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가 내리면 관객의 마음은 '촉촉하게' 변한다.
물론 이러한 부분은 극 중 주인공들과 상황을 함께 공유할 때만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그 상황을 공유 받는다면 분명 아주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싶다.


<언어의 정원>에서 촉촉함이란 느낌을 통해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장면이 있다.
그 부분은 바로 유키노(여자주인공)가 놓쳐서 깨진 콤팩트다.
콤팩트가 깨진 모습은 마치 갈라진 땅과 흡사하게 보인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 콤팩트를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시작된 갈라진 땅의 모습처럼 묘사해 놨다.
이 장면은 '비'가 내리지 않아 유키노의 마음 속에 가뭄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키노의 마음 속엔 가뭄이 있었을까?
여기서 중요한 두 번째 매개체가 나온다.
그것은 바로 '구두'다.
'구두'는 출퇴근을 함께하는 어떻게 보면 '어른들이 출근할 때 신는 신발'로 인식이 되어져 있다.
물론 근래에는 패션에 의해 많이 신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도 구두는 '어른들의 신발'이다.
애니메이션 안에서 유키노는 스스로 16살 소녀에서 정체되어 있다고 말을 한다.
마음은 아직 16살 소녀이지만 몸이 커지고 나이가 먹으면서 20대 후반 처녀로 성장한 것이다.
그녀의 외형만 변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20대 후반임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다.
결국 그녀는 어른이 될 것인가? 아니면 16세 소녀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 해야 하는 상황이 점점 다가오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이야기 마지막에 그녀가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세 번째 매개체는 바로 유키노의 미각이다.
초콜릿 맛만을 느끼는 유키노.
그렇기 때문에 초콜릿을 엄청나게 가지고 다니고 초콜릿맛 맥주를 마신다.
아직 성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다카오(남자주인공)을 만나면서 그녀의 미각이 점점 돌아온다.
그러면서 맥주를 마시다가 커피를 마시고 그 이후에는 차를 마시게 된다.
점점 성인이 되어감을 의미하는데, 짧은 소견으로는 아마 복선이 아닌가 싶다.
맥주 - 커피 - 차 로 변하는 입맛은 결국 다카오는 청소년이고 유키노는 성인임을 의미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이와 동시에 치유의 작용도 한다.
초콜릿 맛만 느끼는 그녀가 커피맛도 느끼고 차 맛도 느낀다.
이 이후에는 도시락을 쌓서 먹을 정도로 입 맛이 다채로와 진다.
그녀는 점점 아픔을 이겨나가고 있는 것이고 그 대상자가 바로 다카오인 것이다.

네 번째 매개체는 동거다.
<언어의 정원>에 나오는 모든 성인은 동거를 한다.
어머니도, 형도 동거를 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스토리를 가진 성인 중 유키노만 동거를 하지 않고 홀로 산다.
이 서사구조는 형의 독립으로 인해 다카오가 홀로 살아가게 되는 부분과 매칭이 된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어린 소년, 소녀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잠시 다카오에 대해 언급해보려 한다.
다카오는 유키노를 만나면서 성인이 되고자 한다.
구두를 신은 성인 유키노, 구두를 만드는 청소년 다카오
다카오는 구두라는 매개체를 통해 성인이 되고자 하고 성인이 되서 유키노와 함께 지내기를 희망한다.
직접 만든 구두를 신고 다니면서 말이다.
다카오가 신고 다니는 구두는 마음은 이미 성인임을 의미한다.
이 부분은 학교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 부분에서 보여진다.
고학년과의 대립 속에서 저학년인 다카오가 보여준 모습은 훨씬 성인다운 모습이다.
다른 이들은 울기만 할 뿐이지만 '복수와 응징'이라는 것을 진행하려는 그의 모습은 이미 '행동과 책임을 알고 있는 사람'임을 훌륭하게 보여준다.

포스터에도 나오지만 <언어의 정원>은 사랑이 시작되기 전의 사랑 이야기를 말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즉 속된 말로 썸타는 남녀의 이야기다.
정원에서 만나는 두 남녀는 '비'를 통해 만나고 언어가 아닌 마음으로 대화를 한다.
'비'는 두 사람의 상처를 씻어내고 치유와 사랑을 꽃 피운다.
그리고 '비'는 관객의 마음 속에 스며들어 촉촉한 여운을 만든다.
<언어의 정원>은 작은 떡잎이 비를 맞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가진 애니메이션이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도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촉촉한 빗방울에 감정이 넘쳐버리는 것을 느꼈으면 한다.


- 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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