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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당의 도술과 덕천가강(도쿠가와이에야스)과의 담판
게시물ID : mystery_63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포스트댓
추천 : 3
조회수 : 2751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07/10 23:32:16
사명당의 도술 

전승주체 : 진안군 부귀면 거석리
전승 지역 : 전북 / 진안군 / 부귀면

사명당은 서씨로 석가여래 아래에서 도술을 배웠다고 한다. 사명당이 조선의 사신으로 일본을 가게 되었다. 조선에서 사신이 간다고 하자 일본놈은 그를 죽이기로 결정하였다. 일본놈은 사신이 와있는 동안, 그가 거처할 수 있도록 집을 새로 지었다. 그 집은 다른 집과 달리 쇠로 집을 지은 다음 일반적인 집처럼 교묘하게 위장을 해놓았다. 일본에 도착한 사명당이 잠을 자기위해 그 집으로 들어가자 밑에서 불을 때기 시작하였다. 쇠로 지은 집이라 금새 뜨거워지며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사명당이 죽었을 것으로 생각한 일본놈들은 방문을 열어보았다. 방문을 열자 사명당이 죽어있기는 커녕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하얀 수염밑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사.jpg
사명당은 "아 일본이 따숩다더니 추워 죽겄다. 불 좀 더 때라"고 하였다. 그 모습을 본 일본놈은 겁을 먹고 어쩔줄 몰라하다 자복을 해버렸다. 

그 후 사명당은 일본놈들에게 여자 인피가죽 5백장과 남자 불알 세 말, 남자 인피가죽 3백장을 바치라고 하였다. 그의 명령을 받은 일본놈들이 인피가죽을 말리는데, 사명당이 도술을 부려 매일 비바람이 몰아쳤다. 비를 맞은 가죽은 마르지 않고 썩기만 하였다. 일본놈들은 계속해서 새가죽을 말려나갔다. 그리하여 결국 한 사람만 남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일본의 시조라고 한다.


임진록의 사명당 이야기 줄거리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13년이 지난 뒤에 평안도 안락사(安樂寺)에 사는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상경하여 왕을 만나서, 왜구의 재침을 막을 방안을 말하였다. 그리하여 서산대사의 제자인 사명당(泗溟堂) 유정(惟政)을 왜국에 보내어 강화(講和)하게 하였다.
  사명당이 생불(生佛)이라는 소문을 듣고 왜왕은 백 가지 방법으로 그를 죽이려 하였으나 다 실패하였다. 왜왕은 하는 수 없이 부자지국(父子之國)을 맺는 항복 문서를 올렸다. 이에 사명당은 1년에 인피(人皮) 3백장, 동전(銅錢) 3천근, 목탄(木炭) 3천근 등을 조공한다는 약속을 받고 무사히 돌아왔다.



사명당(四溟堂)과 덕천가강(德川家康)의 강화담판 

◇ 덕천가강(德川家康 도쿠가와이에야스): 1542(중정 37년).12.26. ~ 1616(광해군 8년).4.17. 
◇ 사명당(四溟堂): 1544(중정 39년).10.17. ~ 1610(광해군 2년).8.26. 해인사 입적(海印寺 入寂) 
* 1604년 2월 오대산에서 스승 휴정의 부음을 받고 묘향산으로 가던 중 선조의 부름을 받고 
조정으로 가서 일본과의 강화를 위한 사신으로 임명받아 1604년 8월 일본으로 가서 8개월 
동안 노력하여 성공적인 외교성과를 거둠 

☞ 우리는 어릴 적에 사명당의 설화를 많이 들었다 무쇠로 만든 방에 불로 달구어도 오히려 
춥다고 하여 사명당 사초방이라는 말이 생겼으며 또한 여러 가지 말이 있었다 
그것은 일본이 여러 가지로 시험을 하였던 것이며 우리에게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말한 것이다 그러면 과연 사명당이 어떠한 말을 하였는지 역사적 사실을 알아봅시다 

◆ 담판 제1일 
* 회담일자: 1605년 (선조38년) 3월 20일 
* 회담장소: 복견성(伏見城) 
* 담화내용 (담판 당시 덕천가강은 63세 사명당은 61세) 
- 덕천가강: 오랫동안 비국에 오셔서 고생하셨습니다 
▶ 사명당: 예 많은 폐를 끼쳤습니다 
- 덕천가강: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귀국과 비국은 종전에 인호(鄰好)의 의를 맺어왔더니 불행히 10여년 전에 병란으로 말미암아 양국이 그 원수를 풀지 못하고 있으니 천만유감입니다 이번에 대사께서 과거의 원한을 풀어버리시고 양국의 인호를 약속하시기 바랍니다 
▶ 사명당: 원수를 풀자 좋은 말이다 나 개인의 원수라면 백 번 풀고도 남음이 있겠도다 그러나 우리 국가민족의 천추의 원한 그것을 나 한 사람이 어찌 풀거나 맺을 수가 있겠는가 
- 덕천가강: 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대사께서는 한 사람으로서 비국에 오신 것이 아니고 국왕의 대명을 갖고 오셨으니 온 국가민중을 대신하여 원수를 풀자는 말씀입니다 
▶ 사명당: 그 원수가 우리의 말과 약속으로 풀리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아비와 형을 죽인 원수가 있다면 또한 그 사람의 부형을 죽임으로서 원수가 풀어진다고 할는지 그래도 그 원수가 아주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이 우리 백성의 부모형제와 처자를 죄없이 죽였으니 그 원수가 어찌 말로 풀어질 것인가 
- 덕천가강: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원수라는 말이 났으니 말씀입니다만 일본이 조선을 침범한 것은 지나간 풍태합의 일입니다 지금 풍태합이 이미 세상을 등지고 그 때 싸우던 사람들은 다 물러섰으니 우리와 귀국은 아무 원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원수를 풀 것도 없습니다 
▶ 사명당: 그 것이 무슨 말인가 그 때 조선을 치고 우리 백성을 죽이고 종묘사직을 기울게 하던 적이 귀국에 꽉 차 있지 않은가 그것을 어찌 모른다 하고 원수를 풀라 하는 것인가 
- 덕천가강: 그러나 지금 그 사람들과 우리 막부와는 서로 관계가 없으니 우리 막부를 상대 한다면 그 전 일을 채근하여서는 안 됩니다 
▶ 사명당: 그건 안 될 말이다 그렇다면 장군은 전날 풍신수길이 한 일을 옳다고 보는 것인가 
- 덕천가강: 소관은 그 때 일을 반대하였습니다 
▶ 사명당: 들으니 장군도 뒤에서 군사를 조종하고 끝까지 일을 같이하였다던데 
- 덕천가강: 아닙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소관은 그 때 관동에 있어서 관서지방에서 풍태합이 하는 일에 조금도 참례한 일이 없습니다 관동군사는 한 사람도 조선에 건너 간 일이 없습니다 
▶ 사명당: 그러면 어째서 장군은 수길의 일을 말리고 방해하지 못하였는가 
- 덕천가강: 우리는 끝까지 반대하며 말리기도 하였습니다 병신년에 천사(天使)가 왔을 적에 풍태합이 조선을 재침하겠다고 할 적에도 극력 말리었습니다 그러나 듣지 않고 재거한 것입니다 
▶ 사명당: 그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장군이 병권을 잡고 전국을 지휘하고 있지 않은가 
- 덕천가강: 예 그렇습니다 
▶ 사명당: 그러면 그 때 군사를 끌고 조선을 침범하여 두 나라 백성을 못살게 하던 그 죄인들을 어찌 그냥 둔단 말인가 장군이 그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틀림없지 않은가 
- 덕천가강: 아닙니다 소관은 5년 전에 섹기게하라에서 석전삼성 소서행장 안국사혜경 등을 잡아죽이고 풍태합의 아들 수뢰(秀賴)를 잡아 두기로 하였습니다 이들은 다 조선을 침범한 괴수들입니다 

▶ 사명당: 그것은 서로 권리다툼으로 그 몇 죄인을 죽였다 할지라도 그 밖에 가등청정 흑전장정 도진의홍 와도직무 소조천융경 모리휘원 우희다수가 송포진신 등당고호 구귀가융 고교통증 세천충흥 협판안치 가등가명 모리수원 와도승무 등 범죄자 백여명을 어찌할 것인가 

* 이때 좌석에 참가하였던 모리휘원과 우희다수가는 깜짝 놀라고 덕천가강의 얼굴이 검게 변했다 
대사는 이어 아무 죄 없이 그 호랑이와 독사 아가리의 밥이 된 우리 민족의 원혼이 하늘 위에 검은 구름이 되고 땅속에 굳은돌이 되어 있도다 그 원한을 어떻게 풀어진단 말인가 

- 덕천가강: 그들은 당연히 잡아서 그 죄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형편으로 그들을 지금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대사께서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마음 으로 널리 용서하시고 다만 다음에는 그런 일이 다시없도록 약속하고 화의를 맺도록 합시다 

▶ 사명당: 안 되오 그것은 될 말이 아니오 그 죄악을 천지신명이 용서하지 않을 것인 즉 우리가 어떻게 용인 하겠는가 이 좌석에도 그 죄인들이 우글거리고 있지 않은가 모리휘원은 임진년에 제7진의 3만 군을 지휘한 자요 우희다수가는 제8진 1만 명을 지휘한 장수이다 

그러므로 이 말을 듣자 목이 자라목처럼 움츠러 들어갔다 

- 덕천가강: 자나간 일을 이제 캐봤자 별로 이 될 것 없으니 앞일만 이야기함이 좋을까 합니다 

▶ 사명당: 그것은 아니 될 말이오 지나간 일을 내버리고 어찌 오는 일만을 의논할 수 있겠소 
* 덕천 이하 4대로와 제장은 참선하듯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있었다 얼마 뒤에 가강은 입을 열어 대사를 바라보며 
- 덕천가강: 오늘은 이만 쉬도록 하시지요 하고 시종관을 시켜 대사를 사초방으로 안내 하였다 

◆ 담판 제2일 
* 회담일자: 1605년 (선조38년) 3월 21일 
* 회담장소: 복견성(伏見城) 
* 담화내용 
* 이 좌석엔 모리휘원과 우회다수가는 불참 

- 덕천가강: 이번에 대사님께서 만리창해를 건너온 것은 우리 두 나라의 복을 만들어내시기 위하심이니 널리 창생을 위하시어 과거의 죄악을 용서하기고 강신수목하시도록 하십시다 
▶ 사명당: 그 말씀 좋은 말이오 그러나 만고의 불공지대천원수를 나의 말로 풀어놓았자 우리나라 군신상하가 용인하지 않는데 어찌할고 

- 덕천가강: 양국의 장래를 위하여 그 원수를 잊어버리도록 대사의 위신으로 교화하시지요 
▶ 사명당: 양국의 장래를 위하여 원수를 잊는다 ....... 그것이 무슨 말이오 우리가 그 원수를 잊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장래가 불리하단 말인가 
- 덕천가강: 아닙니다 천만에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귀국에서 그 원수를 잊지 않고 우리를 항상 원수로만 대우하면 우리나라에 불리하단 말입니다 

▶ 사명당: 내 듣자니 장군이 가끔 우리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하는 말이 우리와 강화하지 않으면 또 조선을 치겠다고 여러 번 위협하였고 또 가끔 포로가 도망오는 편에 들으면 전선을 조성하고 군사를 모집하며 다시 조선을 침입하겠다고 하니 장군도 풍신수길과 같은 사람이 아니가 

- 덕천가강: 예 그것은 혹 대마도 사람들이 잘못 전하였거나 떠다니는 풍설을 전하 것이지 우리는 오직 통신강화만을 요구할 뿐입니다 
▶ 사명당: 귀국에서 우리나라를 또 침범하여도 좋으니 숨김없이 말하고 또 침범하여 보라 
- 덕천가강: 천만에 오늘 우리나라 일도 미처 수습하기 어려운데 어찌 외국을 침범할 생각을 내겠소 천만의 말씀입니다 
▶ 사명당: 장군에게 한마디 묻겠노라 풍신수길이 20만 대군을 동원하여 7년동안 우리나라를 침략하였는데 그 얻은 이익이 얼마나 되는가 
- 덕천가강: 소관이 생각해 볼 때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잃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수만의 생명과 허다한 재산을 상실하였으니 이익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나라 사람들도 풍태합을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원수로 생각합니다 
▶ 사명당: 분명 그러한가 
- 덕천가강: 예 분명 그러합니다 

▶ 사명당: 일찍이 일본보다 몇 십 배 강력한 수양제의 백만 대군으로 당태종이의 80만 대군으로 원나라의 40만 대군으로 침입하여도 오히려 참패를 당하고 아무 이익 을 보지 못하였거늘 귀국이 20만으로 우리나라를 집어삼키려 하였던가 ....... 귀국이 다음에 20만 아니라 백만 2백만으로 우리를 침범하여도 우리나라 백성이 한 사람만 남는다 해도 그대 나라에게 항복할 리 없는 것이다 천하 만고의 원수에게 항복할 리가 없다 
- 덕천가강: 잘 알았습니다 우리가 지금뿐 아니라 영구히 다시 조선을 침범할 생각을 내지 안하기를 우리는 천지신명께 맹세 하겠습니다 
그러하오니 이제 우리 일본과 조선이 영구히 강신수목하기를 바랍니다 
▶ 사명당: 강신수목하자면 우리의 요청을 몇 가지 실행하여야 될 것이다 
- 덕천가강: 그것이 무엇입니까 
▶ 사명당: 첫째 먼저 말하던 조선침범 주모자의 머리를 베고 풍신수길의 묘를 파고 그 머리를 끊어 조선에 보낼 것 
둘째 무참히 왜병의 칼날 아래 죽은 우리 백성의 생명과 파멸된 재산을 배상 하여야 할 것 
셋째 우리나라에서 포로 되어온 인원을 하나도 남김없이 찾아 돌려보내야 될 것 
넷째 우리나라에서 가져온 보물을 모조리 찾아 돌려보낼 것 
다섯째 일본은 다시 조선을 침입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천황의 친필로 써서 드릴 것 등이다 이런 것을 다 실행하면 강화가 될 것이다 

- 덕천가강: 잘 알았습니다 전쟁 주모자의 목을 베는 일은 어제도 말씀드린 바이지만 그들을 당연히 잡아 목을 베어야겠지만 지금 우리 힘으로는 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힘자라는 데까지 그들을 잡아 죽일 것이며 또 풍태합은 이미 죽은 것이니 그 목을 베어다 어디 쓰시렵니까 

▶ 사명당: 풍수길의 목을 베어다 아직 지하에서 붉은 피가 식지 않고 있는 우리 백성의 무덤에 제사를 지낼 것이다 
- 덕천가강: 이미 죽어서 썩어진 백골을 그렇게 했자 무슨 영감이 있겠습니까 그저 널리 용서하시고 앞으로의 일만 잘 하도록 합시다 
▶ 사명당: 그러면 죽은 놈의 목도 안 되고 산 놈의 목도 안 된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은 죄없이 죽어도 그만이요 왜인은 죄가 많아도 죽은 놈의 목은 건드릴 수 없단 말인가 그러면 이미 죽은 놈의 베어야 쓸 데 없다면 산 놈의 목 한 둘 이라도 베어야 하지 않겠는가 
- 덕천가강: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그 죄인은 힘이 미치는 데까지 잡기로 할 것이오니 
그렇게만 널리 양해하여 주십시오 
▶ 사명당: 그러면 여러 범죄자는 차 후 미치는 대로 잡기로 하고 이번에 내가 귀국할 적에 
청정의 머리나 한 개 가져가도록 할 수 있겠는가 
- 덕천가강: 예 힘이 미치는 대로 그 머리를 얻어 보겠습니다 
▶ 사명당: 그러면 그 머리를 꼭 내가 가져가도록 해주게 그리고 다음엔 우리나라 백성의 생명과 재산의 손해에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가 
- 덕천가강: 예 그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씀하여 주십시오 
▶ 사명당: 임진 정유 양차 침범에 우리나라 백성이 죽은 자 21만 8천7백72명이요 행방불명이 4만 7천9백39명이요 병신된 자가 3만 6천8백75명이요 
재산은 궁전소실 가옥분탕 도둑맞은 역대보물 사찰소화 파괴 귀중한 서적소실 유실 등은 그것이 얼마치나 되는지 그대들이 더 잘 알 것이다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배상하여야 될 것이 아닌가 
- 덕천가강: 예 그것을 어떻게 배상하면 되겠습니까 
▶ 사명당: 첫째 우리 백성의 생명박해에 있어서는 귀국의 인민 20여만 명을 죽여야만 될 것이나 나는 그것을 할 수 없다 
보라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 그 무덤을 산더미같이 모아놓은 것이 이곳에 있지 않은가 이러한 만고에 전례없는 독종들은 그 종자를 남기고 싶지 않다 그러니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백성을 죽이고 귀베고 코벤 놈들의 귀와 코를 베고 그놈들의 낭환을 잘라야 한다 
- 덕천가강: 그 일은 어렵습니다 매우 어렵습니다 

▶ 사명당: 응 그것도 못한다면 다시 할 말이 없다 
* 대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둥그래졌다 대사가 일어서서 나가자 그들은 시종관을 시켜 모시고 나가게 하였다 
그날은 점심식사와 저녁식사를 비롯한 대우가 더욱 야단스러웠다 현소를 비롯한 고승들 이며 막부장군들의 문안과 담화가 밤을 길게 하였다 

◆ 담판 제3일 
* 회담일자: 1605년 (선조38년) 3월 22일 
* 회담장소: 복견성(伏見城) 
* 담화내용 
* 3월 22일 늦은 아침에 가강은 다시 대사를 회의장으로 인도하였다 
- 덕천가강: 만리 해외에 외로이 오셔서 너무나 고생이 많으신데 이렇게 날마다 괴롭게 해드리어서 죄송합니다 
▶ 사명당: 내 한 몸 괴롭든 편하든 죽든 크게 관계치 않도다 다만 죽은 생명만이 가련하지 
- 덕천가강: 예 그렇습니다 국가의 중대사와 천하창생만을 위하여 오신 것이니 어쨌든 
이번에 양국의 장래를 위하여 과거의 모든 범죄는 과거로 돌리시고 앞날의 할 일만을 잘 약속하도록 합시다 
▶ 사명당: 좋은 말이오 나도 그렇게 하였으면 좋겠소 그러나 우리나라 군신상하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오 나로서는 모든 과거를 불문에 부치고 싶소 
- 덕천가강: 일단 대사께서 승인만 한다면 귀국의 군신도 승인하시지 않겠습니까 
▶ 사명당: 아니오 나로써 분에 넘치는 일을 한다 해도 군신이 승인할 리가 없는 거요 
- 덕천가강: 그러나 대사가 이 나라 사정을 잘 말씀하시고 형편보아 조처하신 것이라면 귀 조정에서도 인정하실 것입니다 
▶ 사명당: 그러면 우리 백성을 살상한 군사의 귀와 코베기는 용서하기로 하겠소 
- 덕천가강: 대사님 감사합니다 대사님 감사합니다 매우 감사합니다 우리 죄인을 살려주시니 감사합니다 
▶ 사명당: 그 다음 파괴된 재산에 대한 것이외다 
- 덕천가강: 예 그것은 어찌하시렵니까 
▶ 사명당: 그것은 귀국의 절반을 우리나라에 내주어도 아니 될 것이나 다만 대마도는 본래 2백 년 전 우리나라 소속이었으니 그것만은 도로 우리나라에 부쳐 주어야 될 것이오 그래 그것도 용이하게 될 수가 없는가 
- 덕천가강: 그것 또한 어렵습니다 
▶ 사명당: 그것도 어려우면 우리나라는 7년 전쟁 후 무턱대고 귀국과 강화하자는 것인가 
- 덕천가강: 포로된 인원과 또는 귀국의 보물을 찾을 수 있는 데까지 찾아 돌려보내겠 습니다 
▶ 사명당: 포로와 도둑맞은 보물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찾아 보내야 되는 것이오 그래 7년 병화에 막대한 생명과 재산을 잃고 이제 와서 포로와 약간의 보물을 반환 함으로써 다시 강신수목을 꾀하자면 그 어찌 천지신명이 용인할 바인가 
- 덕천가강: 그러하오나 우리나라 형편이 그 이외에는 더 할 능력이 없으니 하는 수가 없습니다 
▶ 사명당: 그렇다면 나는 장군이 요청하는 사정을 다 들어준 것이니 장군이 나의 요구하는 단 한 가지를 들어주겠는가 
- 덕천가강: 예 무엇이온지 
▶ 사명당: 그것은 대마도도 우리나라에 부쳐주지 못하겠다면 매년 군사 3천 명씩을 우리나라에 파견하여 북변에 수자리(국경을 지키는 일)살게 하겠는가 
- 덕천가강: 예 대단히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것은 그대로 하겠습니다 
▶ 사명당: 그래 그것은 승낙하였다 그러나 그대로 실행하지 못할 때에는 구멍 없는 인피 3백장을 바치도록 하겠는가 
- 덕천가강: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3천 명씩은 너무 많사오니 매년 3백여 명씩을 교환하여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 사명당: 그것은 안 되오 이미 한번 결정하여 놓은 것은 두 말을 하여서는 안 되오 

* 가강은 다시 수긍하였다 대사가 다시 말했다 

▶ 사명당: 그리고 포로와 가져온 보물은 어떻게 하겠는가 
- 덕천가강: 예 소관이 힘껏 찾아 보겠습니다 
▶ 사명당: 귀국이 진정으로 강화를 요구한다면 우선 포로와 보물을 전부 찾아 보내고 매년 군사 3천 명씩을 보내며 그리고 전쟁 주모자는 청정을 비롯하여 전에 열맹한 수십 명을 힘껏 잡아 보내야 할 것이오 
- 덕천가강: 예 힘껏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한 가지 의심되는 바가 있습니다 
▶ 사명당: 그것이 무엇이오 
- 덕천가강: 5년 전에 체칠대부(요시라)가 양국 화평을 위하여 귀국에 간 뒤로 다시 소식이 없으니 가두어 두었습니까 죽이었습니까 
▶ 사명당: 그것이 무슨 말이오 우리나라가 일본과 만세불망의 원수라 할지라도 서로 교린 을 의논하러 왕래하는 사신을 가두거나 죽일 리가 만무한 것이오 저 요시라 한 사람이 무엇이 중대하기에 군사가 물러간 뒤에 우리가 죽이었겠소 그가 일찍이 중국에 들어간다기에 우리는 여전히 접대하여 보냈고 그 뒤 돌아온 뒤에 부산 까지 호송하였는데 이제 이미 여러 해가 된 뒤 허물을 우리에게 돌리는 것은 반드시 요시라를 감추어 두고 트집을 내는 것이 아니면 편주로 창해 위에 침몰 하였을 것이오 
- 덕천가강: 예 잘 알겠습니다 우리가 감추고 트집을 쓸 리야 있겠습니까만 어쨌든 그 종적을 알 수 없어서 여쭤본 것입니다 양해하십시오 
* 의논이 이쯤되니 회담은 끝난 셈이었다 가강은 약간 큰 숨을 쉬며 기쁜 얼굴로 대사를 바라보며 
- 덕천가강: 오늘 너무 피로하시겠습니다 그만 편히 쉬시도록 하시지요 

* 하고 곧 시종무관을 지휘하여 대사를 인도하여 성 안 귀빈실로 모셨다 
* 식사가 끝난 뒤에는 기생과 광대를 불러서 노래와 춤 음악 무용의 질탕한 놀이를 연출 하였다 이것은 모두 외교적 수단으로서 대사의 환심을 사자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도 관백 수충이며 5산 선종의 여러 승려들이 찾아와서 서로 불법의 문답을 하는데 대사는 말마다 조선 포로를 불쌍히 여기어 찾아 보내기를 부탁하였다 
* 관백과 덕천가강은 우선 경도 부근의 포로를 전부 찾아냈다 며칠동안에 3천7백65명을 모아놓았다 
- 덕천가강: 우리는 참 죄가 많습니다 역사적으로 죄가 많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아보니 과거 2천년 전부터 우리민족은 귀국을 못살게 하였습니다 신라시대 때부터 귀국 지방을 침입한 것이 무려 150여 차나 됩니다 그런데 귀국에서는 모든 학자 학문 기술 등 여러 가지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셨으며 귀국은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 잘못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우리나라는 귀국에 잘한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이 죄를 어찌하면 좋으리까 하며 흐느껴 우는 것이다 
▶ 사명당: 대사도 눈물을 지으며 그렇게 알았으니 고맙소 다시는 그런 일이 없으면 다행 이오 하고 서로 진정을 통하기도 하였다 

* 1605년(선조38년) 4월 15일 대마도에 배를 댔다 보물과 포로 3천7백여 명도 같이 싣고 오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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