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에게 벼슬을 받은 소나무
예로부터 전해내려온 남한산성의 설화
남한산성 동문 밖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주필암이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 이 바위 주변은 정조 3년(1779) 정조 임금이 여주에 있는 영릉에 행차하던 길에 쉬었던 자리라고 한다.
이렇게 정조 임금이 쉬어갔던 장소라고 해서 당시 광주 유수였던 김종수가 '己亥駐' (기해주필)이라고 바위에 새긴 글씨가 이직도 뚜렷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정조 임금이 이 곳에서 쉴 때 소나무에게 벼슬을 내렸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온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 전해 오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정조 임금이 행차를 하다가 이 곳 주필암에 앉아 쉬고 있었다. 쉬면서 주변 언덕을 천천히 살펴보던 정조 임금의 눈에 문득 언덕 위에 소나무 하나가 보이는 것이었다. 마치 일산을 편친 것처럼 절묘하게 생긴 소나무였다.
정조 임금은 주변의 신하들에게 너무도 절묘하게 생긴 소나무라고 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는 "저 소나무가 하도 절묘하여 과인이 정삼품의 벼슬을 내릴것 이니, 나무 기둥에다가 옥관자를 붙여주도록 하시오." 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 후로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소나무를 벼슬을 받은 소나무라 해서 '대부송'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벼슬을 받아 대부송이라 불리던 소나무는 지금은 고사한 송암정의 소나무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