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한화의 소년 가장'으로 불렸던 LA 다저스 류현진(26). 그는 미국 진출 첫 해인 올해 감격적인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게 됐다. 현재 팀의 디비전시리즈 3선발이 유력한 류현진은 그동안 한화에서 받은 설움을 태평양 건너에서 보상받고 있는 분위기다. 류현진 개인을 위해선 참으로 잘 되고 축하할 일이고, 한국 야구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결과다. 그러나 시선을 내부로 돌려보면, 그의 공백을 메울 '포스트 류현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포스트 이대호'는 있는데 '포스트 류현진'은 없다
지난해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던 넥센 박병호(27)는 올 시즌에도 발군의 활약을 펼치며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29일까지 타율 0.321(4위)를 기록하고 있는 그는 홈런(36개), 타점(112개), 득점(87개), 출루율(0.437), 장타율(0.610) 등 5개 부문에서 1위에 올라 있다. MVP 2연패가 유력하다. 풀타임 첫 시즌을 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빼어난 실력을 과시하며 이제 리그를 지배하는 '완성형 타자'로 성장했다. 특히 지난해 약점으로 지적됐던 몸쪽 공 승부와 변화구 대처 능력을 높여 타율까지 3할을 훌쩍 넘기면서 일본으로 건너간 이대호(오릭스)의 공백을 메울 '포스트 이대호'란 별명을 얻었다. 카스포인트 누적점수에서도 3848점을 마크하며 9개 구단 타자는 물론 투수를 포함해서도 전체 1위를 질주하고 있다.
그러나 투수 쪽에는 박병호처럼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가 없다. 삼성 배영수가 14승으로 다승 1위에 올라있지만, 방어율은 4.49로 20위권이다. 지난해 투수 부문 타이틀홀더 중 올해 같은 부문 타이틀이 유력한 선수가 단 한명도 없을 정도다.
올해도 계속되는 외국인 투수 강세 현상
올해 12승 이상을 거둔 투수 전체 8명 중 5명, 방어율 10걸에 오른 투수 중 6명이 용병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마운드에선 '용병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NC 에이스 찰리가 방어율 2.52로 이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토종 투수 중 방어율 2점대 투수는 NC 이재학이 유일하다. 그러나 26연승 세계신기록을 세운 일본프로야구 라쿠텐의 다나카 마사히로처럼, 한국 프로야구를 쥐락펴락하는 투수는 아무도 없다. 전반적인 투수의 질이 낮아졌다고는 볼 수 없지만 리그를 평정할 만큼 압도적 투수는 토종도, 용병도 없는 셈이다.
'포스트 류현진'은 왜 안 나오나.
2000년대 중반 이후 류현진, 윤석민(KIA), 김광현(SK) 등 3명의 특급투수가 등장했다. 그러나 류현진은 미국으로 활동무대를 옮겼고, 윤석민과 김광현은 올 시즌 과거와 같은 압도적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슈퍼 스타'는 리그를 살찌우고 판을 키운다. 그런 측면에서 류현진 같은 투수가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토종 투수들 중 새로운 거물이 나오지 않으니, 각 구단은 가면 갈수록 용병 선수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가능성 있고 잠재력 있는 유망주 투수들은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포스트 류현진'이 안 나오는 것은 자원이 부족한 아마추어 현실 탓도 있겠지만, 성장 가능성이 있는 투수에 대해 꾸준한 기회 보장 등 육성 프로그램이 뒷받침되지 못한 것도 있다. 각 구단이 당장의 성적에 급해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해부터 신인드래프트 1차지명이 부활하면서 앞으로 각 구단이 연고지역 우수투수에 대한 체계적 지원과 육성에 나설 수 있는 길이 열린 점이다. 포스트 류현진을 찾기 위한 노력은 9개 구단, 아니 KT까지 포함한 10구단 전체가 해결해야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