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정령들의 대화와 이성계의 칠성 기도
조선을 창립한 이성계가 소년 시절에 칠성 기도를 한 적이 있었다. 그날 밤 한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해가 저물어 어쩔 수 없이 길옆에 서 있던 큰 고목 밑둥지의 움푹 파인 곳에서 잠을 청하게 되었다.
한 참 자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 잠이 깨고 말았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 "오늘밤 이 시중(이성계)이 목욕 재개를 하고 칠성제를 올리고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우리 함께 제삿밥이나 얻어 먹으로 가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무 속에서 "오늘은 나에게 손님이 와 있어서 갈 수가 없다네" 하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를 들은 나그네는 괴이하게 여겨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밖으로부터 또다시 말소리가 들려 왔다.
"이 시중의 집에 가 보았더니 왕림하신 성군(星君)들이 공양물이 청결하지 못하다고 화를 내며 모두 떠나 버려서 나도 어쩔 수 없이 돌아오고 말았다네" 하는 것이었다.
이를 들은 나그네는 날이 밝지도 않았는데 급히 서둘러 이 시중을 찾아가 나무 속에서 들은 말을 그대로 알리게 되었다.
예삿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이 시중은 나그네를 집에 머물게 하고 수십일 동안 목욕 재개하고 다시 칠성 기도를 올렸다. 이날 밤 나그네를 다시 고목에 가서 묵게 하였는데, 한 밤중에 또다시 말소리가 들려 왔다.
"여보게 오늘밤 이 시중이 칠성제를 올리는데 자네도 함께 가지 않겠는가?" 하자 나무 속에서,"전에 머물렀던 손님이 오늘 묵고 있어서 나는 갈 수가 없네"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잠잠하더니 또다시 바깥에서 음성이 들려 왔다.
"오늘은 이 시중이 지극한 정성으로 제를 올려 성군(星君)들께서 모두 기뻐하셨네."
이를 들은 나그네는 황급히 달려가 이 시중에게 들은 대로 전하였고 이성계는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였다고 한다.
《오산설림초고》
실제로 1919년에 조사된 [조선거수노수명목지(朝鮮巨樹老樹名木誌)]에 따르면 이렇게 신성시된 나무가 전국에 1108 그루가 있었고, 이 중에서도 특히 부락제의 대상이 되는 나무가 460 그루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고목마다 저마다의 영험에 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바, 실로 나무의 정령을 믿는 풍습이 지대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