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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눈나키(Anunnaki)의 모든 것??
게시물ID : mystery_64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R.J
추천 : 7
조회수 : 17610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07/23 21:52:03
                             아눈나키(Anunnaki)의 모든 것
 
                                              NinurtaStargate120610.jpg
 
"모든 길은 수메르로 통한다."
고고학자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메르인이 최초의 문자 체계(설형문자)와 바퀴, 학교, 의학, 기록으로 남겨진 최초의 속담, 역사, 최초의 양원제 의회, 조세, 법률, 사회 개혁, 최초의 우주기원론 및 우주론, 최초의 동전 주조(묵직한 은화)등을 발전시켰으니까요. 하지만 진정 당황스러운 것은 천체에 관한 그들의 지식입니다.
 
360도 궤도, 천정, 지평선, 천축, 극점, 황도, 분점 등 천문학의 모든 개념들이 돌연히 수메르에서 등장했으니까요.
 
2,000년 밖에 지속되지 않은 수메르 문명은 어떻게 2만 5,920년이 걸리는 천문 주기를 관찰하고 기록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의 문명이 12궁도의 중간에서 시작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수메르 천문학이 신 또는 하늘 또는 외계인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임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확장시켜 보겠습니다. 기원전 4,000년 전에 살았던 초기 원시인들이 수렵과 채집 생활에서 현대의 기준으로 봐도 고도로 진보한, 만개한 문명으로 어떻게 갑작스레 이행할 수 있었을까요?
 (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까지도 수메르 역사와 관련한 중요한 질문들이 아직 해명되지 않았다고 인정하고, 그런 의문들은 20세기 문명의 관점에서 제기된 것이며 윤리적인 함축에 의해 부분적으로 윤색된 것이므로, 이에 대한 대답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
 
현재는 수메르의 점토판과 원통인장 중 수천 개가 해독되었기 때문에 수메르인에 관해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해답은 이렇습니다.
 
수메르인은 자신들이 성취한 모든 것이 하늘로부터 왔다고 기술했습니다.
 
중동 학자 제카리아 시친은 20세기 이전까지는 아무리 훌륭한 연구자라도 우리가 오늘날 평범하게 받아들이는 관념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고 지적하며 "우주인이 달에 착륙하고, 무인 우주선이 다른 행성을 탐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보다 더 진보한 문명을 가진 다른 행성의 우주인이 과거 어느 시기에 지구에 왔다는 것을 믿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수메르인이 자신들에게 지식을 전수하나 존재를 '신들'로 생각하거나 지칭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구전 전승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신들'을 만들어낸 그리스인과 로마인이 나중에 그렇게 해석한 것일 따름입니다.
수메르인은 그들을 아눈나키(Anunnaki)라고 불렀는데 이는 하늘에서 땅으로 온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인류의 기원에 관한 수메르인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마음을 열고 몰입해 봅시다.
 
친과 몇몇 학자들은 고대 수메르인이 점토판에 역사를 기록한 것은 그것을 단순한 신화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관점을 취했습니다.
 
수메르인이 많은 고대 도시에 대해 묘사한 내용도 유적지가 발굴되기 전에는 공상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시친은 그들이 기록한 역사 또한 실체로 간주되어서는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설형문자 해독과 연구에 수년간 매달린 끝에 시친은 성서의 네필림과 수메르의 아눈나키가 동일한 개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득한 과거, 다른 별로부터 지구에 와서 최초의 문명을 건설한 존재가 네필림 혹은 아눈나키라는 것입니다. 이 주제는 프리메이슨, 튤레학회 등 거의 모든 비밀 조직을 관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시친의 번역을 발판 삼아, 최근 많은 연구자들은 아눈나키에 관해 보다 자세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시친을 중심으로 해서 앨포드, 볼레이, 프리어, 데이비드 혼, 르웰스, 터니지, 파이, 가드너, 브램리 등의 해석을 종합한 아눈나키에 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약 45만 년 전, 우주를 여행하던 외계 휴머노이드 일행이 지구라는 행성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크기가 지구의 약 세 배쯤 되는 행성에서 왔으며, 수메르인은 그곳을 니비루(Nibiru)라고 불렀습니다.
고대 수메르 문학에서는 니비루를 우리 태양계의 12번째 행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겨우 문자 기록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는 수메르인이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을 정확히 묘사하고 도표로 표시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 천체는 망원경 없이 육안으로는 관찰할 수 없는 데도 말입니다. 참고로 천왕성은 1781년에야 발견되었고 해왕성과 명왕성도 각각 1846년과 1930년에 발견되었습니다.
 
수메르 문헌들에 따르면 40억 년 전, 니비루라는 떠돌이 행성이 태양계 궤도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니비루는 티아마트라는 거대 행성과 충동하는 것을 가까스로 피했는데, 이때의 중력으로 티아마트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이어 니비루가 다시 스쳐 지나가자 타아마트가 실제로 깨지면서 니비루의 위성과 충돌했습니다.
부서진 티아마트의 파편들은 원 궤도에 남아 소행성대를 형성했고, 절반은 태양에 더 가까운 궤도로 끌려갔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 파편들이 유착되어 생긴 것이 지구입니다.
 
이때 니비루의 위성 가운데 하나인 킨구가 지구의 달이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이론은 소행성대의 형성 원인은 물론 왜 지구 지각의 상당 부분, 특히 태평양 주변의 지각이 사라지고 없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과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분분했던 혜성에 관한 설명도 제공합니다.
 
약 45만 년 전 지구가 두 번째 빙하기였을 때, 고도로 발전한 문명을 가진 니비루의 거주자들(수메르 문헌의 아눈나키)이 지구로 왔습니다. 이때 두 행성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수메르인에 따르면, 지구에 우주선이 처음 착륙한 곳이 바다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니비루의 아눈나키도 물에 착륙했습니다. 당연히 이 우주비행사들은 기후가 온화하고 물과 연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하려 했을 것입니다. 오직 한 곳이 그들의 모든 기준에 맞았습니다. 바로 메소포타미아였습니다.
 
인더스강 유역과 나일강도 괜찮았지만 화석 연료를 쉽게 구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부 이라크 지역에는 지금도 화석 연료가 풍부합니다.
 
고향 행성에서 최고 지배자 아누(Anu)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눈나키는 아누의 두 아들 엔릴(Enril)과 엔키(Enki)의 지휘 아래 지구에서 체계적으로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훗날 아눈나키의 모든 지도자들은 지구의 신민들에게 신 또는 네필림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엔릴이 이 임무를 총지휘했고, 엔키가 행정과 과학을 맡았습니다.
니비루의 관례 때문에 이복형제인 이들 사이에는 깊고 오래된 적대감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들의 임무는 지구의 금을 캐는 것이었습니다. 연구자 파이는 아눈나키가 니비루의 대기를 구하기 위해 우주를 떠돌며 금을 찾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오늘날 지구의 오존층이 불화탄화수소(HFC) 때문에 파괴된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 모행성의 대기가 손상되었었다면 아눈나키가 생각한 해결책은 구멍을 막기 위해 대기의 최상층에 아주 미세한 금가루를 뿌리는 것이었을 겁니다. 현대 과학자들이 손상된 오존층을 메우기 위해서 미세한 금 입자를 대기 최상층부에 뿌리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처음에 아눈나키는 물처리 시스템을 활용해 페르시아 만에서 금을 얻으려 했으나 그것은 적합하지 못한 방법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아누는 상속자 엔릴을 대동하고 지구를 방문해 엔키에게 더 많은 금을 찾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엔릴이 지구 식민지를 총괄하는 동안, 엔키는 침략자들을 이끌고 아프리카로 향했고, 마침내 남아프리카에서 금을 채굴했습니다. 1970년대에 과학자들이 남아프리카의 채굴 기업인 앵글로 아메리칸 코퍼레이션의 의뢰로 조사한 결과, 실제로 아주 옛적에 금이 채굴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기원전 10만 년에 고대의 채굴작업이 이뤄졌다는 증거를 발견한 것이지요. 이와 유사한 고대의 광산 채굴 흔적들은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아눈나키의 채굴 작업이 전 세계에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어느 날, 이 외계 식민주의자들에게 기후 변화라는 문제가 닥쳤습니다.
기후 변화로 아눈나키는 큰 곤란을 겪었고, 채굴 작업은 엄청나게 고역스러워졌습니다. 수메르 문헌은 신들(아눈나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작업을 하며 고생을 겪었으며, 신들의 고생은 엄청났고, 작업은 힘들었으며, 고통이 극심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광산에서 고된 노역에 시달리던 평민 아눈나키들이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사령관인 엔릴은 그들을 가혹하게 처벌하려 했고, 아버지 아누가 참석하는 대의회를 소집했습니다. 하지만 아누는 아눈나키 광부들의 고통에 동적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는 폭도들이 했던 일이 몹시 힘들고 고통이 심했다는 점을 이해했습니다. 아누는 금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지 물었고, 엔키는 원시적 일꾼으로 노예를 만들어 힘든 일을 맡기자는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자신이 일하는 아프리카에는 유인원(오늘날 우리가 호모 에렉투스라고 부르는)이 아주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눈나키 대의회는 노동계급을 만들자는 엔키의 제안을 승인했습니다. 그리고 수메르인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이 인류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엔키는 원시 아프리카 여성 유인원의 난자를 채취해 젊은 아눈나키 남성의 정자로 수정하고, 수정란을 아눈나키 여성(엔키의 아내 닌키였다고 전해진다)의 자궁에 넣었습니다.
 
제왕 절개를 통해 태어나긴 했지만, 건장한 남자아이 '아다마'가 지구상에 최초로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이로써 수백만 년이 걸릴 자연 진화과정이 단축되었습니다. 시친은 이 아다마가 최초의 시험관 아기였다고 단언합니다.
 
그는 현대적 시험관 아기가 자신의 수메르 번역을 지지해 주는 증거라고 여겼습니다. 현대 과학이 우리의 유전자 구성을 겨우 파악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거욱 그렇다는 것입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고대 수메르의 기록을 보면 "인류가 처음 창조되었을 때 그들은 빵을 먹을 줄도, 옷을 입을 줄도 몰랐다. 양처럼 입으로 풀을 뜯어먹었고 도랑물을 마셨다"고 나온다고 합니다.
 
이후 엔키는 많은 수의 남성 노예와 여성 노예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 노예들은 생식 능력이 없었고 아눈나키에 비하면 수명이 매우 짧았습니다. 엔키는 자신이 창조해 낸 새로운 종족과 경쟁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예를 이렇게 만든 것이지요. 하지만 얼마 안 가 엔키는 한 번 더 노동자들의 유전자를 조정하기로 합니다. 스스로 번식할 수 있는 노예를 만들기로 한 것이지요. 그리고 인간의 두뇌 사용 능력을 향상시키는 한편, 수명을 크게 줄이는 작업도 병행하였습니다.
 
이 인간 노예들이 번식력을 지니게 되자, 채굴 작업장과 메소포타미아의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많은 노예들이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유역을 따라 발전한 다른 도시의 작업장에 배치되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세기가 지나는 동안 이 노예들은 아눈나키와의 종간 교배가 이루어졌으며,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크로마뇽인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엔릴은 아눈나키가 인간 여성과 교접하는 데 분개하였습니다. 애당초 엔키가 창조한 인간들에게 좋지 않은 마음을 품고 있었던 엔릴은 마침내 이 짜증스러운 인간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약 1만 2,000년 전, 니비루 행성이 다시 돌아오면서 지구의 기후에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을 예견한 엔릴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대의회를 소집한 엔릴은 지구의 기후 변화에 개입하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 두자고 다수를 설득했습니다. 인간이 모두 죽을 동안 아눈나키는 지구 궤도를 도는 대피함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엔릴의 계획이 받아들여졌지만 이복형제 엔키에게도 그 나름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그랬는지 아니면 단지 엔릴의 계획을 망치기 위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엔키는 자신의 인간 조수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인 지우수드라, 곧 우트나피시팀에게 잔인한 신들의 비밀을 털어놓았습니다.
 
엔키는 우트나피시팀/노아에게 방수 처리를 위한 역청 사용법을 포함해 방주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약 1만 년 전, 인구의 상당 부분이 갑자기 없어진 점을 설명해 줍니다. 대부분이 대홍수로 목숨을 잃었던 것입니다.
 
홍수가 잦아들고 니비루가 태양계 박으로 움직이자 아눈나키와 생존한 소수의 인간들은 세상을 재건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대홍수 이후의 시기는 이전에 비해 덜 평화스러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수메르 점토판들은 왜 인간이 땅을 경작하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신들(아눈나키)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기 때문입니다. 농경과 함께 인구가 집중되면서 대홍수 이전보다 더 크고 장엄한 도시들이 나타났습니다. 최초의 농경지가 강 유역의 비옥한 땅이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와 팔레스타인의 높은 산악지대에 자리 잡았다는 것도 대홍수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작물과 가축에 대한 지배권을 인간의 손에 맡긴 것에 더해 아눈나키는 선별된 인간들에게 지도권을 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나자 아눈나키/네필림은 자신들의 피조물을 통제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동물과 거의 차이 없다고 여기는 인간들과 자신들 사이의 중재자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아눈나키 혹은 신들은 특별히 선택한 인간 지도자를 뽑기로 하였습니다. 여기서 왕권의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새로 임명된 왕들에 의해 도시가 성장하고 식량생산도 늘어났습니다. 즐거운 평화시대가 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고대의 신들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지속적인 평화를 만들어갈 능력이 없었나 봅니다. 아눈나키들 간에 경쟁의식은 결국 무력 분쟁으로 번졌습니다. 바빌로니아의 문헌은 해안가에 있던 마르둑(엔키의 아들)의 아들, 사악한 바람을 다스리는 자(네르갈)가 열로 평원을 불태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고학 보고서들은 핵 공격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줍니다. 기원전 2040년부터 갑자기 이곳 주변 지역에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고 이런 현상이 수 세기 동안 계속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사해 근처의 샘물에서는 아직도 방사능 오염물질이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사친과 엘포드 등 여러 연구자에 따르면 핵폭발로 시나이반도에는 비자연적인 흔적이 생겨 지기금도 공중에서 뚜렷하게 보인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는 시커멓게 그을린 바위들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핵폭발은 예기치 못한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방사능 폭풍이 생성되어 메소포타미아 북동부 전역을 휩쓸었고, 이 때문에 모든 생명체가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수메르 문명도 종말을 고했습니다.
 
기존 역사학에서는 강력한 수메르 문명이 6,000년 전쯤 갑자기 출현했다가 갑작스레 사라지면서 신흥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제국에 흡수되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수메르 문헌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훨씬 더 끔찍합니다.
 
수메르 학자 크레이머가 번역한 다양한 '애도문'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수메르에 큰 재난이 닥쳤다. 누구도 이전에 알지 못했고, 이전에 한 번도 본 적 없으며,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그런 재난이었다. 하늘에서 커다란 폭풍이 몰아쳤다. 땅을 멸망시키는 폭풍, 급류처럼 몰아치는 재난의 바람, 뜨거운 열을 동반한 바람이었다. 낮에는 빛나던 태양이 사라졌고 저녁에는 별들이 반짝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겁에 질려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사악한 바람은 사람들을 붙잡았고, 그들에게 내일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입으로 피를 쏟으며 쓰러졌고 핏구덩이에서 뒹굴었다. 무서운 바람으로 얼굴은 창백하게 변했다. 폭풍 때문에 도시와 집은 폐허가 되었다. 마구간도 폐허가 되었고 양의 우리는 텅 비었다. 수메르의 강에는 더러운 물이 흘렀고, 강가의 경작지에는 잡초만 무성해졌으며, 목초지의 풀은 시들었다. 그래서 모든 신들은 이곳을 떠났다고 크레이머는 전합니다. 단 한차례의 방사성 낙진 폭풍으로 세계 최초의 위대한 문명은 사라졌고, 산더미같이 쌓인 수메르인의 시체만 남은 것입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점토판에 자세한 기록을 남겼던 사람들이 사라졌고 그들의 신도 사라졌습니다. 엄청난 재난의 기억이 희미해져 무서운 이야기 정도로만 어렴풋하게 기억될 즈음에야 메소포타미아에 새로운 문명과 기록이 다시 번성했는데 그때까지는 수 세기의 시간이 흘러야 했습니다.
 
아눈나키가 수백 년에 걸쳐 만든 식민지인 에덴을 날려버린 것은 핵을 사용한 아마겟돈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불러온 결과에 충격을 받은 아눈나키들이 시나이의 근거지로 후퇴해 관리팀만 남겨놓고 모두 고향에 돌아가기로 결정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인류에게는 이 모든 일들이 4,000년 전 고대에 일어난 일입니다.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퇴화와 야만의 시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남은 인류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문명을 다시 세우려 했지만 아눈나키(신들)의 도움이 없어 속도가 느렸습니다.
 
아브라함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폐허를 떠나 남쪽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백 살의 나이로 이삭을 낳았습니다. 아눈나키의 유전자를 지닌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훗날 이 이름이 전 종족을 지칭하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이집트 신 오시리스(Osiris)와 라(RA),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신 엘(EL)을 결합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35세대에 걸쳐 입에서 입으로 전한 끝에 위의 이야기는 마침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 이후 일어난 일이 곧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역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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