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3대 흉가 선정, 영덕 ‘귀신 나오는 집’ 헐린다
이정훈 기자 2015.07.20
"6·25 때 학도병 수백명 묻힌 곳… 원혼들이 귀신 돼 나온다" 소문
장사상륙작전 때 전사한 학도병들의 원혼이 귀신이 돼 출몰한다는 '영덕 흉가' 영덕군 제공
‘귀신의 집’으로 소문난 경북 영덕군 남정면 유정리 흉가가 헐릴 것으로 보인다. 장사해수욕장 앞에 있는 이 흉가는 국내 3대 흉가로 소문이 나면서 전국의 흉가 동호인들이 즐겨 찾고, 인근에는 흉가 체험단을 위한 펜션까지 운영될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문제의 흉가는 장사해수욕장 인근 언덕 416㎡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1ㆍ2층 연면적이 214㎡ 가량의 슬라브지붕의 건물이다. 소유주인 함모(68ㆍ미국 거주)씨가 횟집을 운영하다 1980년대 중반 미국으로 떠나면서 방치돼 왔다.
관리하는 이가 없자 먼저 고물상 등이 창틀이나 문짝 등을 다 떼어갔고, 담장도 허물어졌다. 언제부터인가 이 집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요즘은 전국 흉가체험 동호인들의 단골 답사코스로 부상했다. 무속인들도 찾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영덕 흉가에서 귀신이 나온 장면이 디카에 찍혔다”는 소문도 퍼지고 있다.
그냥 빈집에 불과한 곳이 귀신의 집으로 소문난 것은 한국전쟁 때 펼쳐진 장사상륙작전 때문으로 보인다. 소문의 내용은 이렇다. 한국전쟁 중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위한 기만전술의 일환으로 장사상륙작전이 전개됐다. 당시 전투에서 수많은 학도병이 군번도 없이 참전했다가 쓰러졌고, 수 백 명의 학도병 시신이 문제의 흉가 자리에 묻혔다. 원한 때문에 저승으로 가지 못한 학도병들의 원혼들이 이승에 남아 귀신이 되어 출현한다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은 “수십년간 빈집으로 방치돼 있고, 그 장사해수욕장 일대에서 한국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것은 사실이다 보니 그런 흉흉한 소문이 나돈 것으로 보인다”며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냐”며 일축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전국 흉가체험단의 관광코스가 됐고, 일부 방송매체도 ‘퇴마사’와 무속인까지 동원해 이 집을 소개하다 보니 ‘소문’이 마치 ‘진실’처럼 인식되는 일도 벌어졌다.
방치된 횟집이 귀신의 집으로 소문나면서 영덕군과 집 주인이 난처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덕군은 이 일대에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을 조성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 같은 소식은 미국에 있는 집주인 귀에도 들어갔다.
소유주 지인 등에 따르면 함씨는 “괜히 내 집 때문에 지역 주민들이 피해를 입는 것 같다”며 철거키로 했다. 지인을 통해 철거(멸실)에 필요한 서류를 미국으로 보내 줄 것을 요청했고, 관련 절차를 거쳐 10월쯤 허물 계획이다.
이 마을 주민 김진우(67ㆍ남정면 장사리)씨는 “집 주인이 사정이 있어 미국으로 이민갔고, 따로 관리인을 두지 않다 보니 흉가처럼 방치된 것인데 무슨 학도병의 귀신 운운하는지 어이가 없다”며 “4, 5년 전부터 이상한 소문이 퍼지더니 전국 3대 흉가에 선정됐다는데, 집주인이 이를 알고 철거키로 했다니 다행”이라며 환영의사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