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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과학계의 반대를 부차적인 것으로 보며 정면돌파를 강행한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황우석 교수 사건 당시 청와대 과학기술 정책 보좌관이었기 때문에 그 사건에 대한 무거운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IT 분야와 과학기술 분야의 국가경쟁력은 참여정부 시절 가장 높았습니다. 과와 함께 공도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성진 장관 후보자 임명 강행 논란
8월 10일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이다. ‘자신감’의 원천은 우선 참여정부 때 과학기술 정책이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 중 가장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에 있다. 다른 분야의 경우 현 정부 인사들이 참여정부 시절의 과에 대해 반성하거나 후회를 드러내는 것과 대조적이다. 단적으로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은 참여정부 시절 유동성 관리에 집중하지 못했던 점이 당시 1년 이상 집값을 잡지 못했던 이유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열린우리당 시절 ‘4대 개혁입법’이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표적이 됐던 경험 때문에 ‘○대 개혁입법’, ‘○대 중점과제’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을 계획이다. 반면 과학기술과 관련해서는 반성의 언급이 없다. 오히려 2012년 민주통합당 시절부터 “참여정부 시절 과학기술 정책은 잘했다”는 자신감을 피력해 왔다.
이 자신감은 근거가 있을까.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 과학기술기본법이 제정됐다. IMF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려면 과학기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였다. 참여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이 같은 과학기술 정책을 계승했다. 김대중 정부 때 과학기술처에서 승격된 과학기술부를 부총리급으로 한 번 더 격상시켰다.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출범시키고 현재의 연구개발(R&D) 사업의 성과 분석과 예산 배분에 대한 기초적 틀을 짰다. IT(정보통신기술)와 BT(생명공학기술)를 주력 사업으로 선정하고, 정보통신부를 신설해 진대제 삼성전자 사장을 초대 장관으로 임명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정보통신부는 폐지됐고, 과학기술부는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합됐다. ‘작은 정부’ 취지에 따라 출연연구소 통·폐합이 시도됐으며,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과학기술계 비정규직이 확산됐다. ‘과학계 홀대’ 논란이 불거졌다. 2012년 대선에서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모두 ‘과학기술부 부활’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 결과 부활한 미래창조과학부는 차은택씨의 국정농단에 휘둘린 부서 중 하나로 지목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훌륭했던 과학기술 정책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망가졌다는 ‘줄거리’와 ‘믿음’이 형성된 것이다.
■‘황우석 사태’에 대한 반성 없어
하지만 과학자들은 참여정부 때를 마냥 ‘좋았던 시절’로 기억하지 않는다. 참여정부 시절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제도 정비의 결과가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태로 귀결된 것에 대한 분노와 트라우마가 크다. 한 국립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박정희 시대 ‘황우석’과 같은 과학자는 불가능했습니다. 과학자는 오직 정부가 시키는 대로 연구를 할 뿐이었으며, 대신 과거 이공계인에게는 주어지지 않던 부와 명예가 주어졌습니다. 국가발전의 주역이란 자부심과 함께요. 참여정부 시절은 나름대로 합리적 시스템을 만들려 노력했으나 그 성과는 황우석처럼 정치인·언론인들과 친하고 적극적으로 언론플레이를 하는 과학자에게 돌아갔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연구자에게 대중의 분노가 쏟아졌고, 정부와 여당은 대중적 흐름에 편승해 과학자를 매장하고 황우석을 감싸기에 바빴습니다. 연구에만 매진하던 교수들에게는 황당한 상황이었고, 오히려 ‘민주주의는 과학계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불신만 불러일으켰습니다.”
참여정부의 과학정책은 ‘폴리페서’의 시대를 만들어냈고, 이후 보수정부에서 과학계에 대한 통제를 다시 강화하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황우석 사태’는 권위주의 시절의 과학기술 정책이 민주주의에 맞게 전환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시행착오일 수 있다. 문제는 이 사태에 대한 책임자들의 철저한 반성이 없다는 점이다. 이 점이 과학기술계의 불신을 사고 있다. 황우석 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한 브릭(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에서도 박기영 교수의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임명 당시 “12년 전 배아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은 과학계에 뼈아픈 기록이다. 과학계는 12년 전의 그 사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며 “그런데 다시 12년 전 과오를 잊은 듯한 모습이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수현 대변인의 브리핑은 현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시야가 2003년에 머물러 있으며, 그동안 진행된 과학계의 논의에 무관심했음을 보여준 하나의 증거였던 셈이다.
청와대가 박성진 교수 임명 강행을 결심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과학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오래된 고정관념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중소벤처기업부가 교육부처럼 보수와 진보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데다 문재인 정부에서 일하는 데 보수의 입장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과학자의 상(像)이 박정희 시대에 마련됐으며, 과학계에서 극복하고자 애쓰는 이미지라는 점이다.
한경희 연세대 교수와 게리 리 다우니 버지니아공대 교수가 공동집필한 <엔지니어들의 한국사>(2016년 출간)에서도 비슷하게 설명한다. 경제개발 기간 동안 엔지니어들은 중산층 지위를 보장받는 등 산업발전의 주역으로서 역사상 최초로 대우받은 동시에 국가발전과 경제성장의 도구로서 복무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도 동시에 생겨났다. 과학자들은 ‘딴생각’을 하지 않고 기계처럼 연구에 매진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다른 분야 각료라면 큰 문제가 됐을 박 교수의 정치관을 청와대에서 적극적으로 옹호할 수 있는 것에는 이러한 과학기술자에 대한 대중적 관념이 바탕이 돼 있다. 그러나 한경희 교수는 책에서 이러한 과학기술자의 상은 선진기술을 빨리 배워 추격하던 시대에 걸맞지만 창의성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하는 현대사회에는 맞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9021706001&code=9401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