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하는 일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점술사나 무당은 아니다. 예언가라고 하기에도 마땅치 않다. 박진여씨는 남의 전생을 읽어내며 현재 겪고 있는 고난과 역경의 원인을 풀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전생 리딩 상담가'. 생소하다 못해 황당한 느낌마저 들지만 그녀와 상담하려면 두 달 이상 기다려야 한다니,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생 리딩 상담가, 박진여
고운 피부에 단아한 이목구비가 인상적인 박진여씨(38)는 전생 리딩 상담가다. '윤회', '전생', '카르마', '차크라' 등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단어들은 별다른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기자를 당황하게 했다. 물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다. 게다가 그녀를 만나기 전 편집부에 전달된 책, 「당신, 전생에서 읽어드립니다」(김영사)는 박진여씨가 15년 동안 1만5,000명을 상담해온 사례 중 독특한 것들만 모아 담아놓았다. 그것이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면 그녀는 동서양의 역사를 섭렵한 엄청난 스토리텔러일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책에는 저명한 인문학자나 언론인, 드라마 작가 등의 추천사들이 열거돼 있었다.
반신반의의 심정으로 그녀의 책을 읽어 내려갔다. 신변잡기적인 내용으로 치부하기에는 진지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이제 기자의 고민은 하나만이 남았다. 윤회사상을 전제한 그녀의 이야기를 다양한 종교를 갖고 있는,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전생 리딩 상담가인 그녀의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박진여씨는 임상병리학을 전공한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러다 병원에서 환자의 혈액 채취 실습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묘한 긴장과 함께 설명하기 힘든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아! 이 사람은 병이 낫기 힘들겠구나', '참으로 고단한 삶을 살게 되겠구나' 등의 일종의 예감 같은 것이었다.
"병원으로 응급차가 막 오는 모습이 보여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감이 오는 거예요. 또 혈액 검사를 위해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보면서도 '결코 나을 수 없는 사람' 혹은 '완치가 가능한 사람'이란 느낌이 자연스럽게 왔어요. 병원에서의 경험은 제가 이 길을 가게 된 하나의 계기였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무속인이나 무당은 아니라고 말한다. 우선 신 내림의 과정은 없었다. 또 비교적 평범한 집안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며 흔히 말하는 '무속인의 피'가 흐르는 조상도 없었다. 그녀의 사례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 R. 시글이 연구한 인간의 오감을 넘는, 뛰어난 감각과 에너지를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아이들인 '인디고 칠드런'에 가까워 보인다.
"실습을 하던 어느 날 중환자실에서 채혈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어요. 원래 실습생은 가지 않는 곳인데 채혈 파트 선생님은 직접 보며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저를 데리고 중환자실에 가셨죠. 중환자실의 문이 열리는 순간, 눈앞에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보였어요. 순간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서서 펑펑 울어버렸습니다. 그곳을 나와서도 제어할 수 없는 슬픔에 오랜 시간 바보처럼 혼자 울고만 있었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녀는 그때 자신에게 덮쳐온 무거운 에너지들은 환자들이 겪고 있는 병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학교 졸업 후 병원에서 몇 달 근무했지만 그 일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처럼 느꼈다.
"혈액을 채취해 분석하는 일은 너무 소극적인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람들에게 직접 다가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갔어요. 인간의 삶에 대한 더 근원적인 공부를 하고 싶다는 바람도 들었고요."
그녀는 인간의 삶이나 운명에 관심이 깊어지면서 우연히 친구를 따라간 최면연구소에서 그녀의 스승인 법운 최영식 선생을 만나게 된다. 비로소 그녀는 전생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의 전생 리딩 상담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
기자는 그간 취재를 통해 꽤 용하다는 무속인 혹은 역술가들을 만나봤다. 평소 예언에 대한 관심은 있는 편이었지만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정해진 운명 따윈 없다는 것으로 생각이 치우지게 됐다. 그만큼 그들의 이야기는 결과적으로 맞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태도는 천편일률적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맞혔던 천기누설의 커리어를 소개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자신의 고객 중에는 어떤 유명 인사가 있으며 앞으로의 국내외 정세에 대해 기세등등하게 쏟아냈다. 박진여씨와의 만남을 앞두고 그런 풍경들을 예상했었다. 그녀는 이미 세간에 알려진 인물이고, 또 두 달 치 예약이 꽉 차 있을 정도로 '핫'하다고 하니, 정재계 인물이나 셀럽들의 방문이 없지 않았을 터다. 그러나 그녀는 입을 다문다. 기자가 '오프 더 레코드'를 약속하며 "OOO의 전생은 무엇이었으며 앞으로 어찌 될 것 같은가"라는 질문을 했지만 난감한 미소만 짓는다.
"방송 제작진들이 소재 거리를 찾기 위해 찾아오시지만 대부분 실망하고 돌아가십니다. '왜 이야기를 해주지 않냐'라고 화를 내며 뒤돌아서는 분들도 계세요. 제 비즈니스를 위해 한 사람의 인생을 활용할 수는 없는 문제 아닐까요?"
그녀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좀 싱거운 맛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신선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쉽게 입에 올리는 것, 올바른 태도일까? 그녀가 인간의 삶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알 수 있었다. 입맛을 쩝쩝 다시는 기자의 태도에 난감했는지, 정치인들은 그들의 설 자리가 곧 생존의 문제이기에 많이들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가 상담한 정치인 중에는 나라를 구하겠다는 순수함을 갖고 오신 분도 있고, 전생에 선비로 공부를 많이 했던 공덕으로 이번 생에 정치인이 되신 분도 계세요. 또 그중에는 왕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지만 결국 오르지 못했다가 정치가로 다시 이번 생에 도전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렇다면 카르마(업보)를 도덕적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전생에 착한 일을 했다면 현생에 행복하거나, 반대로 전생에 나쁜 짓을 했다면 현생의 삶이 고달프거나 하는….
"선과 악은 그렇게 일방적이지 않고 상대적이에요. 예를 들어 전생에 A가 B에게 잘못을 했다면, 잘못이란 표현보다 실수라고 하는 것이 맞겠죠. 그 실수를 갚기 위해 A는 B를 다시 현생에 만나는 거예요. 윤회는 사필귀정의 개념보다는 여러 생에서의 교차되는 부분에 대해 그 장단점을 보완하고 개선하기 위한 작업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보면 됩니다."
그녀가 말하는 카르마는 과실이나 실책을 벌하는 것이 아니다. 행위 전체를 통해 영적 균형을 회복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녀는 사람은 죽기 직전에 자신의 생애를 함축해서 보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스스로 보완할 부분을 설계해 현생에 다시 태어난다. 그렇다고 현생의 운명이 이미 정해진 것이라 볼 수 없다. 살아가면서 찰나의 선택은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평소 부정적인 결과로 이끄는 잘못된 선택을 피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명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기 참회와 반성은 지혜로운 선택으로 이끈다.
자기 자신을 바로 알기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법, 명상이나 수행이 일반인들에게 쉬운 일일까? 그녀는 어렵지 않다고 단언한다.
"매사에 한 번 더 생각하면 됩니다.'말 한 마디를 할 때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내뱉어라'. 그것이 바로 수행이에요. 이런 작은 습관들이 모두 수행의 기초지요. 처음엔 시간이 걸리고 어렵겠지만 나중에는 빨라지고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굳어지죠. 명상 또한 처음에 온몸이 근질거리고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나지만 습관이 되면 눈을 감고 호흡 한 번으로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그녀는 스스로의 문제와 그 해결점을 가장 잘 아는 이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다. 삶이 힘들어 자신에게 찾아오는 사람들도 이미 스스로 답을 알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죠? 맞죠?' 하며 누군가와 이야기하며 답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어 오시는 거죠. 대부분 답을 알고 있고 또 옳은 답이에요. 주변의 흐름에 동조해 따라가지 마세요. 그러다 보면 무언가를 잃고 손해 보는 일이 생겨요. 그것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사랑과 연민의 감정을 헷갈려 스스로를 희생하는 결혼을 하는 여성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기감정에 대한 연구가 불충분한 경우인 것.
"인연에 휘말리는 것은 전생에 행한 카르마에서 비롯된 것인데 제가 제일 말하고 싶은 것은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본질을 바라보는 공부만으로 그것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이런 분들의 전생을 보면 전생에도 이런 성격과 성향이 읽힙니다. 환생을 했더라도 결국 자기의 모습이 남아 있는 거죠."
박진여씨가 하는 상담의 본질은 전생을 통해 지금의 삶의 방향성을 찾아주는 일이다. 그녀의 상담 중 독특한 것 하나는 모든 상담자들과의 대화를 녹음해 전해준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거나 이해가 안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시간이 흘러 사건의 연장에서 또 다른 일이 생긴다거나 할 때 상담자는 저와의 대화 내용을 다시 듣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녹음을 해드리고 있어요.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방법 중 하나지요."
상담을 의뢰하는 내용의 대부분은 주변인과의 갈등 관계가 어디서 온 인연인지 궁금해하는 경우다. 전생을 리딩해보면 그들은 상대적인 가해자와 피해자일 뿐 과거에도 대립이 있던 사이가 많다고 한다.
"한 여성이 사사건건 자신의 의견에 반발하는 시누이가 미워죽겠다는 거예요. 거슬러 올라가면 전생에 자신이 상대방을 몰래 곤란에 빠뜨렸다거나 모함을 했던 모습이 읽혀요. 그런 이야기를 해드리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거나 그럴 수 있겠다는 반응을 보이시죠. 억지로 관계를 회복하는 건 권하지 않아요. 생각의 빌미를 제공하는 게 중요해요. 자신이 변하면 상대방도 100% 변하게 돼 있어요. 원인을 알게 되고 이해도가 달라지면 굳이 상대방에게 행동으로 보이지 않아도 둘 사이는 달라져요."
한번은 부모에게도 욕설을 퍼붓고 경찰서를 오가는 '일진' 자녀를 둔 어머니가 상담 요청을 해왔다고 한다.
"전생을 보니 아들은 무사, 어머니는 주술사였어요. 주술사는 무사의 승전을 기원했고 그로 인해 권력을 쥘 수 있었죠. 그런 인연으로 현생에 모자지간으로 만난 거예요. 주술사의 영적 도움으로 무사는 많은 희생자를 만들었으니 그로 인한 카르마를 '일진' 아들을 통해 갚고 있는 것이죠. 이런 경우 봉사활동이나 기부를 권할 수도 있지만 이 어머니의 전생은 주술사라 본인 스스로의 기도를 통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어머니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절에 다녔는데, 100일째 되는 날 아이가 갑자기 존댓말을 쓰더랍니다. 그리고 가지 않던 학교도 가게 됐다고 해요."
박진여씨와의 인터뷰는 전생의 진실 여부에 대한 대화가 아니었다. 그것과 상관없이 그녀는 전생이란 매개체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선행과 수행을 강조한다. 그것이 본질에 가깝다.
"개인의 삶 하나하나가 굉장히 소중해요. 제 상담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착하게 사는 것'입니다. 뭔가를 바라거나 불편하다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 우선이어야 해요. 간단합니다. 착하게 사는 것으로 카르마를 갚고 자신을 정화시킬 수 있어요. 다음 생의 행복은 덤입니다. 이것이 제가 드리는 메시지입니다."
마지막으로 박진여씨가 전해준 기자의 전생 이야기로 인터뷰 기사를 마친다. 기자는 별의 위치나 운행으로 점을 치는 점성술사였다고 한다. 평소 점에 대해 관심이 많고 남의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성격은 전생에서 온 습성이었을까(웃음).
그녀는 제2의 직업으로 타로 전문가나 심리치료 상담가를 추천했다. 개인적으로 심리학과에 큰 관심이 있었지만 결국 비교적 취업이 잘되는 학과를 선택했던 고3 시절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기자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나온 발언이라 좀 놀랐다. 물론 전적으로 그 말에 의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무심한 듯 건네는 그녀의 말에는 분명 에너지가 있었다. 한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전생 리딩 능력을 차치하고라도 이것은 박진여씨만의 특별한 능력이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안지영>
전생연구소 박진여 인터뷰 영상
[가슴의 대화] 2회 1부 - 전생연구소 박진여 님 편 Heart to heart 2nd story session1)
[가슴의 대화] 2회 2부 - 전생연구소 박진여님 편 Heart to heart 2nd story session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