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남편이 베오베에 있는 밀게 글을 보지 말라고 했다. 고구마 백 개 먹은 기분이 들 거라며.. 보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해서 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병역의무를 남자가 지는 데에 대한 얘기인 것 같아 글을 써 본다.
일단 국방의 의무와 병역 의무는 다르다. 병역의 의무는 우리나라 여자들 중 누구도 지고 있지 않다. 이것은 신체가 약하다는 이유로 남자들에게 받는 배려이며 특혜다. 그리고 이 크나큰 특혜는 여성에게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데 있어 꽤나 불리하게 작용한다.
가정에서도 그렇고 사회에서도 그렇고 책임과 의무를 많이 지는 사람에게 권력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권력은 자연스럽게 사회 안에서 맡은 부분이 큰 사람에게로 이동하게 되어 있다. 회사에서만 봐도 맡은 업무가 많은 사람이 목소리가 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여기서 고구마를 열 개 정도 쳐먹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20대 초반에 아직 사회생활도 못 해본 남자가 고작 2년 몇 개월 군대를 갔다 온 것이 뭐 그렇게 크나큰 의무이고 사회에 도움이 되냐고. 글을 쓰면서도 답답함이 밀려 온다..
남성들이 군대를 감으로써 잃는 것이 고작 2년 몇 개월의 경력단절이 아니다. 뇌가 똑바로 박혀 있고 뉴런이 제대로 작용한다면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인데, 가끔 장식용으로도 쓰기 괴로울 정도로 뇌가 빠개진 사람들이 생각 없이 말하는 것이 보기에 너무 안쓰러워 친절하게 설명해보려고 한다.
남자들은 군대라는 곳을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가야만 한다. 면제를 받으면 안 된다. 심지어 남자들끼리도 공익을 무시할 정도로 사회에선 남자들에게 엄청난 희생을 강요한다. 20대 초반에 여자들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본인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것들을 얼마나 겪어봤는가..? 남자들은 군대에 입대하면서 어쩌면 30대 여자들도 겪어보지 못한 감정을 겪는다.
그러나... 힘들다고 해서 울어서도 안 된다. 화가 난다고 해서 선임들에게 화를 내거나 대들어도 안 된다. 감정 컨트롤을 못 하면 안 된다. 좋아도 싫은 척 해야하기도 하고 싫어도 좋은 척 해야 하기도 한다. 티비를 보면서 웃기다고 웃어도 안 되고 슬프다고 울어도 안 된다.
여자들이여, 상상이 가는가? 생리중이라 미친 듯이 우울하고 짜증이 나는데, 표현을 할 수가 없다. 티를 내면 안 된다. 이런 감정의 억누름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나는 회사를 여러 군데 돌아다녀봤지만, 회사생활이 힘들다고 우는 남 는 한 명도 보지 못 했으며, 회사 생활이 힘들지만 울지 않고 버티는 여자도 한 명도 보지 못 했다. 회사 생활을 잘 하는 극소수의 여성과 힘들다며 우는 여자들만 있었다. 회사 생활이 힘들다고 우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나쁜 건 회사 생활을 힘들게 만드는 회사 그 자체이다.) 내가 본 사람들의 표본이 적기 때문에 모든 여자들이 다 그렇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남자들은 군대에서 철저한 위계질서와 감정의 억압을 배워 온다. 인내와 근성을 배워서 온다. 이것도 절대 좋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것을 한창 나이인 20대 초반에 겪어야 한다는 것이 매우 안타깝고 미안하다.
야근을 해도 버티고, 상사가 지랄맞아도 버틴다. 그런데 술이나 담배가 들어가지 않으면 욕을 잘 하지도 않는다. 계속 회사를 다닌다는 게 버틴다는 것이 아니다. 정말 잘 참는다. 술이 들어가고 욕을 하고 때려쳐야지 하면서도, 맨정신일 땐 그 지랄맞은 상사한테도 싫은 티 안 내려고 노력한다. 감정을 숨기고 표정에 드러내지 않는다. 이것을 보고 나는 남자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아니다.
남자들은 군대에 가면서 힘들다 라는 감정표현을 잘 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정말로.. 미안하게 느낀다. 고구마 열 개 쳐먹은 사람들도 미안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냥 안 돌아가는 머리라도 천천히 굴려서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 글을 보고 화가 나는데 화내는 댓글도 쓰면 안 되고, 누구한테 얘기를 해서도 안 된다. 아무도 안 듣는데 그냥 혼자 욕을 하든가 속으로 욕하고 말아야 한다. 이 글이 싸이코 미친냔이 썼다고 생각해도 아무런 표현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봐라. 감정 표현이 익숙한 사람이라면 내 얼굴이 바로 눈 앞에 있을 때 쉽게 웃을 수 있겠는가? 군대에선 그런 것을 강요 받는다. 나는 이것이 남자들이 군대에 감으로써 잃는 엄청 크고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여자들은 비교적 감정표현을 쉽게 할 "수" 있다.
맘에 안 드는 점을 위트 있게 지적할 수도 있고 투정 부리듯 말을 해볼 수도 있고 힘들다고 징징거릴 수도 있다. 이런 것으로 욕하지 않는다. 남자들에게 귀엽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 귀엽다 라는 말도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러나 남자들 사이에서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것은 거의 사회생활에서 "나는 약자이니 잡아 드시오" 라는 것과 비슷하다. 남자들 사회에서 감정표현은 패널티다.
이것은 단순히 군대가 잘못된 걸 여자들이 왜 미안해 해야 하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진짜 뇌가 갈려이...ㅆ는...ㅎㅎ)
여자들도 그들의 그러한 문화의 동조자이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한 번이라도 그런 사람들이 찌질남으로 비춰졌다면, 무의식적으로 우습거나 얕잡아 본 적이 있다면 백 번 천 번 미안해 해야 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러한 문화를 경험해볼 생각도 없고 병역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없으며 그런 문화가 뭣 같으니 뜯어 고쳐야겠다는 생각도 없다. 누군가 갑자기 여자도 병역 의무를 져야 한다고 갈 거냐 하면 가야한다고 바로 대답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평생 그 짐을 조금씩 덜면서 사는 동안에 토를 달지 말아라. 겪어보지도 않고 그까짓거 이딴 소리 지껄이지 말아라. 그게 맨즈플레인이랑 뭐가 다른가? 문학작품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당신 앞에서 베스트셀러라고 한 권 읽은 걸로 문학을 다 아는 것처럼 씨부리면 얼마나 우스워 보이겠는가? 남자들 앞에서 군생활 얘기하며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나불거리는 그 입이 당신을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 줄 테니 제발 그냥 모르면 다물고, 알아도 다물어라.... 분명 다 아는 게 아닐 거니까... 토달면 고구마 백 개다...
아.. 그들이 잃은 것은 사실 더 무궁무진하게 많을 것이다.. 그런데 쓰면서도 화가 나서 이만 턴을 마친다......
남편한테 고구마 백 개 먹인 댓글들이 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