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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두 여자
게시물ID : mystery_66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헨리죠지
추천 : 14
조회수 : 4718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5/08/20 13: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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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심가에서 리어카를 끌며, 장사를 한지 어느덧 5년차에 접어들었습니다. 

20대의 대부분을 밑바닥에서 지낸 저인지라, 노점은 저랑 아주 찰떡궁합이더군요.

물론, 야외에서 일을 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여러가지 애로사항이 따라다닐 수 밖에 없지만, 

제가 그동안 살았던 재활용도 안되는 쓰레기같은 삶에 비해선, 그나마 인간답게 돈을 벌게 됐으니, 이정도면 뭐... 만족하네요...


지긋지긋할 정도로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몇 년을 일하다 보니, 웃고 울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꽤나 쌓이더라구요.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의 일인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웃어 넘길 법한, 아름답게 남아야 했던 추억이, 무서운 일화로 변해버린 사건이 있기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게요.

    
                               
폭염의 사막과 혹한의 시베리아에서도 어딘가에선 한줄기 물이 흐르고, 한송이 꽃이 피어나기 마련이죠. 

사계절을 몸으로 맞이하는, 극한의 근무환경 속에서 저를 달래주던 유일한 낙은, 다름아닌 커피였습니다.

제가 일하는 장소 바로 뒷편 건물 2층에 카페가 하나 있거든요. 


서울 중심가의 수많은 상가들과는 다르게, 그 카페는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에요. 

주인은 60대부부였는데, 참 대인배스럽게도 자신들의 가게를 가리고 있는, 노점상들에게 호의적이었어요. 

커피도 기존의 값보다 저렴하게 내주셨고, 화장실도 언제나 필요할 때 쓰라고 배려를 해주셨습니다. 

좌판에서 혼자 일하는 특성상, 화장실은 나름 작지 않은 문제거든요. 

지금도 그렇지만 저에겐 참 고마운 분들이에요. 


카페특성상 아무래도 아르바이트생들이 주로 여자였는데, 전부 20대초반의 대학생들이었죠. 

갓 서른을 넘긴 저였지만, 동료상인들 중에선 제일 막내다 보니, 자주 커피를 주문하러 갔는데요. 

처음엔 좀 귀찮긴 했지만, 카페의 풋풋한 여자 알바생들과 농담을 주고 받는 것 역시, 하루 중 제일 웃음이 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럴 때 아니면, 언제 그런 젊고 귀여운 여자애들이 저한테 말 한 번 걸어주겠어요? 

카페에 올라가기전, 꼭 한 번씩 거울을 보며 머리와 옷 매무새를 정돈하기도 했죠. 하하. 


음... 갑자기 씁쓸해 지는군요... 아무렴 뭐! 사족이 길었습니다. 

작년 10월쯤 이었던가? 슬슬 옷차림이 두꺼워지고 있을 무렵, 장사 준비를 끝내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러 카페로 올라갔어요. 

전엔 못 보던 알바생이 있더라구요. 그날 일을 처음 시작한 사람인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알바생들 대부분이 학생이다 보니까 친해질만 하면 바뀌더라구요. 

뭐 덕택에 뉴페이스를 기대하는 재미도 쏠쏠했었습니다만... 

각설하고, 그 당시 새로운 알바생을 편의상 A라고 칭하겠습니다. 


A는 외모가 특출난 친구는 아니었지만, 이미지가 참하고 수수한 것이, 호감이 갈 수 밖에 없는 인상이더군요. 

뭐랄까? 세대를 아우르고, 남녀 구분없이 모두가 좋아할 만한 얼굴이라고나 할까? 

또 매사에 예의바르고 반듯할 것 같은? 지금은 사진이 없으니 그정도로 대충 정의하겠습니다. 

카페근무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한 명, 오후 5시부터 마감까지인, 11시까지 한 명, 이렇게 2교대였습니다. 

A는 오후타임 근무였고, 저 역시 오후 5시이후로 장사가 허가됐으니, 하루에 한 번씩은 꼭 A와 마주할 수밖에 없었죠. 


당시 외로운 솔로였는지라, 여자만 보면 외모, 성품 가리지 않고 본능적으로 매너남이 됐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다만...) 거의 매일 A를 보다보니, 우리 둘은 어느정도 말을 트게 됐고요. 

당시 A는 24살이었고,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있었는데요. 

지난 몇 년간, 카페를 거쳐간 수많은 아르바이트생 중 예쁘고 매력이 철철 넘치는 친구들이 한 둘이 아니었지만, 제가 실없는 농담을 할 때마다, 입을 가리고 수줍게 웃는 A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제마음을 흔들리게 하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카페에 올라갔죠. 

출근 전 몇 잔이나 마셨던 커피였지만, 꼭 한 잔을 더 먹어야 겠더군요. 하하.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던 A를 보고 마냥 헤벌레하고 있는데, 옆에 처음 보는 아르바이트생이 눈에 들어왔어요. 

순간 든 생각은 'A와의 이별이 가까워졌다.' 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진지해지면서, 후임자에게 일을 인계중인거냐고 A에게 물었죠. 곧 일을 그만두냐구요.

"아뇨~ 얜 오전타임 일하는 앤데, 심심하다고 안가고 있는 거에요."

A의 답변에 이내 안심하며 다시 전 커피를 맛있게 마시며, 즐겁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 날이었을 겁니다. 밤11시가 지나니 A가 퇴근을 하더군요. 

전 그녀에게 다가가 뜬금없이 연락처를 물어보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무리 남녀라고 해도 어느정도 얼굴을 익힌 사이끼리, 연락처를 주고 받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 때만큼은 제 심장이 A의 얼굴이 궁금한지, 자꾸 밖으로 튀어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더군요. 

A에게 제 전화기를 건냈는데, 손이 심히 떨렸어요. 

좀 창피했는데, A는 당황을 하며 안절부절하다 결국 제 전화기에 그녀의 번호를 입력해 줬습니다. 

그 순간 눈에 들어온 A의 놀라서 동그래진 눈동자마저 사랑스러웠죠. 


이후 전 카카오톡으로 A와 메세지를 주고 받으며 친밀감을 높히려고 노력했습니다. 

당시 한량이었던 저랑은 다르게 A는 정말 바쁜 삶을 살고 있었어요. 

집안사정이 평탄치 않은 것도 아닌데, 평일 오전엔 학교를 가고 오후에는 카페알바, 그리고 주말에는 도서관에서 알바... 알면 알 수록 성실, 근면이 몸에 벤, 대단할 정도로 자립심이 강한 여자였습니다. 

또 인품은 얼마나 훌륭한지, 카페의 사장님도 A를 예의바르고, 상냥하다며, 극찬을 할 정도였고, 아까 언급했던 오전타임 알바생도, 퇴근시간이 되었음에도 본인이 할일이 없으면, 꼭 남아서 A의 일을 거들어 주었어요. 

그것도 무상으로 말입니다. 가끔은 마감때까지도요. 


A가 털털하고 활발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자애롭고 배려깊은 언행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그녀를 좋게 평가하게 했죠. 


A의 호감을 사고 싶어 그녀가 전공하는 프랑스어를 공부하곤 했었어요. 

프랑스어를 전공하는 A의 웃음을 끌어내는 가장 확실한 무기는, 저의 어설픈 프랑스어였으니까요. 

그렇게 서로가 편해져 갈때, 저는 조심히 사석에서의 만남을 제안했고, A역시 흔쾌히 응했습니다.
 

전 만나서 술이나 마시면서 이야기나 하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평소 그녀의 이미지답게 술은 입에도 못 댄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녁이나 같이 먹기로 했는데, A는 퇴근후에도 자주 그녀를 도와줬던, 오전타임 알바생과 함께 온다고 했습니다. 이쯤에서 그 친구를 B라고 칭하겠습니다. 

B는 갓 스물을 넘긴 여자애였는데, 키가 작고 통통한 스타일이었어요. 

특징이 하나도 없는,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는데, 확실한 건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유형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A가 B와 함께 온다는 것에 긴장이 풀렸죠. 

남자분들 다 아시잖아요? 여자를 상대할 때, 술이 남자의 전투력을 대폭 강화시킨다는 것을... 

어떻게 보면 다행이었죠. 애초에 무기가 금지된 전쟁이다 보니, 말주변이 없는 저로선 맨몸으로 A와 맞서기가 민망하고, 부담 스러웠으니깐요. 

둘보다는 셋이 분위기가 화기애애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셋이 만나서 놀았던 날은 즐거웠습니다.


역시나 A는 평소 이미지대로 생각이 깊은 똘똘한 여자였고, B도 막상 이야기를 해보니 나름 재밌고 매력이 있더군요. 

그 날 이후로 저와 A뿐만 아니라, A와 B 그 둘도 보다 절친한 사이가 되었어요. 

특히나, A가 며칠동안 독감으로 고생한 적이 있는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감까지 도와준 정많은 B가 너무 고마웠죠.

그렇게 우리 셋은 종종 어울렸습니다. 전 A와 전화로 밤을 새는 날도 많아졌구요. 


그때부터였습니다. B는 우리 셋을 뭔가 하나의 그룹이라고 생각 했었는지, 제가 A를 만날 때마다 눈치없이 따라 나오더군요. 매번 말입니다. 

저와 B도 친한 오빠, 동생사이가 되긴 했지만, 매번 만남이 그렇게 되자 저는 불만이 생길 수 밖에 없었어요. 

A를 향해, 남들이 들으면 아무리 성자라도 쌍욕을 날릴만한 오그라드는 멘트나 평생을 솔로부대에 충성을 바치고 있는 침울한 남자애들의 격노를 살만한 가벼운 스킨쉽도 하고 싶었는데, B의 존재가 이런 애정표현 자체를 전부 차단시켜 버렸으니깐요. 


전 소개팅을 준비해 B의 관심을 돌릴려고도 해봤지만, 낯을 가리는 그녀는 그런 자리에 전혀 관심이 없더군요. 

A도 뭔가 답답해하는 눈치였지만, 남에게 상처주는 말은 일체 못하는 성격답게 달리 표현을 하진 않았습니다. 단지 저를 달랠 뿐이었죠.

"멀리서 올라와 친구도 없고 쓸쓸한 아이에요. 오빠가 조금만 이해해줘.."


이후 단하루도 빠짐없이 B는 카페의 마감 때까지 A를 도와주었습니다. 

네. 매일매일, 그것도 무상으로요. 

당시 전 A와 단순한 썸을 넘기기 바로 직전의 사이였지만, B처럼 A를 위하진 못했을 겁니다. 

슬슬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B의 카카오톡 프로필마저 A와 같이 찍은 사진으로 도배되고 있었거든요. 


A가 참으로 다정한 성격이었기에, 친구도, 애인도 없는 외로운 B는 자신을 공감해주고 받아주는 A와 계속 같이 있고 싶어하는 것 같았죠. 

뭔가 A에 대한 의존증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전 A와 통화 중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B를 위해서라도 어느정도는 선을 그어야 한다구요. 

하지만 착해빠진 A는 오히려 저를 냉혈한 취급하더군요. 바보같이... 

결국, A의 배려심과 동정심이 B를 더 망치고 있었던 겁니다.


어느 날 일이 끝나고 귀가전 A를 만났습니다. 역시나 B도 A옆에 철썩 같이 달라붙어 있더군요. 

하긴 제가 A를 만나는 자리에 B가 없었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겁니다. 

간단히 밥이나 먹고 헤어지려는데, 전 점점 심기가 불편해지고 있었어요.

식사 중에도 B가 잠시 화장실을 갈 일이 있으면 꼭 A를 같이 데려가려고 하니 말이에요.


단 한시도 A와 떨어지기 싫은 것 같더군요. 마음약한 A는 B의 어리광을 다 받아주고요. 

B가 성소수자가 아닌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혼자가 되는 타이밍이 2~3번 되다 보니, 어느새 B의 모든 것이 못마땅해 보이더군요. 

평소 유순하게 말로 B를 설득하리라 굳게 다짐을 했건만, 그 날 전혀 상관없는 개인적인 스트레스마저 B에게 다 풀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인정합니다. 말을 좀 심하게 하긴 했어요. 

B는 아무말 없이 눈물을 흘리며 식당밖으로 나갔고, A는 저를 심하게 나무랐죠. 


"오빠... 말을 좀 가려서 해야지. 남에게 상처주는 건 정말 질색이에요. 이번은 좀 심했어."

이런 A의 성격도 너무 답답했고, 결국 전 그날 A와도 심하게 말다툼을 하게 됐어요. 

잠깐사이에 두명의 여자를 울리고 만 것입니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인지 전 먼저 사과를 건내지 않았죠. 

그 날은 A 특유의 이해심 넘치는 성격도 만만치 않게 제 속을 긁었거든요. 


다음날, 전 불편을 감수하고, 먼거리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카페 마감 후 같이 나오는 A와 B를 마주쳤지만, 우린 서로 시선을 피했어요. 

그 날 밤 A에게 사과를 하려고 메세지를 보냈지만, 제 성급한 성격이 실망스러웠는지, 답장은 받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A는 감정을 추스리기 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죠. 


며칠이 지난 그날도 일을 마친 A가 카페밖으로 나오더군요. 

그 지긋지긋한 B와 함께 말입니다. 역시나 A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B를 보니, 그녀의 A를 향한 감정에 비하면, 저의 것은 보잘 것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먼저 다가가서 그 둘에게 사과를 했죠. 

마음의 상처가 깊었던 B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A도 그게 눈치가 보였는지 고개만 살짝 끄덕이더군요. 

B야 그렇다쳐도 저보다 B를 더 위하는 것 같은 A의 반응은 실망스러웠습니다. 

결국 우린 연락을 두절했고, 전 커피가 마시고 싶어도, 소변이 아무리 급해도, 절대 카페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혹여나 A와 B를 마주칠까봐, 그들의 퇴근 시간 전엔 일을 마무리하고 급히 귀가했죠. 

사실상 그렇게 A와 저의 관계는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그들을 피해, 그들과 대면할만 한 길을 전부 차단시키다 보니, 어느새 A와 B는 카페 일을 그만둔 것 같더군요. 

찝찝하고 아쉬웠지만, 묻어두기로 했습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으니깐요. 


그렇게 2주정도 지났을까요? 우울함도 슬슬 잊혀져 갈 때쯤, 

거리에서 B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어느정도 거리가 있었더라면 피해갔겠지만, 모른척 하기엔 너무 가까운 거리였죠. 

젠장! 민망하고 뻘쭘하더군요. 어쩔 수 없이 전 영혼없는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속좁은 저랑은 다르게 시간이 흐르면서 B는 어느정도 감정이 누그러졌는지, 절 반갑게 맞아주더군요. 아무래도 B가 어리다 보니, 그 나잇대 특유의 쿨함이나 순수함이 있었나 봐요. 

전 최대한 빨리 자리를 뜨고 싶었으나, 순진한 건지 뭔지, B는 말이 많더라구요. 

결국 주책맞은 B의 입은 A까지 언급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A의 근황은 저도 궁금하긴 했죠. 

A이야기가 나오니 귀가 쫑긋 세워지더군요.

"언니도 잘 지내요. 우리 지금 같이 자취하는데 오늘은 간만에 같이 맛있는 거나 해먹으려구요. 
 오빠도 올래요? 간만에 언니도 보구요."

당연히 전 바쁘다는 핑계로 B의 제안을 거절했죠. 

문득 A가 등교거리가 멀어 자취방을 알아 보고 있는데, 서울은 세가 너무 비싸 마음이 맞는 룸메이트가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이 떠오르더군요. 

B와 헤어져 돌아가던 중, A의 얼굴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하면서, 잠시 옛생각에 잠겼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와 공감했던 순간들을 되새김질 하니, 미안함과 후련함, 그리고 그리운 감정들이 빠르게 교차하더군요.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별일 없이 잘 지낸다는 A의 근황을 들으니 이내 가슴이 훈훈해 졌습니다. 

그렇게 좋은 추억으로 남는듯 했죠.


그 후로 3~4일 정도 지났을 겁니다. 분명 예보엔 잡히지 않았는데,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면서 비가 미친듯이 쏟아지더군요. 우천시마다 팔았던 우산도 다 떨어져, 리어카에 비닐을 씌워놓고 하릴없이 하늘만 보며 인상을 구기고 있었죠. 

비가 길어질 것 같아, 잠시 카페에 올라가 커피를 한잔 주문해 모처럼만에 혼자 여유있게 테이블에 앉아 커피향을 음미했습니다. 

언제나처럼 사장님내외는 절 친절하게 맞아주셨구요. 

카페와 관련된 추억이 하나 생겨서인지, 내가게가 아님에도 뭔가 애착이 가더라구요. 

한창 A와 교제할 때, 주변을 어슬렁거리시는 사장님이 눈치챌까봐 서로 말없이 설렌 맘으로 윙크를 하며 눈빛을 교환했던 장소였으니까요. 


그렇게 다시 한번 감상에 빠지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그러다 본의 아니게 사장님내외의 대화를 잠시 훔쳐 듣게 되었는데요. 

익숙한 이름이 언급되는 것에 전 바로 그들쪽으로 시선을 돌렸죠. A의 이름이었어요. 


사장님내외는 다소 심각한 표정이었기에, 무슨일인가 궁금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A와 제가 교제했다는 걸 모르기 때문에 전 말을 빙빙 돌리고, 능청을 떨며 대화에 끼어들어 무슨 일인지 물어봤죠. 

사장님의 대답은 절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아니 이 친구가 어느 날 연락도 안하고 일을 안 나오는 거야. 
 
 월급날도 코앞이었고, 그럴 애가 아닌데 말야. 
 
 며칠을 기다려도 전화 한통 없어서 화가 나긴 했는데, 그래도 어떡해? 

 그동안 열심히 잘해줘서 어떻게든 급여라도 전달해 주려고 집으로 전화했지. 

 그런데 얘가 그동안 집에도 안 들어왔다네?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도 오리무중이고... 

 워낙 아꼈던 애라, 오늘도 얘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물어봤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고 하더군. 대체 무슨 일인지... 쯧쯧." 


그 말을 듣자마자 카페에서 나와 우산을 쓸 겨를도 없이 요란하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A의 번호를 빠르게 입력하고 통화버튼을 눌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전화기는 꺼져있더군요. 

혹시나 싶어 B에게도 전화를 해봤는데, 번호가 바꼈는지 결번이었구요. 


무섭게 내리는 비에 온몸이 젖고 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자꾸만 들기 시작하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도대체 B의 말은 뭐였을까요? 보통 의존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심경이 불안정 하겠죠? 

그렇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허언이 튀어나오는게 아닐까요? 

아니면 불안한 제 마음이, 단순히 과대망상 일지도?


만약 그것들이 다 아니라면... 

A를 향한 B의 집착이 병수준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지금도 끔찍한 상상들이 머리속에서 펼쳐지고 있지만, 아닐 겁니다. 

그런데도...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초조하네요. 

제발 A에게 아무 일이 없기를...
출처 루리웹 단황야 님

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community/327/read?articleId=26736872&bbsId=G005&itemId=145&page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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