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영화 리뷰 쓰는 재미에 빠져서 한 번 써봤습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당신은 무엇을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나]
알랭 레네 감독은 나이 91세의 노장 감독이다. 현대 감독 중 가장 지적인 인물로 일컬어지며, 실험적인 필모그래피를 남기고 있다.
당연하게도, 그는 오랫동안 예술분야에 몸담아 오며 자신의 행하는 예술에대한 고민, 예술관을 제대로 이해해 주길 원하는 갈증이 있었을 것이다.
감독은 극중 앙트완의 에우리디스의 입과 행동을 통해 통해 오랜 세월 쌓아온 자신의 예술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를 표출하고 있다. 오르페우스는 삶, 업보, 세속 쪽에 속한 관객또는 대중의 역할을 부여 받는다. 그리고 담배 피우는 남자는 관객들이 감독의 예술관을 진실되게 바라봐주길 원하는 것을 말하고 싶은 감독 내면의 모진 캐릭터를 맡는다.
[에우리디스]
에우리디스(감독)는 제2막에서 오르페우스와 함께 삶의 업보와 인과가 모든 순간에 함께 하고 있기에,
어두운 단편일지라도 삶을 구성하는 조각이 되기에 그것들 포용하자는 입장이고,
우리는 그것들에 둘러싸여 절대 진실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모든 것이 우리와 함께 영속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트럭에 치여 죽음을 맞게 된다. 여기서 맞게 된 죽음이란,
삶에 의해 얽힌 업보의 그물을 걷어낸 진실한 상태를 말한다.
이리하여 에우리디스는 진실된 상태/예술관/감독 자신을 대변하게 된다.
그 후 그녀가 오르페우스와 재회하는 장면에서 여명이 되기 전에 자신을 똑바로 보지 말아달라는 말은
관객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섣불리 감독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낸다.
[오르페우스, 그리고 담배 피우는 남자]
오르페우스는 앞서 이야기한 제2막의 대화에서 에우리디스에게 말을 하면서
삶의 흔적들이 우릴 덮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며 감독의 설정한 관객의 입장을 취한다.
그리고 담배 피우는 남자(감독)는 극 중 오랜 시간동안 오르페우스(관객)에게
정말로 진실되어진 에우리디스를 볼 자신이 있는지 대답을 종용한다.
이는 관객에게 삶이 축적한 업보와 인과의 그물들을 걷어내고
감독의 예술을 진실되게 바라봐 줄 준비가 되었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그 동시에 그렇게 진실되게 봐주기를 바라는 감독 내면의 욕망을 표출하고 있다.
[앙트완]
앙트완은 자신의 예술을 진실되게 검증받기 위해,
삶을 벗어난 상태인 죽음을 상정한 상태에서 옛 배우들을 불러 연극을 상영한다.
처음 도착하여 상종하는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시절에 에우리디스 역을 맡은 늙은 여배우와 젊은 여배우다.
여기서 배우들의 나이 차이는 서로 다르게 쌓은 삶의 흔적, 업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배우는 오르페우스 역의 늙은 남배우, 젊은 남배우와 함께 교차적, 때로는 대조적으로 연기를 펼친다.
이는 ‘삶’의 무게가 다르기에 생겨나는 예술에 대한 판단의 오차를,
나이가 다른 배우들의 같은 연기를 통해 없애려는 앙트완(감독)의 계산적인 시도이다.
앙트완은 자신이 설정한 조건하에 연극에 대한 검증이 성공적임을 확인하자 비로소 죽음을 택한다.
이 이벤트를 통해 삶과 예술관에 대한 자신의 화두를 해갈한 것이리라.
영화 도입부의 늙은 여배우가 앙트완을 “경험은 앙트완을 완전히 신뢰하게 하는 유일한 분야였죠.”라고 평한 바가 있다.
이 말에 따르면그는 자신의 예술관을 검증하는 경험을 간절히 원했고, 그 경험이 충족되자 삶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뒷받침 하는 대사는 이 여배우의 대사 전에 비서가 “고지의 필요성을 느꼈죠.”라고 하는 말이다.
이 대사에서 ‘고지’란 자신의 예술을 진실되게 바라볼 장소 또는 계기를 뜻한다.
그는 그의 예술관을그의 가치에 따라 검증하고 싶다는 심한 갈증을 느꼈을 것이다.
이는 감독의 예술관과 고민을 앙트완을 통해 투영한 것이다.
검증은 성공적이었다. 앙트완이 ‘고지’의 필요성을 느껴 ‘경험’하고자 한 것을 성공적으로 경험하였다.
또한 극 후반 조문 장면에서 앙트완을 찾아간 배우들이
그 당시의 배역과 관계 없이 짝을 지어 돌아가는 모습에서
삶의 필터를 벗어 던진 검증이 이루어졌음을 유추할 수 있다.
[당신은 이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에우리디스의 “그가 날 볼 수 있을까”하는 말에
누군가가 “지금은 그래. 널 잃는다는 두려움 없이.”라고 답한다.
그 누군가는 담배 피우는 남자일 것으로 여겨진다.
감독은 마지막으로 에우리디스의 입을 빌려
‘사람들이 세속과 업보, 흔적들에 얽히지 않고 진실된 나의예술관을 볼 수 있을까?’하고 물은 셈이고,
담배 피우는 남자의 답은
‘(준비가 된다면) 어서 나를 진실되게 봐주었으면 한다. 당신들이 그럴 자격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라는 감독의 희망적인 속내를 대변해 준다고 할수 있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는가]
영화의 제목부터가 ‘당신은 아직 진실된 나를 보지 못했으니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과 다름 없다’고
도발적으로 갈구하는 태도를 취하며 주제를 뒷받침한다.
[한 줄 요약]
천재 노장감독의 인생과 예술관을 정리하는 유서같은 영화
보너스 한 줄 요약: 이 영화는 천재적으로 고차원적인 ‘안알랴줌’
"왜 내 예술관을 아무도 진실되게 못 봐주지ㅠ"
"무슨 일인데?"
"안알랴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