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단편] 잠들지 못한 이를 위한 커피 한 잔
게시물ID : readers_100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밥먹는남자
추천 : 3
조회수 : 628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11/22 19:01:13
어제 새벽부터 지금까지 한숨도 자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피곤하지도 않고 졸리지도 않습니다. 
  어제 자정에 잠들기 직전 마신 커피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커피를 좋아하던 당신의 기억이 때문일까요?
  
  당신은 설탕이나 크림을 한 스푼도 넣지 않은 블랙커피를 좋아했죠. 
  기억하나요? 당신과 내가 처음 만났을 때도 당신은 블랙커피를 주문했어요.
  말이 별로 없고 조용하게 앉아 커피를 마시는 모습은 특별히 흠잡을 만한 부분은 없었어요. 단지 처음엔 괜히 폼잡으려고 블랙커피를 마시는 줄 알고 속으로 비웃었답니다. 
  항상 설탕 두 스푼에 크림까지 넣어 마시는 저로서는 블랙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하지만 당신이 화장실에 간 사이 그 날 당신과 나를 소개시켜준 나의 친구이자 당신의 아내가 될 사람이었던 L이 당신이 항상 블랙커피를 마셨고, 블랙커피를 좋아한다고 말해줬죠.그 때는 매운음식은 몰라도 쓴 음식을 좋아하다니, 마조히스트가 아니냐며 L을 놀렸죠. 결혼얘기를 다시 생각해보라며 농담을 했지만 L은 웃으며 당신이 어떤 이상한 습관을 가지고 있더라도 결혼했을 거라며, 이젠 단점까지 사랑한다고, 쓴 커피를 좋아하는 건 단점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대답했어요.
  당신이 화장실에서 돌아온 후에도 난 L의 대답을 머리속에서 계속 되뇌이며 당신에게 얼마나 좋은 장점이 있기에 L이 저렇게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지 궁금했어요.
  
  당신과 두번째로 만났을 땐 L의 바쁜 일 때문에 내가 대신 결혼식 준비를 도와주러 왔을 때 였죠. 바쁜 L을 대신해 식장을 예약하고 구두를 봐달라는 일. 아직 어색했던 당신과 같이 다녀오라는 L의 말에 당황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제일 친한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고 했죠.그 때는 당신과 나의 교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기에, 친해질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하지만 하룻동안 같이 다니면서 당신과 내가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는 걸 알게됐어요. 재즈음악을 좋아하는 점, 바다를 사랑하는 점,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는 점, 그리고 아쿠아리움에 가는 걸 좋아하는 것 까지….
  깊게 들어가면 서로를 밀어내는 사회의 인간관계에 지쳤던 걸까요? 
  아니면 남편과 친하게 지내라고 했던 L의 말 때문이었을까요?
  당신이 너무나도 친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당신과는 깊은 친구가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이 날 이후 같은 일로 여러번 만날 때마다 당신을 만난다는 생각에 거울 앞에서 설레며 옷을 고르는 자신을 발견했어요.L이 학창시절부터 나와 함께 꿈꿔왔던 흰 장미 장식이 달린 단아한 신부구두를 당신과 살 때는 정말로 마음이 두근거렸어요.식장을 예약하러 갔을 때 안내원이 좋은 부부가 될거라며 오해를 했을 때 당신보다 먼저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은 내가 그만큼 당황했기 때문이에요. 스스로도 당황한 자신에게 혼란스러웠죠. 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으니까요. 
  
  겨우 모든 일들이 마무리 되갈 무렵,당신과 나는 길거리 카페에 들려 이야기를 나눴죠.그 날도 당신은 블랙커피를 시켰죠.도와줘서 고맙다고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당신 앞에서 저는 뭐라 말을 꺼내야 될지 몰라서 듣기만 하고 있었죠. 나와 친해질 수 있어서 기쁘다고 하는 당신에게 '저도 당신을 만나서 기뻐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특별한 의미를 가진 말처럼 들릴까봐 다시 목구멍으로 집어넣었어요. L과 내가 취향이 같아서 정말 다행이라는 당신의 말에 애써 웃으며 대답했어요. L과 나는 취향이나 취미도 비슷한 점이 너무 많았다고, 이상형이나 장래희망까지도. 그래서 결혼식도 같이 꿈꿨고, 한명이 결혼할 때 다른 한명이 도와주며 늦게 결혼할 사람이 연습을 해보자고 약속했다고,내가 결혼하는 것 같아서 즐겁게 도울 수 있었다고...전 지금 그때 마지막 말을 후회하고 있어요.이 말을 안했다면 당신의 대답을 듣지 않았을 수도 있고,지금 제가 편하게 잘 수 있었을 지도 모르죠.당신은 이렇게 대답했어요.'나도 당신과 함께하는 동안 즐거웠다'고.이 말에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아팠는지 아세요? 하지만 전 당신이 제 마음을 앞으로도 평생 몰랐으면 좋겠어요.당신과 나를 위해서.
  
  L과 당신이 신혼여행을 떠난지도 일주일이 지났네요.
  당신이 간 이후로 이따금 블랙커피를 마셔봤어요.
  달진 않지만 짙은 향기가 있는 커피는 여러번 마실수록 더 마음에 들었어요.
  금방 뽑아낸 커피에서 나는 김에 얼굴이 아롱아롱거리네요.
  밤에 생각이 넘쳐 잠에 들수 없을 때마다 커피가 마시고 싶어요.
  더 잠들 수 없게 되겠지만 아무렴 어때요.
  오늘밤은 설탕을 한 스푼도 넣지 않았지만 달디 단 블랙커피가 마시고 싶네요. 


-----------------------------
2011년 초에 썼던 단편소설입니다. 
이런 소설을 써놨다는 것도 잠시 잊고있다가 다시 읽으니 
감회가 새롭네요.  미숙한 표현도 많이 보이고, 불필요한 글도 많아서 부끄럽습니다. ^ ^ ;;
잔잔히 흔들리는 감정을 표현하려고 애썼는데, 잘 되었나 모르겠네요.  
그래도 오래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는다는게 즐거워요. 
혹시 다른 회원님도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글이 있으면 올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함께 이 기분을 나누고 싶습니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