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희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저희 새 집으로 놀러오셨습니다.
화기애애하게 이야기가 흐르다가 철도 민영화와 박근혜대통령 이야기로 흘러갔습니다.
장인어른께서는 민주당에서 사사건건 시비다. 정책을 이어갈 수 없게 반대를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정부에서 민영화 안한다고 믿어달라 하는데 왜들 저러냐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그런얘기 어디서 들으셨냐고. 신문에서 봤다고 하시더군요.
제 장인 어른은 39년생이시고, 한국담배 인삼공사에서 정년퇴임하신 분입니다. 나름 엘리트이시지요.
그 분 조차도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언론이 신문인데, 아마도 익숙하신 '조.중.동'을 보셨나 봅니다.
제가 그간의 사태들, 그리고 인터넷의 이야기들과 함께 제가 1월 부터 월, 금 서울에가서 집회에 참석할 거다, 그리고 이러이러한 것들이 문제고 그래서 나 또한 움직인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장인어른께서는 여러분들이 말씀하시는 소위, '콘크리트 층'입니다. 장모님은 그저 따라가실 뿐이지요.
하지만, 그 분들은 매체가 한정되어 있습니다. 저 처럼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정보의 진위내지는 공정성을 따져볼 겨를 조차 없으신 겁니다.
나름 그 시대의 엘리트였던 장인어른조차 냉정하게 따져 볼 매체가 없는 겁니다.
물론 어떤 어르신 들은 본인의 잣대를 가지고 냉철하게 작금의 사태 내지는 여러가지 현상을 분석하시지만, 이 분들 또한 단지 정부를 믿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러저러한 말씀을 드렸더니, 장인어른께서 그러십니다. 그런 줄 몰랐다. 나도 보고 싶다. 그래서 제가 일부 보여드렸습니다.
의심은 있으실 테죠. 그래도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습니다. 다행이였습니다. 장인어른과 언쟁을 하지도, 제가 무시하고 침묵하지도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제게 그러십니다. 그러면 안되는 거다. 정부가 그러면 안된다.
아까 OECD관련 글을 읽었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그랬습니다. 아직 정의는 살아있구나. 전세계적으로는 그래도 인간다움. 보편적인 행복의 기준, 배려가 살아있구나 라고...
여러분, 부모님과 어르신들을 탓하지 맙시다. 그리고 그 분들의 한계-능력의 한계가 아닙니다. 시스템의 한계입니다-를 인정합시다. 우리가 딱딱하게 나아가면, 그 분들은 더욱더 세대간의 갈등으로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그 분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시대의 흐름과 기술의 변화를-결국에 90년대 후반이후에 매체의 변화일 뿐입니다-이해시켜드리면, 그 분들 또한 인정을 하십니다. 결국엔, 우리가 그 분들의 자녀와 후배, 후손들이지 않겠습니까?
'구라치다 걸리면 피보는 건 안배웠냐'는 정부와 그 정부의 구성을 통해 이득을 보는 이들에게 돌리고, 우리의 '오함마'는 좀더 '민주적인 절차와 설득의 과정'을 통해 우리 윗 세대와 함께 만들어 갑시다. '콘크리트'는 무적의 그리고 불멸의 물질이 아닙니다. 우리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부수고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세대간 지역간의 갈등이 아닌 화합의 '오함마'를 만들기 위해선 우리 세대에서 그 분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에서 비롯된 접근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좀 더 그 분들을 이해하고 설득한다면, 단 한 번만 휘둘러도 단단한 '콘크리트'를 부수고 새로운 우리의 '콘크리트'를 만들 수 있는 '오함마'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늦은 밤 이렇게 짧은 생각을 올립니다.
모두가 행복한 사회. 모두가 똑같이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저는 행복을 제로섬게임이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가진자는 배려라는 행복을 얻고, 못 가진자는 나름의 풍요라는 행복을얻을 수 있는 어렵고 어떠한 철학자들도 명쾌한 답을 내지 못했던 그 숙제에 대한 답을 수많은 착오속에서 얻은 교훈으로 이제는 만들어가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