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들을 총칼로 학살한 학살자는 뻔뻔하게도 살아남아 호강을 누리고 있고,
민중의 적들과 치열하게 싸우던 정의의 투사는 자신의 일생과 양심에 상처를 입힌 한점 의혹만으로도 원통하고 부끄러워 자신의 목숨을 던진 이상한 세상...

자녀들과 부인의 비리의혹을 당신께서 알고 계셨을지 몰랐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겠지만, 어떠한 경우였든간에 가족들에게 좁혀들어오는 수사망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말도 행동도 아무것도 없었을 테지요.

알았노라 인정하며 정의를 위해 치열하게 싸워온 자신의 일생과 양심을 꺾어버릴 수도 없었을테고, 몰랐다고 부정하며 가장으로써 자신의 가족들을 무책임하게 내버릴 수도 없었을 겁니다.

의지가 강하고 자존심이 센 분이었던 그분은, 혼자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시지는 않았으리라 봅니다.

자신을 지지해준, 정의를 믿었던 국민들에게는 사죄를.. 궁지에 몰린 가족들을 위해서는 이 모든 의혹을 홀로 끌어안아버린 책임감을.. 정의를 믿고 그것을 이루려 평생을 노력해온 당신 자신의 인생에게는 원통함과 부끄러움을 없애기 위한 마지막 선택으로써, 이러한 극단적 방법을 택하신 것이라 생각이 드네요.

그의 투신에 대해 누군가는 비겁한 도망이라고, 혹은 의혹을 인정하는 꼴이라고 욕을 할테고, 다른 누군가는 목숨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 것이라고 각각 다른 평가를 내리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분의 마지막 '선택'은 가장으로써 가족에 대한 극단적 책임감과, 지지자들을 비롯한 전 국민에 대한 사죄(의혹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과 별개로 자신으로 인한 국민들의 실망과 정의에 대한 낙담에 대해), 그리고 평생 진실과 정의를 위해 지켜온 자신의 삶과 신념에 대한 부끄러운 속죄, 그리고 억울함에 대한 결백 주장이 모두 담긴 마지막 저항이었다고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그분의 마지막 의혹이 사실이었는지, 아니었는지와는 별개로 평안한 삶을 버리고 인권변호사로, 인권운동가로, 양심적 정치인으로 부패와 지역감정과 치열하게 싸워온 그분의 삶 전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신념과 양심, 그리고 자신을 믿어준 지지자들과, 그를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그를 통한 정의의 실현을 믿었던 국민들에 대해 죽음으로써 속죄와 최후변론을 펼친 이시대 한국의 가장 위대했던 정치가에게... 한때 당신을 지지하기도 했었고, 반대하기도 했으며, 때론 칭찬하고, 때론 비난했던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진심으로 명복을 빕니다. 더이상 당신은 내가 지지할만한 일도, 반대할만한 일도 만들어내실수 없게 되셨지만..당신의 그 치열했던 삶 전체를 바라보자면 당신은 내 짧은 인생 속에서 보아온 수많은 정치인들 중 가장 위대했고, 가장 용기있고, 가장 진심으로 우릴 대해준 정치가라 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너무나 슬프고 충격적이었던 그 마지막 선택이 밉고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삶보다 신념을 더 중요시 여겼던 그 모습이 한편 이해되기도 합니다. 정치가로써, 목숨보다 신념을 더 중요시 여기셨던 분이셨으니 자신의 신념과 양심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자기 자신과 전 국민들에게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겠지요..

당신이 남긴 마지막 숙제는 우리의 몫일 것입니다. 살아남은 우리는 계속 살아가기 위해 또 당신의 죽음을 뒤로 한 채 치열하게 현실과 부대끼며 싸워가야겠지요. 당신이 보여줬던 비전과 꿈, 때론 실패와 실수의 흔적들.. 이 모든 것들을 우리 머릿속에 새겨두고, 치열하게 싸우고 치열하게 살아가겠습니다..

다시 당신의 미소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너질듯 아프지만, 당신이 우리에게 준 숙제를 손에 쥐고, 독한 마음으로 다시 현실을 살아가겠습니다. 사랑하고 또 미워했던 우리의 전대통령님, 더이상 싸움도 미움도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