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영국의 영화 제작자인 T. 패트릭 머레이 씨는 당대 최고의 영화 감독이었던 스탠리 큐브릭과의 인터뷰를 오래 전부터 요청했었으나 매번 거절을 당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큐브릭 감독으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바로 그 다음 날인 1999년 3월 4일에 큐브릭 감독의 집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머레이 씨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88 페이지에 달하는 기밀 유지 협약서에 서명을 해야 했고, 인터뷰 내용은 15년 간 공개하지 않도록 약속한다.
그리고 이제 그 15년이 지났다.다음은 큐브릭과의 인터뷰 중 달 착륙과 관련된 부분을 옮겨 적어 해석한 부분이다. 영화 역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의 감독인 그는 인터뷰에서 ‘달 착륙은 모두 가짜이며, 그 영화를 찍은 사람은 나’ 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것 저것 뭐라고 그래도 당시 기술로 찍을 수가 없는 내용이고 기술적으로도 찍을 수가 없음...비디오로 찍을 수도 없고 필름으로 찍어야 하는데..11호의 경우 EVA 라이브 방송 시간 2시간 10분..동안 필름노이즈가 단 한번도 발생한 적이 없음. 또한 당시 비디오 녹화기술의 한계로 나사에서 가지고 있는 수준이 최장 10여분 수준이었음 2시간 10여분을 비디오로 송출하려면 필름만 1톤 트럭 수준이라고 함.....특수효과 수준은 나사가 지원해줘서 찍은 수준이 오딧세이 수준....필름으로 슬로우스켄 효과 내기는 더더욱 어려움...ㅋㅋ
불가능합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로켓 발사는 너무 거대한 화염과 굉음으로 소련에서 발사한 것도 미국이 알아내고 미국이 발사한 것도 소련이 서로 알만큼 발사 자체를 속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비밀리에 나중에 뭔가를 발사해서 달에 갔다 오거나 달에 무언가를 두고 온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모든 로켓 발사가 궤도까지도 모두 다 추적되었기 때문이지요...
지금도 미.중.러 는 서로의 업적을 까내리기 바쁜데 미국의 달 착륙 같은 경유 전 세계의 학자들은 물론이고 소련도 인정 했었죠. 구라라고 까내기에는 증거가 너무 확실해서...달 착륙 음모론 믿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내놓으라 하는 천재,수재들 다 멍청이라 욕하고 자기 주장이 맞다고 우기는 거랑 마찬가지에요
이것도 말이 안되는게 11호 영상 일단 필름은 나중에 공개가 된 것이고 가장 중요하고 극적인 것이 TV라이브 방송입니다. 11호의 경우 당시 컬러송출 실험까지 완료되었지만 확실하게 하기 위해 슬로우스켄 흑백방송을 했지요. 12호는 더 극적인 방송을 위해 우리가 알고 있는 NTSC 컬러 송출을 야심차게 준비합니다. 근데 그게 실수로 촬상관 손상으로 카메라가 망가져서 송출 못하게 되지요...이런 게 과연 극적인 연출을 노린 걸까요? 더 허접한 결과를 보여주는데요??
저때는 냉전시대라 쟤가하네? 그까짓거 나도한다! 이런 경쟁덕분에 사람도 보내고 했지만.... 지금은 미국이 한참 우위에 있어서 굳이 보낼필요를 못느끼는거죠. 그리고 윗댓글 보고 영상은 가짜일수도 있겠다 싶네요. 달에 간 사실과 단순히 만들어진 홍보영상이 공존할수도 있을거같음
당시 아폴로 프로그램에 할당된 엔지니어들만 공식 집계로 40만명입니다. 40만명.....지금 나사와 그 하청업체들 엔지니어 숫자들 한번 찾아보세요...전체 2만명도 안되는 것으로 나와요...물론 지금은 컴퓨터의 능력이나 오토메이션 자체가 훨씬 발전했기때문에 그 정도의 엔지니어와 자본이 필요하지 않지만 그래도 엄청나게 부담이 되는 숫자입니다...
메인 녹음 위치는 지구상의 Mission Control Centers MCC입니다. 공개된 음성화일은 아폴로 선내에서 지들끼리 대화내용 , MCC 내에서의 대화내용, 그리고 아폴로와 MCC사이의 교신 내용이 모두 나오고 있습니다. 선내나 MCC내에서의 대화는 당연히 딜레이가 없고요. 아폴로에서 질문이 오면 MCC에서 바로 답변하니 당연히 딜레이 없고요. MCC에서 아폴로로 질문하면 그 답변 내용만 딜레이 적용됩니다. 정확하게 capsule communicator(capcom) 사이에서만 딜레이가 존재합니다. 나머지는 상호 송출되지 않습니다. 자세히 들어보시면 알 수 있고요. 아래 영상 보시면 더 확실하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말하는 사람 얼굴하고 대화 내용까지 캡션처리해 놓았으니까 파악하기 쉬울 겁니다. 위 영상에 해당 되는 부분은 아래 링크에서 위에서 3번째 contact light 라는 제목의 영상입니다.
소련은 미국보다 좀 늦게 달의 월석을 가져오고 반사판도 보내고 지진계도 설치했지요. 하지만 그 보다는 최초의 무선 로버를 보내 운영했다는 점은 대단한 업적이긴 합니다. 아폴로 프로그램이 기안될 때 미국의 입장도 소련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기계로 가져와도 될 걸 왜 그렇게 큰 돈을 들여 사람이 갔다와야 하느냐..라는......
소련은 사실 달에 갈 준비가 안되어 있었지요. 선두의 자만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예산을 안줬습니다. 그래서 결국 생색내게 된게 무선조정 로버지요... 그 로버 역시 고장나서 찾지 못하다가 미국의 LRO가 아폴로 흔적들 어느정도 담아내고 난 뒤 사진찍어서 러시아에 선물을 안겨줬지요..
미국은 지진계 설치 이후 분리된 새턴의 3단과 달착륙선 상단 모듈을 지속적으로 달에 충돌시킴으로써 달의 내부 구조를 파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LRO가 그 충돌 흔적들도 사진 촬영에 성공했고요...
소위 말해 달음모론자들이 말하는 달 속이 비었다란 내용도 아폴로의 업적입니다. ㅋㅋ 실제로는 핵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매우 적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지만요...
실패할 까봐서 준비한 것이 아폴로 12호입니다. 사실상 아폴로 11호는 실패의 경우를 더 많이 고려한 듯 합니다. 왜냐하면 10호 발사가 5월인데 11호 발사가 7월입니다. 그리고 12호가 11월이지요. 즉 케네디가 약속한 69년 12월 31일 이전에 총 3번의 달로의 여행이 계획 되어 있다는 점을 상기해 봐야 할 듯 합니다.10호의 달 리허설(10호) 그리고 그 리허설을 바탕으로 달착륙해보기(11호) . 만약 실패하면 그 실패를 바탕으로 진짜 마지막 도전 하기(12호)...이런식의 계획이지요. 아마 11호가 실패했다면 12호는 9월쯤 발사되었을 것이고 13호가 11월쯤 발사되었을 겁니다. 이미 13호까지 준비되어 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