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구리, 우-이세돌>
세기의 라이벌이라고도 불리는 둘입니다. 둘 다 워낙 전투적인 기풍이기 때문에, 둘이 대국하면 내내 전투가 끊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라이벌전보다 명국이 많이 나옵니다.
※ 갑조리그란?
중국엔 4명이 한 팀을 이뤄, 리그전을 치르는 팀대항전이 있습니다. 총 3개의 랭크가 있는데 갑조, 을조, 병조 순으로 랭크가 높습니다. 보통 중국리그 이기 때문에 중국기사들이 많이 참가하지만 한국기사들도 용병으로 팀에 참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상 한국 상위 랭커라면 갑조리그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세돌 뿐만 아니라, 박정환, 최철환, 김지석 등등도 참가 중입니다.
흑이 구리, 백이 이세돌입니다. 덤은 중국룰이기 때문에 7집 반입니다.
초반은 이렇다고할 특징도 없이, 평범하게 흘러갑니다. 둘이 워낙 전투를 좋아하기에, 이렇게 무난한 포석이 오히려 이색적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여기까지는 별 특징 없는 진행입니다만...
26이 사뭇 도발적입니다. 흑이 A로 움츠려서 받으면 B로 중앙을 막으려고 할 것이기에, 기세를 중시하는 구리로서는 굴욕임이 자명합니다. 그래서 27로 반발한 것은 그다운 기세입니다.
30번 수는 나중에 나오겠지만 이세돌의 노림수이었고, 구리는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31번 수는 백이 A로 둬서 끊어 싸우는걸 방비하는 수입니다.
보통 프로의 감각이라면 백 A로 뛰어서 도망을 치겠지만 이세돌은 그런 미적지근한 수를 잘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역공을 가하죠.
바로 34가 이세돌이 30번 수를 뒀을 때, 미리 준비하고 있던 수입니다.
<참고도>
만일 34로 이렇게 둬서, 흑을 끊으려고 한다면 35의 선수 때문에 흑은 끊기지 않는 모습니다. 실전의 34번 수는 우선 저 선수를 방비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참고도>
34번 수에 무심코 35번으로 이으면 안 됩니다. 36번으로 밀고 들어가, 흑 전체가 끊깁니다.
<실전보>
그래서 구리는 어쩔 수 없이 35번으로 이을 수 밖에 없었는데, 36번 수가 또 좋은 수였습니다.
흑은 어떻게든 41로 틀을 잡았지만 흑이 두터운 곳에서, 흑이 곤마가 된 격이기 때문에 흑이 많이 불리해졌습니다.
흑은 일단 51로 좌상변을 살아둡니다만 백 52로 양쪽을 가르니, 참으로 고통스러워졌습니다.
흑은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하기 때문에 53의 한점을 주면서 모양 갖추기를 합니다.
그나마 흑에게 다행인 것은 백에게 팻감이 없기 때문에 60번 수로 63으로 끊어서 패를 거는 짓은 하지 못 했다는 점이죠. 그게 가능했다면 바둑은 여기에서 끝이었습니다.
69번 수도 모양 갖추기 입니다. 초보분들이 알아두면 좋은 팁 중에 하나가, 약한 돌을 수습할 땐, 69번 수처럼 붙여서 두면 모양을 수습하기 좋습니다.
백은 실리를 두둑하게 챙긴 모습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84번의 치중수를 두면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습니다.
85~87번까지 2선을 기는 모양새는 안 좋지만, 다 89번 수를 두기 위한 것입니다. 백은 88번 수로 흑 두 점을 잡았습니다.
흑도 마냥 이끌려 다닐 수는 없기에 91로 반격의 기회를 노립니다. 백은 흑이 두자는대로 두다가, 95번 수가 둬지고 보니까, 중앙 백대마도 그리 안전한 상황은 아니란 걸 알아챘습니다.
흑이 유리하다는 것은 아니였지만 유리한 상황에서 은근히 약한 돌은 신경 쓰이기 마련입니다.
96번 수를 두자, 점심 시간이 됐습니다. 사실 이세돌이 원하면 96번 수를 안두고 점심 시간을 맞이해서, 그 시간 내내 다음 진행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세돌의 성격상 점심 시간 내내 그런 것을 신경 쓰기 보다는 편하게 밥을 먹는 쪽을 선택하고, 구리에게 다음 수를 넘겨버립니다.
구리는 이세돌의 의도대로 점심 시간 내내 다음 수를 생각했지만, 그 수는 기회를 놓쳐버린 수가 됐습니다.
97번 수는 A로 둬서, 중앙 백 대마를 노려야했습니다. 구리는 국후에 이 수에 대해서 엄청나게 후회를 했습니다.
<참고도>
97에 98로 단수를 친다고 해도, 99로 역습을 가하면 백대마의 생사가 불투명합니다.
101~105는 구리가 장고 끝에 둔 수입니다.
흑은 어떻게든 사는데엔 성공합니다.
뿐만 아니라, 117~119로 오히려 역습의 기회를 노립니다.
127까지 흑이 실리를 크게 지키니, 바둑이 슬슬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바로 흑 백 실리의 균형이 맞춰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세돌은 138번의 여유로운 수를 둘 정도로, 실리 균형이 맞춰졌다는 것은 감지 못 합니다.
139는 실리로 정말 큰 곳으로서, 이제 실리는 오히려 흑이 앞지르게 되었습니다.
백도 급박해졌습니다. 계속된 공격으로 백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사이에 상황이 많이 바뀐 것입니다.
구리도 역전했다는 안도감에 느슨해진 것인지 145로 끝내기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이 수는 오늘의 패착이 됐고, 다음에 나온 백의 수는 희대의 묘수가 됐습니다.
바로 이 수가 희대의 묘수가 됐으며, 이세돌의 수읽기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 수 있는 수입니다.
<참고도>
우선 147로 두는 것은 사는 것에는 문제가 없습니다만 148에 넘어가고, 149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선수로 백에게 큰 끝내기를 당한 셈입니다.
그래서 구리도 147로 둬서 아무 수도 안난다고 생각했지만 더 큰 파탄을 초래합니다.
바로 148의 치중이 성립된 것입니다.
<참고도>
149로 막고 싶지만 그럼 150이 또 묘수가 됩니다. 살려면 151로 막을 수 밖에 없는데, 또 152가 선수가 됩니다. 왜냐하면 153으로 백이 두면 흑 대마가 죽기 때문입니다.
<참고도>
152가 선수가 되니, 이번엔 154번 수가 성립이 됩니다.
<참고도>
155로 이은다고 해도, 156으로 건너자는 수가 성립합니다.
<참고도>
흑이 159~ 161로 살자고 나와도, 백이 162로 둬서, 좌상변 흑을 죽이자고 두는 수가 있습니다.
네. 흑이 좌상변을 살자고 해도, 백이 J15 부근을 두면 바깥으로는 절대적으로 빠져나갈 수 없고, 안에서도 살 수 없기 때문에 둘 중 하나는 잡히는 형국이 됐습니다.
즉 쭈우우우욱 돌아가서 흑이 149로 이어서 두다간, 셋 중 하나는 무조건 잡히는 형국이 되기 때문에, 구리는 이어서 두질 못 합니다.
<실전보>
그래서 결국 흑이 149로 뒀습니다만...
상황은 참고도랑 비슷하게 흘러갔습니다.
이후 많은 수가 더 둬지긴 하지만 별 의미있는 수순은 아니라고 생각해 생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