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계에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매직 히포' 현주엽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42)이 창원 LG의 새 사령탑을 맡게 됐다.
LG는 21일 "현주엽 신임 감독을 제 7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3년, 연봉 등 구체적인 조건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다소 파격적인 결정이다. 현 감독은 지난 2009년 은퇴 뒤 한동안 농구계를 떠나 있다가 3년 전부터 마이크를 잡아 해설을 맡았다. 코치 등 지도자 경험이 없는 상황이었다.
앞서 농구대잔치 스타로 지휘봉을 잡았던 선배, 동료들은 코치를 일단 거쳤다. 문경은 서울 SK, 이상민 서울 삼성, 김승기 안양 KGC인삼공사 감독 등이다. 현 감독과 고려대 동기인 신기성 인천 신한은행 감독도 여자프로농구지만 코치로 경험을 쌓은 뒤 사령탑에 올랐다.
현 감독 선임 소식에 누구보다 반가워 한 인물이 있다. 바로 현 감독과 평생의 라이벌이자 절친한 선배 '국보급 센터' 서장훈(43)이다.
서장훈은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뉴스로 감독 선임 소식을 들었다"면서 "정말 축하할 일"이라며 기뻐했다. 이어 "워낙 영리한 친구인 만큼 감독직을 잘 수행해낼 것"이라고 덕담했다.
둘은 휘문고 시절 선후배로 고교 농구계를 평정했다. 207cm 당시 국내 최장신이던 서장훈이 먼저 연세대로 진학하자 현주엽은 사학의 맞수 고려대를 선택하면서 운명의 라이벌 대결이 시작됐다.
195cm의 현주엽은 신장은 뒤지지만 100kg이 넘는 육중한 체구에서 나오는 엄청난 힘으로 열세를 만회했다. 파괴력 넘치는 골밑과 외곽에서의 영리한 플레이로 한국 최고의 센터 서장훈과 밀리지 않는 대결을 펼쳤다.
대학 시절 치열하게 싸웠던 둘은 프로에서는 한솥밥을 먹게 됐다. 1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서장훈이 현주엽과 함께 졸업을 하면서다. 이미 진로의 지명권을 넘겨받은 청주 SK(현 서울 SK)는 서장훈의 입단을 앞둔 가운데 1998-99시즌 1순위로 현주엽을 지명하면서 양웅이 같은 팀에서 뛰게 됐다.
하지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1년 만에 둘은 다른 팀으로 갈렸다. SK가 골드뱅크와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하면서다. SK가 현주엽을 보내고 슈터 조상현(현 고양 오리온 코치)과 현금 4억 원을 받는 조건이었다. 이후 SK는 서장훈과 조상현을 앞세워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고, 골드뱅크도 현주엽을 중심으로 팀이 상승세를 타 윈-윈 트레이드로 꼽혔다.
서장훈은 이후에도 삼성에서 한 차례 더 챔프전 우승을 이끄는 등 '우승 청부사'로 명성을 떨쳤다. 반면 현주엽은 '한국의 찰스 바클리'라는 별명처럼 '무관의 제왕'으로 남았다. 그러나 둘 모두 한국농구연맹(KBL)의 20주년 레전드로 뽑혔다.
이런 가운데 현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것이다. 서장훈은 "현 감독이 코치 경험이 없다"는 말에 대해 "그건 편견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코치를 거쳐야 한다면 모두 감독이 돼서 잘 해야 할 텐데 꼭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서장훈은 "현 감독이 농구에 대한 깊은 이해로 잘 해나갈 것"이라고 신뢰를 보냈다.
후배가 선배보다 먼저 감독이 됐다. 농구계에서는 서장훈 역시 한국 농구를 위해 힘을 써야 한다는 기대감이 적잖다. 현 감독 못지 않게 영리하며 농구 지식이 빼어난 인물로 꼽히는 서장훈이다.
이에 서장훈은 손사래를 쳤다. 현재 서장훈은 방송가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일부 어린 학생 시청자와 팬들은 서장훈이 농구 선수 출신인지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서장훈은 "농구에 대한 관심은 늘 있다"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