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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선수의 은퇴에 보내는 인사
게시물ID : soccer_1050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elltrow
추천 : 6
조회수 : 104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5/28 08:3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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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鬪士이자 투사投射였던 박지성 선수의 은퇴에 보내는 인사

 

박지성 선수에 앞서 여·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여는 집에서 퍽 미덥고 다정한 아들이다. 하지만 그건 가정에서의 모습일 뿐이다. 학내에서는 교수가 분노조절장애라고 놀릴 만큼 까칠하다. 대인관계에서도 다소 거칠기도 하며 예민하기도 하다. 그리고 피해의식도 일정량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피곤한 남자다. 또 글을 쓸 때는 사뭇 진지한 얘기를 최대한 온건하게 이야기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뜬금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왜 하는지 궁금할 거다. 특정 국면으로 한정해야 대상을 정치·精緻하게 통찰할 수 있고 오해를 줄일 수 있음을 주지시키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과거와 단절된 그의 모습만을 논하진 않겠다. 그러나 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 시절의 박지성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함을 밝혀둔다. -국가대표팀의 박지성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은 크게 변별되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고 그간 노고에 감사하기 위해 쓰는 글에 이런 말을 먼저 하게 되어 이상하지만 불가피한 일이니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는 골 결정력이 부족한 미드필더였다. 그는 맨유에서 뛴 2005년부터 2012년까지 205경기를 뛰는 동안 27골 밖에 넣질 못했다. -이 기록은 같은 팀, 같은 포지션에서 뛰기도 했던 호날두의 한 시즌 골 기록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는 어떤 장면에서는 ! 그건 우리 할머니도 넣겠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과장이 아니다. 2008년 미들즈브로전에서의 실수가 그랬다. 물론 호날두, 앙리, 토레스 같은 선수들도 믿지 못할 실수를 한 적 있으나 박지성은 골문 앞에서 유독 약해지는 선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체격도 왜소했다. 축구선순데 여와 거의 비슷하다. 175cm72kg. 대한민국 평범한 남성일 따름이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뛰었다. 부단히 뛰었던 그에 대한 어떤 세계적인 미드필더의 평을 인용해보자. “박지성은 모기와 같다. 우리 팀을 여기저기서 괴롭힌다.” AC밀란 당대의 미드필더 젠나로 가투소가 맨유와의 경기를 앞두고 한 말이다. 이게 칭찬인 것 같으면서도 그 칭찬의 스케일이 참으로 모기 같다. 무시무시한 세계 축구판에서 모기라도 되었으니 자랑으로 여겨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기라는 것은 못내 아쉽다.

앞서 인용한 평가는 비난 같기도 한 애매한 칭찬이지만 그는 노골적이며 혹독한 비난도 감수해야 했다. 영국 현지의 어떤 팬은 박지성에게 뛰기만 하고 하는 것이 없다며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떠오른다며 비난하였다. 국내 팬들은 이에 호응하며 그를 검프성이라고 조롱하기도 하였다. 또한 선수 커리어적인 측면에서도 시련이 있었다. 2007/2008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명단 제외는 아마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을 것이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전 세계 축구선수의 꿈같은 경기다. 한 시즌동안 챔피언스리그 준결승까지도!- 팀에 몸 바친 그에게 그것은 전혀 납득할 수 없는 통보였을 것이다. 아니, 서울에 있는 여를 비롯한 여의 아버지, 친구들, 동생까지 실망을 하였는데 그는 오죽했을까. 그러나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계속 뛰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역대 맨유 선수로서 92번째로 2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그는 꾸준히 뛰었고 오래 헌신했다. 영연방이 주목하던 유망주 앨런 스미스도, 이탈리아의 신성 쥐세페 로시도, 그만큼의 커리어를 쌓지 못하고 맨유를 떠나야 했다. 분데스리가를 씹어 먹던 일본의 카가와 신지도 연일 이적설에 시달리는 요즘이다. 또 그 지성이형-에 앞서서는 아르헨티나의 슈퍼스타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도 맨유에서 딱 3년을 버텼을 뿐이었다. 오래 곱씹어도 좋을 대목이다.

그는 부족한 재능과 불리한 신체조건을 극복하며 뛰었다. 세계적인 선수들 사이에서 고군·孤軍이었으나 분명 분투·奮鬪했다. 그걸 보는 것이 왠지 애틋했다. 요즘 잘나가는 손흥민이나 기성용과 같은 선수를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고백하건대 사실 그를 들여다보는 것은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이 휘황한 사회에 부자 부모도 없고, 뛰어난 스펙도 없는 내가 올드트래퍼드를 고독하게 질주하는 것 같았다. 그가 느꼈을 호젓함과 여가 느꼈을 호젓함을 포개놓는 일이 사실 그의 축구를 감상하는 일의 팔 할이었다. 그래서 그가 그렇게 열심히 뛰는 모습이 내겐 그렇게 긴박하고 애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열심히 뛸수록 그랬다.

그래서 그에겐 감동이 있었다. 그가 2008/2009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선발 출전했을 때도 무척 벅찼고,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전 시즌에는 명단에서 제외되었던 아픔이 있었다- 2012년 챔피언스리그 32강 아약스전에서 그가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장에 들어설 때 내가 가슴이 다 뻐근하기도 하였다. 그는 단순히 축구선수가 아니었다. 그 투사·鬪士는 내 청춘 하나의 투사·投射였다. 그가 역경 속에서 다시 축구화를 끈을 질끈 맬 때마다 여도 함께 생에 대한 의지를 불살랐고, 옷깃을 여미며 자세를 고쳤다. 무엇보다 그 덕분에 스스로의 환경을 덜 원망하였던 것 같다. 그 부분 참으로 감사드린다. 내 친구 대현이, 상훈이도 그랬었다고 했으니 찾아본다면 그에게 빚진 20대는 속출할 것이다.

그동안 고생하셨다. 박지성 선수. 비루한 내 청춘에 당신 있었음에 여는 왕왕 용기를 내었고 쉽게 굴하지 않았다. 이런 글까지 쓰게 해준 그대의 열정과 그 묵묵함에 마지막으로 감사드리는 바다. 여는 지단도 보았고, 피구도 보았다. (브라질의) 호나우도, 네드베드도 겪었고 메시, 호날도는 지금도 감상하고 있다. 참 행운이다. 하지만 그들보다 박지성, 당신이 열렬히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이건 치졸한 민족주의가 아니다. 더운 입김의 한 인간이 또 다른 동류의 인간에게서 받는 촉감이다. 이제는 그냥 형이라고 부르련다. 은퇴했으니 뭐 이제 그냥 형이지. 모쪼록 이 형이 은퇴하고 푹 쉬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래오래 행복했으면 한다. 여도 행복할거니까.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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