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그 날 오후 5시. 데이비슨은 바크셔에서 가장 고급 술집인 프로베더에 자리를 잡았다. 시퍼런 간판이 인상적인 이 술집은 온통 노인과 아이들 천지인 바크셔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혈기 넘치는 사람들이 피난처로 삼는 곳이었다.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스트립쇼까지 펼쳐 졌는데 데이비슨은 열 여섯 살 때부터 단 한 번도 이 스트립쇼에 불참한 적이 없다. 이는 그의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위스키가 반 쯤 든 글라스 잔을 흔들며 슬슬 미소를 짓던 그의 어깨를 누군가 거칠게 잡았다. 데이비슨이 올려다 보니 퇴역 군인인 빈스였다. 그의 덩치는 제임스 못지 않게 컸으며 손이 호랑이의 발처럼 두꺼웠다. 그는 가슴팍에 여성의 알몸 형체가 보석으로 치장된 화려한 가죽 재킷을 입고 있었다.
“형제, 조금 늦었군.”
“오늘은 좀 봐줘. 일이 생겨서.”
“자네 표정을 보니 오늘 또 누군가 반죽이 되도록 두들겨 맞은 모양이군. 맞아? 만족스러울 만큼 해주고 왔나? 근데 자네도 이제 나이 사십인데 정신 좀 차리고 살지 그래?”
빈스가 위스키로 그의 목을 축이며 말했다.
“물론 나는 형제의 그런 면모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형제, 이렇게 이른 시간에 무슨 일인가?”
빈스가 두툼한 두 손을 깍지 끼고 머리를 데이비슨 쪽으로 들이밀며 말했다. 능글맞은 그의 미소가 데이비슨의 그 것과 똑 닮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겁쟁이 형이 장로들한테 이번에도 겁을 잔뜩 집어 먹은 모양이야.”
“그래? 촌장님이?”
“그렇다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이 데이비슨이 우리 친애하는 형님에게 영웅담을 하나 선물해 줄까 해.”
데이비슨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시선은 유리로 번쩍거리는 천장에 가 닿았다. 얼마나 완벽한 계획인가- 그는 소리내 웃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떤 계획인지 들어나 봄세.”
“일단 우리 ‘와일드’ 형제들 모두의 힘이 필요해.”
“와일드 모두?”
빈스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와일드는 데이비슨이 조직한 사조직이었다. 2002년 바크셔 소년원에서 탈옥한 이가 바크셔에 거주하는 일가족을 살해하자 데이비슨은 이에 분노하는 동지들을 모아 별도의 치안 조직을 만들었다. 폭력과 도박 건으로 불명예 퇴역한 빈스와 그의 동생인 ‘대머리’ 쉐인. 바크셔 소년원 교도관 출신인 레이와 현역 경찰인 존, 유명한 국회의원의 외동 아들이자 망나니인 랜디까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급진적인 성향의 이들이 만든 와일드라는 조직이 그것이다.
처음 이들의 취지는 좋았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치안을 점검하고 대처 강령을 프린트해 나눠주는 등의 행동으로 많은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점차 이들의 활동도 시들해졌고 와일드의 세력은 약해졌다.
위기감을 느낀 와일드의 수장 데이비슨은 ‘멋진 계획’을 도모한다. 그들은 차를 타고 대기했다가 바크셔 소년원에서 빠져 나오던, 예의 그 2002년 살인 주동자의 탈옥을 도운(당시 살인을 저지른 이는 120년 형을 받고 더블린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17세 소년을 납치해 온갖 구타와 고문 끝에 죽이고 만다. 그들은 그들이 저지른 일에 경악했으나 이 사건은 오히려 와일드를 더욱 끈끈하게 묶어주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름 있는 가문인 카테필드와 경찰, 국회의원의 아들 등이 모인 조직이니만큼 사건의 은폐와 축소도 쉬웠고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잘못에 대해 질책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놀랄 정도였다.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니. 이후 자신들의 힘을 깨달은 와일드는 바크셔 소년원을 탈옥하는 소년들 못지 않은 공포로 바크셔를 지배했다. 데이비슨의 말을 빌리자면, ‘로럼스는 태양 아래서 바크셔를 통치하고, 데이비슨은 달 아래서 바크셔를 통치’하는 것이다.
“형제들이 모여 해야 하는 일이 뭔데 그래?”
빈스가 잔인한 기대감으로 눈을 번쩍였다. 그는 마치 잘 훈련된 사냥개 같았다. 빈스는 데이비슨의 명령이라면 죄 없는 어린 아이의 목이라도 꺾어버릴 그런 류의 인간이었다. 그런 빈스를 보고 데이비슨은 더욱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일단 뒷골목에서 노는 애들을 모두 긁어 모아.”
“모두?”
“그래 모두. 경비라면 여기 있어. 일당 두둑히 챙겨준다 하면 노인네들만 득실거려 따분해 죽겠는 걔네들이 마다할 이유는 없겠지.”
데이비슨이 봉투를 빈스에게 밀었다. 봉투를 열어본 빈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 참 큰 계획이로구만!”
빈스가 너털 웃음을 지었다.
“그 다음엔?”
“그 다음엔 녀석들 보고 하루 정도 바크셔 호수 주변 숲에 텐트 치고 이틀 정도 먹고 자면서 시키는 대로 행동하라고 해. 예를 들어 지나가는 어떤 노인에게 겁을 주거나 하는 식으로. 자기네들이 ‘바크셔 소년원’ 출신이라는 말도 하게끔 시켜.”
“그리고, 그리고, 그 다음엔?”
“그 다음엔 이제 짜잔! 하고 우리 와일드가 나설 차례지. 출동해서 다 때려 잡고 그 녀석들을 옆 동네 경찰서로 끌고 가는거야! 메릴랜드 노인 양반이나 다른 이들의 죽음의 배후에 이 녀석들이 있었다고.”
“가족들이 알아채지 않을까?”
“당연히 알아차리겠지. 실제로 그들이 수감될 확률은 없어. 하지만 말야. 인간이란 존재는 의외로 단순해. 그들이 보고 싶은 건 진짜 진실이 아니지. 그들이 원하는 것은 평화야. 바크셔 소년원 출신이라고 사칭하고 다니는 아이들의 질 나쁜 범죄가 실종자들의 실종 배후에 있다고 하면 멍청한 장로단을 포함한 그들은 일단 안심하고 본다니까? 물론 장로단은 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자기네들은 일단 진상 규명에 최선을 다했다는 식으로 떠들어 댈 수 있으니 좋고, 다른 멍청한 인간들은 소년들이 석방돼도 그 소년들이 범인이라는 확신을 가진 채 평생 안심하고 살아갈테지. 뭐, 그 망나니 소년 녀석들과 그 가족들은 결국 바크셔에서 살지 못 하겠지만.”
데이비슨은 남은 위스키를 입에 털어 넣었다.
“어차피 쓰레기들인데 뭐.”
빈스는 손뼉을 치며 좋아라 했다.=
“거 참 맘에 들어 형제님! 당장 내일부터 뒷 골목 애들을 싹 긁어 모으도록 하지. 참 재밌는 캠핑이 되겠어.”
“재밌는 캠핑이 되겠고 말고.”
데이비슨은 뱀처럼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리 한다면, 결국엔 로럼스 그 겁쟁이 개새끼도 날 인정하지 않고는 못 배길거야.”
7.
다음 날 밤, 바크셔 뒷골목에서 대마초나 나눠 피던 소년들은 악명 높은 와일단의 단원인 빈스와 레이가 나타나자 혼이 빠져라 도망치기 바빴다. 하지만 와일드야말로 그들이 동경하는 최고위의 사조직이었기 때문에 몇몇 이들은 도망치면서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나를 와일드에 넣어 주세요!”
“빈스! 데이비슨! 레이! 우리의 영웅!”
빈스가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와일드에 넣어주지! 게다가 이번 시키는 일은 보수도 상당해. 무려 촌장님의 지시로 이뤄지는 일이니 안심하고 모습을 드러내라!”
몇 몇 아이들이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기껏 해야 15살에서 17살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한껏 반항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두려움과 고통이 깔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빈스와 레이 눈에 이들은 그저 한낱 먹잇감에 불과했다.
“지금 내 말을 듣기만 해도 여기 있는 돈의 반을 주겠다.”
빈스가 두툼한 돈 봉투를 흔들며 소리쳤다. “그리고 우리가 시키는 일을 하고 나면 나머지 돈을 주겠다. 이 돈을 가지고 너희가 마약을 사건 매춘을 하건 우리는 전혀 신경쓰지 않겠다. 이 빈스가, 그리고 여기 있는 레이가 남자 대 남자로 약속 하도록 하지.”
소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다가와 돈 봉투를 만져 보고는 탄성을 질렀다.
“그럼 지금부터 촌장님의 계획을 말해주겠다! 잘 듣도록!”
이틀 동안 빈스와 레이가 불러 모은 30명의 소년들은 들뜬 마음으로 바크셔 호수가 보이는 숲 속에서 캠핑을 즐겼다. 그들은 빈스에게 받은 돈으로 구입한 마약과 술에 온종일 취했다. 무엇보다 아무 거리낌 없이, 오히려 일을 한다는 기분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마음을 만족스럽게 했다. 여태까지 그들은 노인들만 가득한 바크셔라는 땅에서 얼마나 억압받고 지내 왔던가. 와일드는 이런 이들을 해방한 구세주이자 선지자였다.
이튿날 밤, 톰이라는 아주 열광적인 와일드 지지자가 호수를 지나는 사십대 부인을 진짜로 납치해 왔을 때 처음 그들은 두려움에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들이 상황을 지배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를 희롱하기 시작했다. 몇 몇 소년들은 묘한 흥분에 바지 가랑이 사이가 부풀어 오르기까지 했다.
“우리는 바크셔 소년원에서 나온 망나니들이다! 우리가 메릴랜드를 죽였다! 우리가 브렛을 죽였다!”
미쳐 날뛰는 그들이 부인에게 일을 저지르기 직전, 갑자기 삐애애애액- 하는 기괴한 울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놀란 소년들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이 울음 소리는 다시 한 번 울려 퍼졌다. 소년들은 피가 싸늘하게 식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미 부인은 멀찌감찌 달아나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를 붙잡아 올 생각을 하지 못 했다.
이 공포를 깨뜨린 것은 다름 아닌 톰이었다.
“와일드가 온다! 와일드가 온다!”
톰이 발광하듯 소리 쳤고 이에 맞춰 당황했던 다른 소년들도 기뻐 소리를 질렀다.
“와일드! 와일드!”
그런데 와일드라고 하기엔 그 진동의 폭이 점차 커졌다. 땅을 울리는 진동은 이제 그들의 몸이 허공에 튕겨져 오를 정도로 커졌고 정신을 차린 몇 몇은 그대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와일드가 아니야! 괴물이다!”
“아냐, 와일드야! 그리고 와일드는 괴물이 아니야!”
톰은 불쾌한 목소리로 대꾸하고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 나갔다. 이제 천지를 울리는 진동은 지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격렬하게 울려댔다.
“데이비슨! 레이! 빈스! 저 톰이에요!”
양 팔을 벌리고 톰은 달려나갔다. 진동은 점점 빠르게 절정을 향해 치닫다가 톰의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저 봐! 위를 보라고 멍청이들아!”
달빛 사이로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구역질 나는 악취를 풍기는 그 것은 거미의 몸뚱이에 물갈퀴가 달린 짐승의 다리를 가졌고,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휘어지는 긴 목에 사람의 얼굴이 달려 있었다.
“괴물이다! 바크셔 호수의 괴물이다!”
혼비 백산한 소년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몇 몇 아이는 뒤에 제물을 남겨두기 위해 달아나는 도중에 다른 아이의 얼굴을 주먹으로 쳐서 쓰러뜨리기도 했다.
“와일드?”
여전히 두 팔을 벌린 톰이 괴물 앞에서 속삭이듯 물었다. 괴물은 톰의 얼굴 앞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톰은 자신의 바지가 오줌으로 인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흡족한 미소를 짓고나서 괴물은 자신의 입을 얼굴의 두 배 가까이 부풀려 톰을 먹어치웠다. 그리고 달아나는 소년들을 쫓아 그들을 거침없이 사냥해대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린 소년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숲을 왕왕 울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