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있었을 때 일이다. 8개월 정도 생활했을 당시 나에겐 후임들이 많았다.
그러나 어떤 트집이 잡혀서인지 후임들로부터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그중 맹목적으로 나를 싫어하던 후임 한 명이 있었다.
그는 나를 매우 싫어해서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피해를 주고 싶어 했다.
군대에서 하극상은 하지 못하겠고, 타인을 종용해 그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고
험담을 해서 내 평판을 안 좋게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하루는 갓 들어온 신병과 단 둘이 야간 방범근무를 나갔다.
그 신병은 자대배치를 받은지 얼마간은 나와 잘 얘기하다가 어느 순간 태도가 돌변했던 친구였다.
아마 분위기가 바뀐 이유는 나를 오지게도 싫어하던 후임의 공작 때문이었을 것이다.
단 둘이 어느 정도 걷다가 이 녀석 입에서 반말이 튀어 나왔다. 좁밥이라느니 병신이라느니
하는 중학생 욕들이 내 얼굴 바로 앞에서 공연되었다.
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다짜고짜 욕이라니... 아마 그 후임이 이 신병에게 하극상을
시킨 것으로 추측했다. 그 순간 '이 녀석이 헛바람이 들었구나...' 싶어서 속으로는 안쓰러워졌다.
결국 이성적으로 훈계를 시작했다. 팔자에도 없는 훈계라니... 20분 정도 본인의 태도가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앞뒤도 맞지 않으며 어리석은 일인지를 알려줬다. 자기도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고, 후임이 했던 말과 내 진짜 모습이 다르니 뭔가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 신입도 어릴 때 일진이 바닥에 침 뱉는 걸 보고 아무 생각 없이 따라하는 초등학생은 아니었다.
그냥 어른과 어린이 그 중간 어디께 있는, 불안정한 20살 청년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 신병은 그 일 이후로 나와 친한 사이가 되었다. 한편 그 일을 종용한 후임은 여전히
여러 방식으로 나에게 피해를 주려 노력했다.
내가 느꼈을 때 군대가 가장 거지 같은 이유는 세상의 병신이란 병신들을 후임,
선임, 동기의 형태로 꼼짝없이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수의 폭력'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다수에 속하지 못하면 생존이 어려워진다.
어떤 식으로든 세력을 만들거나 거기에 소속되어야 한다.
여기에 '남과 다르고자 하는 의지', 즉 창의력 따위는 발현되어서는 안 된다. 그
것은 곧 '도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쌍욕을 퍼부었던 그 신입이 측은해 보였던 이유는 그 목소리가 파르르 떨려서 였다.
그 떨리는 목소리에서 자기도 다수에 속하고 싶어 하는, 도태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그의 절박한 심정이 전해진 것이다.
모든 척박한 환경이 그렇듯, 군대는 사람을 나약하고 초라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