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피땀을 흘린 노력이 하나의 필연을 만들어 낼 때,
세상은 아홉가지의 우연을 만들어 그 주변을 에워싸고,
그 필연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새로운 삶을 지망하고, 그것을 위해 인생을 건 모험을 시작합니다.
그 모험을 위해 유학이라는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요.
꿈을 품고 시작한 유학의 길, 그렇지만 그것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조차
험난한 가시밭길 이었습니다.
"야 퀀텀아, 넌 과탐 어떻게 쳤냐?"
"스믹이 나한테 점수를 다 묻고 웬일이냐? 과탐? 사람 죽일 기세로 나왔던데?"
"그러니까 말이다. 점수 어떻게 맞추지? 어디 쏴볼 수 있을거 같냐?"
"몰라 스믹 니 보단 낮게 잡겠지? ㅋㅋㅋ"
강북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저는 빛나지도 않고, 뒤쳐지지도 않는
그냥 무던한 학생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잘 나온 수능, 그리고 똑똑한 친구를 둔 덕분에
인서울에 어렵지 않게 지원해볼 수 있었고, 그럭저럭 괜찮은 곳에 들어갔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아무런 생각없이 점수대로 넣어서 갔었던 거죠.
대학에 들어가도 생각없는 고등학생같은 삶은 이어졌습니다. 대학 생활이라는게 별거 있습니까?
술 마시고, 학과 친구들과 당구장과 피시방에
가서 하던거 또하고,
하던거 또하고,
그러다가 시험철에는 놀다가
시험 직전에 불태우듯이 공부하고,
시험은 하얗게 불태우는 요즘 말로 하면 잉여의 끝을 달리면서 살았었죠.
하지만, 얼마 뒤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생기게 됩니다.
친한 친구 스믹과 술 마시면서 나온 한가지 질문,
"우린 도대체 뭘 하면서 살게 될까?"
처음에는 별 생각이 안들었던 그 간단한 질문이 이상스럽게
머리안에서 떠나지 않게 되더군요.
지금까지 내가 했던건 뭐였을까?
내가 하고 싶은건 무엇일까?
나는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할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자, 저는 답을 찾기 위해
교수님들과 학과 선배들을 붙잡고 이러저리 물어보았습니다.
인서울 대학 이공계 출신이 졸업하면 무엇을 하게 될지,
그것이 내가 원하는 건지,
아니라면 무엇을 앞으로 해야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을지.
사람들에게 묻고 듣기 전에 저는 별 욕심없이 가늘고 길게 가는건 쉬울 줄 알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거 같지 않았었습니다. 가늘고 길게 가는거 조차... 어려운 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각양각색 다른 의견들을 내놨지만
결국 두가지 키워드로 모였습니다: 영어와 미국 학위
영어와 미국 학위. 저로서는 생각치도 않은 결론이었습니다. 다른 나라로 건너간다는 건
남의 얘기에 불과했었습니다. 강남의 잘 나가는 집안의 애들, 과고와 외고의 톱을 달리는 애들,
가족이 이민을 가서 따라가는 애들.
우리 집은 돈도 많이 없고, 내 성적도 딱히 대단하지도 않고, 이민은 더더구나 갈 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해보고 싶은 마음은 생기더랍니다. 딱히 대단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단지, 제 가까운 주변에서 영어와 미국 학위를 잡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었죠.
생각이 정리되고 난 뒤, 첫번째로 한 것은 부모님께 얘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부지, 저 미국에서 대학교 다니는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게 뭔 소리냐? 너 이미 대학 들어갔는데 미국 대학에 다시 들어간다고?"
"네. 저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어차피 제가 있는 분야는 영어하고
미국 학위가 있어야 나중에 살아남기 유리합니다."
"너도나도 미국 유학 가는게 그냥 가는건 아니겠지. 미국 유학이
엄청 비싸다던데. 그런데 우리집은 그럴 형편이 못된다."
"여기까지 군말없이 하란대로, 시키는대로 해서 오긴 했지만
이거 처럼 제가 정말 해보고 싶은건 처음입니다."
"하고 싶다고 해서 하면 누구든지 다 하지. 형편이 안되는건 안되는거다. 포기해라."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가 이어지자, 저는 어머니가 뭔가 제 편을 들어주실 말을 하길
내심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역시 아무런 말이 없으셨습니다.
실망스런 시작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처음부터 완강히 반대하실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포기하고 싶어지더군요. 그렇지만, 뭔가 억울(?) 했습니다. 반발심이랄까요?
오히려 미국 대학에 가는 것에 대해서 더 적극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맞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던거죠.
그리고, 인생에서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지르고 보기" 를 시전합니다.
저는 무작정 유학에 딱 1년만 도전해보기로 결심하고,
부모님께도 말도 안한채 휴학계를 내었습니다.
뒷감당을 할 생각도 없이 무모하게, 그렇게 여행은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