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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
게시물ID : readers_145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가을l
추천 : 10
조회수 : 403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4/08/11 1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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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들린 검.


무겁다. 손에 들린 검의 무게가 손목을 타고 올라와 내 몸에 절실히 퍼진다. 그 무게 때문일까 검을 쥐고 있는 난 손끝에서부터 팔 끝까지 종내에는 몸마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호흡은 거칠어지고 있었다. 숨결이 몸속에서 경주를 벌이듯 연이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호흡이 만들어내는 소음은 내 귓가를 멍멍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귓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그저 거친 내 숨소리만이 존재했다.

어릴 때 검도장에 다니면서 들어본 목도와 죽도 그리고 가검 이들과는 상대도 되지 않는 중압감 어린 시절에 검도도장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들려준 진검의 무게와 압박감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비록 그때 들고 있던 검신이 매끄럽게 빠진 ‘도’의 형태가 아닌 투박한 양손 검 이었지만 날카로운 검 날은 뾰족한 검 끝은 이것으로 상대를 배거나 찌른다면 ‘살해’가 가능하다는 걸 여실히 나타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내 시선은 눈앞에 있는 ‘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상대에게 집중한 것이 아니었다. 이 상황이 나를 이렇게 몰아붙였다. 좁아진 시야는 간신히 상대만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이제 그 조차도 내 눈 앞의 상대조차 점점 희뿌예지고 있었다. 눈앞에서 서서히 피는 안개마냥 그것과 내 사이를 반투명한 장막이 교활한 뱀이 움직이듯 천천히 가로막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행한건 반투명이란 단어는 나에게만 해당되는 단어였다. 상대는 어떠한 두려움도 없는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그 눈,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 눈동자에는 어떠한 두려움도 서려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선을 땔 수는 없었다. 그 눈동자에서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다고 해도, 그것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건 분명한 진실이었으니까. 상대가 노리는 게 내가 시선을 돌리거나 몸을 돌려 도망간다는 것을, 그것을 노린다는 걸 알고 있기에, 애써 흔들리는 시선을 붙잡으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뚝뚝 하고 내 몸에서 흐른 물방울이 손목에 떨어지고 있었다. 아까부터 떨리던 몸 때문일까? 내 시선이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양 발은 분명 이 대지를 딛고 있다는 게 느껴지고 있었지만 상체만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비틀거리고 있었다.

‘눈앞이 새하얗다.’ 라는 단어가 그 상황이 내 몸에 일어나고 있었다. 우유바다에 빠진 것 마냥 답답한 시야 어지러운 머리 그로인해 비틀거리는 내 신체 그리고 헛구역질 당장이라도 토할 것만 같았다.

시야가 점차 흐려져 반투명 이라는 단어가 불투명이 되어가고 있기에 눈을 꾹 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흔들리는 심신을 어떻게든 붙잡고 시선을 꽉 하고 붙잡고 있는 안개를 털어내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안개는 끈덕진 껌 마냥 짙게 눌러 붙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단 한순간만 단 한번만 눈을 감고 내 손에 들린 금속을 휘둘러 저것을 베어 가른다면 그렇다면 이 더러운 감정의 장막역시 베어 날아갈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내 손에 들린 무기에 의해 상대의 피부는 잘려 나가고 살점에 베이고 근육이 갈라지고 핏줄이 끊어지게 될 것이 자명했다 상대의 몸에선 피가 뿜어져 나오고 상대의 성대에선 비명이 터져 나올게 당연했다.

호구라는 안전장치 입고 죽도라는 안전한 도구를 들고 하는 검도경기가 아닌. 오로지 맨몸으로 양손에 들린 양손 검으로 경기가 아닌 결투. 승과 패 가 아닌 삶과 죽음으로 나뉠 행위. 그것이 지금 내가 하려는 일 이었다.

난 지금까지 태어나서 단 한번이라도 무언가를 죽인 기억은 없다. 물론 바닥을 기어 다니는 개미나 귀찮은 파리, 모기는 잡았지만 일정 크기 이상의 동물을 잡은 적이 없다. 길고양이에게 멀리서 돌을 던져 상해를 입히려 한 적은 있지만 그저 ㅤㅉㅗㅈ아내기 위한 행위일 뿐 죽이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등장인물들 모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휘두르며 무언가의 숨결을 거두어 낸다. 그 와중에 피가 얼굴에 튀기도 하고 상대 신체의 일부분을 잘라내기도 하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상대의 목숨을 끊어 놓는다.

하지만 난 일게 고등학생일 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커녕 드라마 속 조연이라도 되지 못한다. 전쟁 신에 등장한다면 겁에 질려 벌벌 떨다 도망가는 병사1, 깡패들이 나오는 장면에 등장한다면 깡패끼리 싸우는걸 보고 겁에 질려 도망가는 행인1 정도의 역할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절그럭 소리를 내며 검을 다시 한 번 다잡았다. 도망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도망이라는 선택지를 선택한다면 도망은 가면을 벗고 죽음 이라는 정체를 드러낼 것이 분명했다. 내가 등을 돌려 도망간다면 저것은 분명히 그때를 노리고 날 공격할 것 이 분명했다.

이렇게 내가 상대에게 검을 겨누고 시선을 맞추고 있는 지금 이 상태가 어찌 보면 대결 중 가장 안전한 상태였다 비록 눈앞이 탁해지고 속이 울렁거리고 상체가 흔들리고 있지만 그래도 이 형태만이 상대도 나도 살아있을 수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10분이 넘게 들고 있던 검 끝은 부들거리며 점점 내려가고 있었고 흐르는 땀방울도 더욱 많아지고 있었다. 아마 이대로 계속 있다가는 5분도 채 되지 않아 검을 들고 있을 힘도 남아있지 않을 터였다.

그렇다면 난 죽는다.

아직 검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지금 휘두를 수 있는 지금 이 순간만이 내가 산다. 라는 선택지를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살해의 공포보다 죽음의 공포가 더욱 큰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죽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가 죽는 것은 더욱 싫었다. 그럼에도 난 최후까지 버티고 버티었다. 마지막 정말 마지막까지 내가 검을 휘두를 수 있는 힘만이 남아 있을 때까지 버텨 보았다 혹여 지나가던 누군가가 이 상황을 마무리 해 주지 않을까, 혹은 상대가 포기하고 도망가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 갈 때까지도 내가 확인할 수 있었던건 정말 헛된 희망이었음을 확인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상대는 내 검 끝이 더욱 내려가는걸 보더니 자신의 승리를 직감한 듯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신이 다가와 내 목을 조르는 것처럼 너무 느리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게 정확히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 걸음걸이에선 확실한 살의가 느껴지고 있었다.

‘죽음.’

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을 강하게 때려 박았다. 이젠 진짜였다. 더 이상 시간을 끌 방법이 없었다. 이미 무거워 질대로 무거워진 내 팔을 부들부들 떨리는 내 손을 이젠 불투명이라고 표현하는 게 올바를 정도인 내 시선을 숨을 쉬는 것인지 발작을 하는 것인지 모를 내 호흡을 정리해야 했다.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훙-

하는 소리와 함께 장막이 찢겨 날아갔다.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상대가 베어졌다.

푸슛-

하는 소리와 함께 상대의 피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알림이 튀어 나왔다.

경험치 +5xp를 획득하셨습니다.
+3원을 획득하셨습니다.
토끼고기를 획득하셨습니다.









-----------------------------------------------------------------------------------------------------------------------------------   "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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