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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 모니터 뒤에 사람 있어요.
게시물ID : readers_147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청묘
추천 : 1
조회수 : 39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8/12 2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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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만큼 인간의 심성이 그토록 약해지는 곳이 어디 있는가? (헨리 워드 비처)

책게만큼 인간의 심성이 그토록 따뜻해지는 곳이 어디 있는가? (청묘)



모니터 뒤에 사람 있어요.


作 청묘


"에이 씨발-"

후덥지근한 열기때문인지 그는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명색이 유머사이튼데 허구한 날 콜로세움 세우고 자빠졌네. 지네가 무슨 고대유적 덕후들도 아니고... 더러워서 여기 다시 안온다.


인터넷이라는 가상 사이버 공간에서 글 하나 잘못올려 난독증 환자들에게 극딜 당했다고 생각한 그는 스트레스 해소로 무얼 할까 생각하다

손에 들린 휴대폰을 가만히 쳐다본다.

그러다 문득 귓가에 맴도는 폰팔이의 목소리가 매미소리보다 크게 웅웅 거렸다.


"……고객님 36개월 약정으로 하시면 기기값 무료로 이용가능하시고……. 저희가 위약금 다 물어드리구요……"


호구병신인 그는 손에 들린 베레기를 던질 용기가 없다.

이내 휴대폰을 내려놓고 자신이 키우는 애완견을 불렀다.




"뭉치야~ 우쭈쭈 내새끼~"



연신 얼굴과 얼굴을 맞대며 부비적거렸다. 더워서 그런지 이내 낑낑 거리며 축 늘어지는 모습이 영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개도 더위를 먹나...눔! 하고 글 쓰고 싶다 히히히"

하며 별 병신 같은 생각을 입 밖으로 내 뱉다가 자신이 한심해져 뭉치를 내려놓고 방바닥에 누워 널브러졌다.





‘심심하네…….‘


 

말복이긴 해도 여름은 여름이라 짝짓기 하는 매미소리와 더위를 모르는 아이들의 공차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집안엔 더위에 지친 거친 날숨소리와 재작년에 나눔 받은 선풍기의 탈탈탈거리는 모터 소리만 들린다.



‘한철 사는 매미들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라고 열심히 못살쏘냐…….’



그는 나태함에 못 이겨 다시 마우스에 손을 얹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두 번 다시 들어가지 않겠다던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휴지통에서 즐겨찾기 아이콘 하나를 복구한 뒤 더블클릭한다.

 

곧바로 푸르스름한 남색 바탕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마우스를 옮기며 중얼거렸다.

 

"흠..패션...여기는 씨빨 내가 팬티만 입고 올려도 반대 주겠지? 아 그건 당연한 건가

시사게..정치는 내 타입이 아냐...여긴 진짜 콜로세움 장인들밖에 없잖아? 롤...내가 바로 트롤러다 새끼들아 낄낄낄"

 

몇 번을 두리번거리며 마치 운영자라도 된 듯 게시판을 평가 질했다. 딱히 그의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는지 창닫기 버튼에 마우스가 옮겨가던 차

요리게시판 아이콘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정착할 곳을 찾은 듯 여러 게시물들을 클릭한다.


‘사람들 맛있는 거 많이 먹네…….’



그래도 여기만큼은 활기 넘치고 훈훈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복날이라 몸보신으로 백숙 먹는다고 올려볼까 심심한데”


키보드를 투닥투닥 하더니 제목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결국 게시글을 작성했다.

 

[ 제목 : 오늘 말복 아닌가요? 실시간으로 여름 보양식 달릴게요 : ) ]

 

몇 번을 고민하다 쓴, 꽤 시선을 끌법한 제목이었다.

그리고 그는 재료들을 손질하고 육수 끓일 준비를 했다.

물론 36개월 약정 휴대폰으로 정성스레 사진을 찍어 실시간으로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작성자댓글 : (사진) 저 지금 파 다듬고 있어요]

맛있는 냄새를 맡았는지 몇몇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댓글 : 와 이거 실시간 인가 탑승!]

[댓글 : 백숙 해 드세요? 찹쌀을 넣어줘야 맛있는 거 아시죠 ? ㅎㅎ]

 

“찹쌀.. 찹쌀을 넣어야 맛있는 건가…….”

 

그는 뭔지 모를 쾌감에 사로잡혀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이 요리에 들어가는 지도 모른 채 열중했다.

가스레인지를 점화하고 엄마 집에서 가져온 매번 한가득 곰탕을 끓여주셨던 커다란 냄비에 물을 가득 채워 올려놓았다.

 

[작성자 : (사진) 저 이제 물 올렸어요.]

 

그러다 문득


"내가 다시는 글 안올린다. 그랬는데 이렇게 열심히 요리하는 내 모습이 마치…….3월은 마치! 마치! 낄낄낄“

혼자 산지 오래돼 혼잣말은 필수가 되어버린 그는 미친놈마냥 중얼거렸다.

그래도 즐거웠다. 매번 핏대 세우고 으르렁 거리며 싸우는 것만 보다 오랜만에 따뜻한 소통이다.

[새로운 댓글 눌러서 확인하기]

톡-

[댓글 : 닭 손질은 하신거에요? 다된 거 사셨나.]

 

[작성자 : 아 맞다 지금 하려고요 털 뽑아서 토막 내면 되는 거죠?]

 

[댓글 : 터..털이요? 작성자님 시골사세요? 토종닭인가]

 

[작성자 : 헤헤 뭐 그렇죠 떠나보내려니 아쉽네요ㅠㅠ]

 

올라오는 댓글들을 바라보며 그는

'그래 이런 게 바로 내가 바로 원한 이상적인 사이트야'

라고 생각했다.

그는 재료손질을 다 마쳤는지

모든 재료를 육수에 넣고 약불로 줄여 놨다. 여유롭게 뒷정리 까지 하고 자신의 게시 글을 확인했다.

 

[작성자 : 님들 저 이제 다 익기만을 기다리기만 하면 됨 중간 과정샷은 정신없어서 못 올렸어요 죄송 ㅜㅜ]

 

올려놓고 게시판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보니 금세 고소한 냄새가 집안가득 채워졌다. 뚜껑을 열고 대접에 한 국자 푸고 후추까지 뿌려 데코레이션했다.

  

[댓글 : 이제 익었나요? 저 목빠지게뜸ㅇㅅㅇ]

  

흐뭇하게 댓글을 바라보며 ‘조금만 기다리세요 여보~’ 라고 말하는 1년차 주부에 빙의해서 36개월 약정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실시간으로 댓글을 올렸다.


[작성자 : (사진) 자 여기요~ 아주 푹 고아졌네요]

[댓글 : 오오! 근데 오골계인가봐요 색이 조금 다르네요~]

[작성자 : (사진) 자 여러분 한입 하세요~]

[댓글 : 근데 오골계치곤 색이 좀.. 진짜 시골에서 잡은 거 맞아요?]

[작성자 : 네네 색은 몰라도 맛만 아주 좋네요]

[댓글 : 진짜 오골계에요? 우와 신기 맛있을 듯!]

[작성자 : 다들 맛저녁 하세요]

[댓글 : 블라먹을거 각오하고 올리는데 저희 부모님이 시골에서 직접 키우셔서 알아요 저거 절대 토종 오골계 아닙니다. 완전 다르네요]

[댓글 : 돌연변인가 보져 ㅋㅋㅋ별게다 지적]

[댓글 : 아뇨 그냥 수상해서요ㅋ첨엔 닭이라고 했다가 오골계라고 했다가 그리고 요즘 누가 직접 털 뽑아서 해먹어요ㅋㅋ
주작 같기도 하고 그냥 마트에서 사왔다고 하시지.. 그리고 살도 다 풀어진게 형태도 알 수도 없고 저게 무슨 토종?]

[댓글 : 진짜 주작인듯?ㅋㅋㅋㅋㅋㅋㅋㅋ토종 오골계는 무슨ㅋㅋ 색도 다르구만ㅋㅋㅋ]


댓글 창을 확인 한 그는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분에 못 이겨 댓글을 작성했다.


[작성자 : 제가 뭘 어떻게 해먹던 무슨 상관들이세요 다들 얼른 밥이나 드세요 배고파서 정신이 다들 헤까닥 하신가보네ㅋㅋ]




“에이 씨발-”


더 이상 댓글을 확인하지 않은 채 그는 화를 못 참고 36개월 약정 휴대폰을 집어 던져버렸다.

그러곤 중얼거렸다.


“명색이 유머사이튼데 허구한 날 지적질이여... 내가 직접 손질해서 끓인 건데...”


소통에 실패한 그는 또 다시 울적해져 자신의 애완견 뭉치를 불렀다.


“뭉치야~ 간식먹자~아빠가 끓인거 먹어보자~”



“뭉치야~ 어디간거야~”



“...”



“아 맞다”


















“내 뱃속에 있지?”





<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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