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소설은 뭔가 공통점이 있다. 무슨 내용인지 머릿속으로 확 와 닿지는 않는데 일단 술술읽히긴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하루키의 소설은 곱씹어 읽지 않았다. 그냥 읽히는 그 순간이 좋고 나중에 책을덮고 나서야 아... 이건 무엇이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는게 다반사였기 때문에 이번 신작 단편소설 역시 큰 고민 없이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단편들 중 '기노'라는 작품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수 없이 곱씹고 되뇌이게 된다.
이는 지극히 내 현재 상황이 주인공의 심정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분명 큰 상처를 받은사람이다. 처의 외도 사실을 눈 앞에서 목격하고 그로 인해 직장과 현실에서 도망쳐 작은 와인 바에서스스로를 웅크리고 지낸다. 그런데 어쩐지 주인공 기노는 별다른 외상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내의 외도를 바로 눈 앞에서 목격한 사람임에도 그는 그 자리에서 화를 내기는커녕 도망치듯 현장을 빠져 나왔다. 작품에서도 언급되었듯, "그는 충분히 상처받지 못했다"
나는 얼마 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 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남성상을 머릿속에 이데아로 그려왔던 나는 이번에도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 들였다. 일방적인 그녀의 통보에도 나는 '잠깐' 힘들어하고 말았으며 그 다음 날부터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애썼다. 물론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으나 늘 그랬듯, 나는 주변 사람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이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노'를 만난 것이다. 그는나보다 더했다. 슬프면 슬프다고 말할 줄 몰랐고, 상처 받았는데도상처 받지 않은 척을 했다. 그렇게 정상인 듯 정상적이지 않은 나날을 보내 오던 기노는 뜻하지 않은기현상과 마주치게 되고 이는 그의 마음이 그에게 울리는 마지막 경고다. 지금 너는 슬프다. 슬픔에 빠진 인간이 슬퍼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무어냐. 너는 너와정면으로 마주하려 하지 않고 뒷모습에서 위안과 안식을 얻는다. 슬픔에 빠진 너를 인정하는 것은 절대비겁한 것이 아니다.
'기노'를 읽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그래, 나는 상처받았다, 그것도 몹시 깊이.' 나는 평소 나의 상태를 전혀 남들로 하여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사진으로 일관했던 모바일 메신져 프로필 사진에다저 마지막 페이지를 올렸다. 그리고 같은 구절을 알림 말로 썼다. 주변친구들이 하나 둘 소식을 물어온다. 무슨 일이냐, 왜 그러느냐. 나는 이야기한다. 이별했다고. 그리고슬퍼한다. 나는 지금 실연의 슬픔에 빠진 사람이며 위로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 이것이 사람이다. 사람은상처 받을 때 충분히 상처 받고 슬퍼해야 한다. 그 슬픔을 목구멍으로 삼키는 것은 내 화를 삼켜 독으로뱉어내는 부질없음에 다름 아니다. 나약한 심장 하나 부여잡고 살아가는 내가 무슨 힘이 있어 혼자 이별의거대한 파도 앞에 오롯이 버텨낼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힘들다. 그리고슬프다. 이렇게 말하고 눈물 흘리는 것이 내가 진정 나를 사랑하고 인정하는 방법일지어다. 슬픔 앞에 위선을 보이지 않겠다. 나는 오늘, 몹시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