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르신들의 말씀이나 책을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죠. "특정물건에게 정이나 증오 혹은 계속 이야기를 걸면 그것에 일종의 '생령' 이라는것이 깃들어서 자신이 사람인 줄 안다."
라는 이야기요.
비바람 치는 여름과 눈이 푹푹 쌓이고 영하 20~30도를 넘나드는 혹한에서도
다 낡아서 빛바랜 전투복 하나 걸치고,
언제나 같은장소에 배치되는 허병장이 왠지 안스러워서
근무투입시 허병장을 걸어 놓을때면
"허병~
오늘도 졸지말고 근무잘하자~"
또 근무철수하면서 허병을 내릴때는(주간에는 마네킹이라는 것이 들키니까 허병을 안새웁니다.)
"오늘도 무사히 근무마쳤네~
수고했고 푹쉬어 허병~"
이라고 항상 말을 걸어 주었습니다.
그런 비일상적인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고
그렇게 GOP짬밥도 얼추 반년쯤, 여름이 다 저물어가는 어느 밤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년주기로 부대가 돌아가며 순환근무를 서는데 저희는 3월에 들어가서 다음해 3월에 철수했습니다.)
당시 야간 근무여서 오밤중에 기상하여 졸린 눈 비비며 근무투입 준비를 하는데
상황실에서 상황을 보던 포반장이 스파이더(통신수단)로 온갖 욕을 하면서
"장난친 놈 잡히면 죽인다."
고 역정을 내더군요.
저희는 또 어느 말년이 밀조 돌면서 장난치나 보다라고 생각했죠.
(스파이더는 일반 가정집 전화처럼 번호만 알면 외부에서 휴대폰으로도 장난전화를 할 수 있습니다.)
여담으로 어느 휴가자가 후임에게 스파이더로 전화를 걸었다가 영창을 먹었죠.
그렇게 생각하며 합동 후 전근무와 교대를 하는데
저와 교대하던 초소의 선임분대장이 뜬금없이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나가더군요.
당시 상병사수이던 전 그냥 이 인간이 장난치는구나 생각하고
투입 후 후임과 노가리를 까고 놀고 있었습니다.
야간근무의 지루함.
아는분은 아실거라믿습니다.
밤은 길고 이야깃 거리는 두어 시간도 안되서 동나고.
결국은 졸음과 싸우는 때죠.
그러다가 가벼운 일이 하나 터집니다.
상황실에서 각 초소로 스파이더를 돌렸는데 그 내용이
"허병을 걸어놓은 초소에서 자꾸 상황보고가 온다.
말년이나 누가 거기지나면서 장난쳤냐?"
였습니다.
저희야 당연히 그럴 일 없으니
"초소 상병 이** 입니다.
저희 이제 밀조 한바퀴인데 밀조간 특이사항 없었습니다."
라고 보고를 하였죠.
그러고 근무를 서는데 북측에서 산불을 보게되어 보고하려는 순간 스파이더가 오는겁니다.
이번에도 역시 포반장이 매우 화난 목소리로
"누가 자꾸 빈초소에서 장난치냐.
너희들 지금 장난하냐."
고 막 그러는 겁니다.
"부소대장한테 연락넣었으니까 지금 밀조돌면서 다시 체크해봐."
라고 하는 준엄한 계시(?) 가 떨어지더군요.
예정보다 빠른 밀조를 돌면서 제가 그 문제의 빈초소를 확인 차 순찰을 했습니다.
그 곳에 배치되어 있는 스파이더의 수화기가 내려가 있고 선도 조금 헤져있었습니다.
혼선이 왔나보다 싶어 다시 원위치 시키고 상황 보고하며 나가며,
그 허병장에게 부사수인 제 후임과 같이
"이봐 허병~
그런 장난은 치지말고 우리 근무 잘 서보자고~"
라고 (이게 실수였다는걸 이때 알았다면....)
말한 후 근무를 이상없이 마쳤습니다.
곧 철수하여 아침부터 점심나절까지의 단잠에 빠졌습니다.
다시 시작되는 후반야간 근무.
이번에는 제가 첫 대기를 들어가고 밀조 출발하면서 허병장이 있는 그 빈초소를 지나며
"나간다~ 수고해 허병~"
을 한 번 날려주고,
초소로 들어간 후 근무를 서는데 이번엔 99k로 무전이 들어왔습니다.
"현망에 수신대기중인 33,
본국 44인데 송신바람."
(33 = 제가들어간 초소번호, 44 = 허병초소번호)
그렇게 무전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무선망은 당연히 현재 근무투입중인 분대원들의 채널과 동일해서 분대원들의 웅성거리는 무전과
지금 수화자 누구냐는 무전이 들어오고
저 역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찰나 동일한 무전이 한 번 더 들어옵니다.
"현망에 수신대기중인 33,
본국 44인데 송신바람."
어떻게 해야할 지 누구 장난일까 그 생각만 하는데
대기초소에서 소대장이 스파이더로 저에게 연락,
그 무전에 한 번 응답해 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응답했습니다.
"33 송신."
"33, 33
본국 44, 44인데
근무 중 특이사항 없고
55번 철주 근처로 고라니 한 마리가 지나감."
"33 입감. 남은 근무 철저"
"44 입감, 수고 대기바람."
"양호 수고대기 바람."
아아...
허병초소의 이름 없는 괴인과 태연히 무전을 주고받는 그 심정이란...
부랄이 땅콩마냥 쪼그라들고 여름인데도 소름이 찌르르하고 돋아났죠.
그 후 소대장이 직접 통신병과 밀어주기 없는 순찰식 밀조 돌면서 각 초소를 돌았습니다.
순찰 후 제초소에 놀러와서 이야기 하나를 하는데 참...
"야 무식 깐돌아~(제별명이었습니다.)
니 아까 허병 초소에서 날라 온 무전에 응답했다 아이가?"
"예, 그렇습니다."
"어떤 기분이데?"
"사실...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도 소름 좀 돋습니다, 소대장님..."
"근데 진짜 이상한 게 뭔 줄 아나?"
"뭐 이상한 거 있었음까?"
"아까 무전에서 55번 철주 근처에 고라니 돌아댕긴다고 했다아이가?
내가 오면서 확인해봤는데 진짜로 그 앞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풀 뜯어 처먹고있드라..."
"..."
"근데 더 이상한 게 뭔줄 아나?
그거 보고 나도 소름 돋았어도 내는 간부아이가.
눈 딱 감고 허병초소 문을 '왈칵!' 하고 힘껏 열어제낏는데 ........"
"뭐 있었음까? 소대장님?"
"이거 줏어왔다 니가 함 봐바라."
확인해 보라며 소대장님이 저에게 보여준 것은 구형 무전기 인겁니다.
(호칭을 모르겠습니다. 옛날 알포인트보면 길다랗고 네모난 휴대용 무전기있는데 그것과 같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초소에 갑자기 그런게 나오다니....
그럼 무전은.... 왜 하필 저에게... 그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짜피 당사자들인 우리분대만 알고있는 일이고
또 위에서는 믿어주지도 않을테니 그냥 넘겨버렸습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사건은 후반야간근무 3일째 부터 시작했습니다.
철수 후 우리가 겪은 일을 주간조인 2분대에게 이야기하니
서희수 병장이 구라까지 말라며 자기가 한 번 보겠다고 근무를 나갔습니다.
그 후 취침에 들어간 저는 꿈을 하나 꾸었습니다.
꿈에 내무실에서 TV를 보고있었습니다.
갑자기 문이 열리며 웬 일병이 한 명 들어왔는데 저희 소대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근데 같이 TV를 보던 분대원들에게는 눈길 한 번 안 주고 저에게 와서 '떨썩' 쓰러지더니
"이재환 상병님...
서희수 병장님이 제가 맘에 안든다며 제 가슴을 발로 찼습니다...
진짜 억울합니다... 이재환 상병님..."
하면서 울먹울먹 거리는 겁니다...
그래서 전 꿈속에서 조차 상병짬밥을 과시하며 그 울고있는 이름모를 일병을 토닥거려주고
같이 담배 한 대 피면서 군생활이 원래 그런거다라며~ 달래다가 꿈에서 깨었습니다.
기상 후 점심을 먹고 여러가지 작업을 하다가 합동시간이 되어서 합동근무를 설 때 꾼 꿈도 있고해서
서희수 병장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병장이 우리를 반겼고 같이 얼마 안 남은 합동근무 대차게 노가리로 보내는데
문득 서병장이 그러는 겁니다.
"주간에 근무투입하면서 허병장초소 들러봤는데
니말 듣고 그놈을 보니 왠지 기분이 드러워서 발로가슴팍을 냅다 걷어찼는데 이 허병새끼가 사람 자빠지듯이 꼬꾸라지더라...ㅋㅋㅋ"
순간 서병장이 한 말이 제가 꾼 꿈과 오버랩되면서 오싹해졌고
서병장에게 제가 꾼 꿈을 이야기하면서 당분감 좀 조심해야되는거 아니냐고 하니까
기분이 나빠졌는지 저에게 가벼운 손찌검을 하면서
"이 새끼가 누가 무식깐돌이 아니랄까봐 병장한테 이래라저래라하네~"
라고하며 욕을 하더군요...
그렇게 합동시간이 끝나고 해도 다 떨어져서 전반야간조를 남겨두고
후반야간인 저희들과 주간조인 서병장네 분대가 같이 철수를 했습니다.
저희 분대가 앞장서고 서병장네 분대가 뒤에서 따라오는 형식으로 철수하는 도중에 허병장 초소를 지날때 쯤 뒤에서
"우아악~"
하는 짧은 비명이 들리더군요...
모든 인원이 소리난 곳으로 가보니 허병장 초소가 열려 있고,
그 문 앞에 서병장이 다리를 잡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하필 오싹하게도 열린 문 틈 사이로 허병장의 팔이 살짝 나와있었습니다.
저희를 밀치고 달려온 소대장이 그 광경을 보고 잠시 얼었다가 서병장네 분대원들한테 무슨일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서병장이 앞장서서 분대원들이랑 가고있는데
허병장 초소에 걸어놓은 허병이 한쪽 끈이 풀림과 동시에 떨어지면서
문을 치는 바람에 앞서가던 서병장이 그 문에 얼굴을 부딪히면서 뒤로 고꾸라졌다는 겁니다.
암튼 그런 연유로 서병장이 자빠지면서 소리를 질렀다는 겁니다.
그렇게 자초지종을 듣고 소대장이 서병장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데 골절이 되었더군요...
발목이....
그렇게 초저녁 에피소드는 2분대장인 서병장의 발목골절 해프닝으로 끝나면서 서병장은 후방CP의 부대로 긴급후송됩니다.
다른 소대원들이야 초소도 워낙 낡았고 허병장 고정끈이 낡아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저와 소대장은 유독 찝찝함을 감추지 못하였고
특히 저는 그 꿈과 서병장이 했던 행동들 때문에 더욱 의문이 쌓였습니다.
그리고 4일차...
어김없이 후반야간근무...
하지만 이날은 월례행사처럼 연대장이 순찰을 오는 날이었고,
저희는 군기가 잔뜩 들어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어깨에 힘도 주고 눈알도 부라리면서 근무를 서는데
당시 제가 있던 초소의 위치가 허병장 초소 다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순찰자가 저에게 올려면 허병장 초소를 지나서 와야하는 위치이지요.
그렇게 연대장을 기다리며 눈알을 부라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순찰로를 따라 두명의 사람 형체가 보였습니다.
우리는 POWER FM 방식으로 수하를 하고 연대장에게 초소의 경계지역과 전방의 지형지물등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연대장의 흡족한 미소를보며 속으로 "아싸~"를 외치는데...
느닷없이 연대장의 이야기 하나에 저와 뒤늦게 순찰하는 척 하면서 온 소대장은 얼어버립니다.
"연통아(연대통신병)"
"예. 연대장님."
"연대 상황실에 무전날려서 내일 이 애들 소초에 황금마차 올리 보내라고해라."
(근무 상태가 좋은 소초애는 주1회인 황마[이동식PX]를 한 번 더 오게하는 특전이 있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소대장."
"예 **소초 소대장 중위 김민성! "
"너희들 소초는 애들 근무상태가 다 좋구나.
방금 44초소에 있던 애들도 수하방식이나 근무브리핑이 좋아서 내가 특별히 황마서비스했다."
이 말 한마디가 얼마나 공포스럽던지...
잠시 말없이 있던 저희 분위기를 알았는지 연대장이 다시 이야기하더군요.
"44초소 애들 말이야,
근무상태가 좋더라고."
"연대장님 죄송합니다.
한 번 더 말씀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어허~ 젊은친구가 귀가 안 좋은건가~
44초소 애들말이야!"
"연대장님...
그 초소는 마네킹만 세워놓는 가초소입니다..."
"무슨소리야 이 친구야 나랑 통신병이 아까까지만 해도 수하 받고 그 안에서 애들 브리핑하는 걸 들었는데"
연대장 슬슬 기분이 나빠지나 봅니다...
"연통!"
"예. 연대장님."
"너 방금 나랑 같이 그초소에서 브리핑 받았어 안 받았어?"
"분명이 일병사수가 수하하고 브리핑도 했습니다."
"야! 소초장(소대장입니다) 이래도 내가 잘못본거야?
나랑 연통이 같이봤어 이사람아!"
"어이 거기 상병사수야 "
"33초소 근무자 상병 이재환!"
"니가 한 번 말해봐 거기 일병사수 너희분대 아냐?"
"초소근무자 상병 이재환 연대장님 말씀에 답변 드리겠습니다.
현재 44초소는 전시 투입이 아닌 이상 마네킹을 세워 적을 기만하는 가초소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저희 분대 인원은 총11명이고 근무투입자 8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비번입니다.
비번 인원 중 일병 1명은 현재 상황실에서 근무서고 있습니다."
연대장... 제 말을 듣고 안색이 변했습니다...
하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사실은 사실인것을...
"이것들이 지금 연대장하고 장난하자는거야?
중대 해체되고 싶어?
상황실 연결해!"
"예?"
"이 소초 상황실 연결하라고 임마!"
부랴부랴 상황실에 연락하여 소초 총원과 현재 근무자 등등을 물어보던 연대장...
안색이 이상해집니다...
그러더니 결국 소대장과 함께 그 초소를 다시갔고 그 후 완전 굳은 표정으로 레토나를 타고 연대로 돌아가버리더군요....
하지만 다음날 약속했던 황금마차는 왔었기에 그냥 그걸로 행복해져서 전날 일은 그냥 묻어버립니다...
격오지 근무인 군인은 PX면 동기도 팔수있기에...
그리고 솔직히 이때까지 '괴담없는 군대가 어디있고 사연없는 근무지가 어디있냐~ 뭐 나오면 나오는거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날 밤...
저 마저도 목격하게 되니 세상이 달라져 보였습니다.
그 날 새벽 3번 째 밀조를 도는 중 문제의 허병초소를 지날 때 저는 보았습니다.
언제나 말없이 꿋꿋하게 정면을 바라보면 허병의 몸이 순찰로 쪽으로 돌아가 있는것을...
문제는 거기서 그냥 지나쳐야 했는데 한 순간의 판단미스로 오줌까지 지리게 될 줄이야...
그 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순간 '허병을 바로 놓아야한다.'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허병 초소문을 열고 허병의 몸통을 잡는그 순간 초소문이 닫혀버립니다...
그것도 누가 화내면서 강하게 발로차는 듯이 쾅!! 하고...
부사수는 졸지에 초소에 같혀 버린 저와 스스로 닫힌 문을 번갈아보더니 이내
"으아아아아~"
하고는 소대장이 자고있는 초소로 도망가버립니다...
저 혼자 경계등 불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가초소에서 허병을 어정쩡하게 잡은상태로 굳어서 입만 어버버~ 하고있는데...
스파이더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전 소대장이겠거니 하면서 놀란가슴을 진정시키고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통신보안 33초소 상병 이재환 입니다."
"............................."
"통신보안?"
".............................."
"통신보안 33초소 상병 이재환입니다."
".............................."
이성이 날아갈 것 같고 무서워 죽겠는 마당에 한 가지 드는 생각은
"고참들이 나를 놀리려고 하나...?"
였습니다.
그런데 이윽고 들리는소리...
"..........왜........."
"분대장님?
나병장님?
신진우 너냐?
아~진짜 장난지치마십쇼~ 무서워죽겠슴다~"
"..........왜........."
"뭘 왜긴 왭니까...무서워죽겠으니까 진짜 장난그만하십쇼~"
"...왜..........왜.........왜......"
"아~진짜 자꾸그러시면 저진짜 상황실 연락때림다~근무태도불량으로~"
"....이....제.....왜.....니까...."
"야 씨바 너누구야? 근무철수하면 뒤진다?"
".....왜......이...제....안...걸...어...줍...니...까..."
이때 목소리가 진짜...
지금도 소름 돋는게 영화 주온에서 귀신이 기어나올 때 뭔가 떨리는 톤으로 어어어어어...하는거랑 비슷했습니다.
그톤으로 아주천천히... 뭔가를 말하는데....
"....왜....이...제...말...안...걸...어...줍...니...까..."
아마.. 이때부터 이성의끈을 놓았다고 생각됩니다...
"어버버...."
"...왜...몇...일...전...처...럼... 늘...그...렇...듯...이... 말... 안...걸... 어...줍...니...까..."
예...
부끄럽지만 이때 군복에 오줌 지렸습니다...
더 이상 스파이더의 수화기를 들 자신도 없었고 제 바로 뒤에 있는 허병을 볼 자신도 없더군요...
상병달 때 까지 키워 온...
아니, 가득했던 악과 깡은 이미 지려버린 소변에 섞어 나왔구요...
머릿속으로 셋을 세자마자 군홧발로 초소문을 발로차서 부숴트리고 단박에 튀어 나가려는데...
무언가 제 전투조끼를 잡은것처럼 뒤로 다시 당겨졌고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지 않자 바로 99k를 꺼내어 음어고 나발이고 제끼고 99k에 대고 외마디 비명...
"살려주십쇼 소대장님!!!"
그 외마디 비명과 함께 전 이성의 끈을 놓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 후 다시 깨어났을 땐 소대장과 부사수.
그리고 소대통신병이 절 흔들고 있었습니다.
부사수놈...
절 버렸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질질짜면서 한다는 소리가.
"이재환 상병님 일어나십쇼 제발~~ 제가잘못했슴다~엉~엉~"
제가 눈을 뜨자 소대장 무슨 굶주린(?) 사람마냥 저를 냅다 끌어안고는 살아서 고맙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수통의 물을 마시며 좀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소대장은 통신으로 분대장에게 말해서 이틀은 근무열외 시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 보고 오늘 철수할 때 까지만 대기초소에서 자기랑 버티자고.
할 이야기도 있으니까 같이 있으면서 버티자고 하더군요.
그리고 대기초소...
서로 자기가 목격한 걸 이야기했습니다....
우선 제 부사수입니다.
문이 닫히고 놀라서 얼떨결에 초소안에 같혀버린 절 보고 닫힌문을 바라보다가 문을 열어야겠다고 판단하고 행동 하려는데
제가 잡고있던 허병장의 목만 돌아서 자기를 보고는 입모양을 벙긋..벙긋 거리는데..
느리게(자기시선에서는) 한글자 또박또박 입모양을 만든 그 내용이 이거랍니다.
"열.지.말.고.가!"
부사수..
이거 보자마자 미친새끼 마냥 소대장에게 보고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답니다.
그리고 대기초소문을 발로차고 들어가 단잠에 빠져있던 소대장을 잡아 흔들었고,
이야기를 들은 소대장은 저와 겪은 일련의 일들 때문에 일말의 의심도 없이 부사수와 함께 길을 따라 달려 올라오고
그 모습을 본 가초소와 가까운곳의 선임과 소대장, 제부사수, 소대통신병은 보았답니다.
문을 발로차서 부수고 뛰쳐나갈려는 저와 마치 저와 떨어지기 싫다는 듯 제 전투조끼를 잡고있는 허병의 손을....
그리고 그 때 맞춰서 분대 무선망에 퍼진 제 비명
"살려주십쇼 소대장님!!!"
...가초소와 근접한 곳의 초소인원들은 04k로 그광경을 보면서 덜덜 떨었고,
멀리 떨어진 곳의 딴 근무자들은 제가 간첩한테 목 따이고 있는 줄 알았다더군요...
그리고 마지막에 보았답니다.
소대장과 인원들이 도착하자 소대장과 저를 번갈아보며,
아쉬운 듯 놓는 그 하얀 팔을...
팔이 사라지자마자 저는 땅바닥에 고꾸라졌고
소대장과 부사수가 절 흔든것이었죠...
거기까지 들은 전 몸을 쉼없이 떨어야했고 날이 밝는대로 허병장을 떼어서 복귀,
그대로 공터에서 따로 소각하고 소금주머니와 함께 땅에 묻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가초소는 마네킹대신 플라스틱으로 된 북한군 표적으로 바꾸고 스파이더 또한 떼어버렸습니다.
그 후 한 동안 저와 부사수는 주간근무만 돌면서 지냈구요...
여러분...여러분들도 물건에다가 함부로 말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전 이 사건 이후 밤길을 걷다가 쇼 윈도우에 진열된 마네킹만 봐도 소름이 돋고 겁이 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