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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을 닮은 몸통에 사슴의 뿔 두 개가 달리고 4개의 발과 5개의 발톱을 지닌 채로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며 비와 바람을 부르는 짐승인 용(龍)은 보통 동양의 신화나 전설에서 가장 강력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이 용들을 다스리는 왕인 용왕(龍王)은 하늘의 신들에 버금가는 높은 신으로 인식됩니다.
하지만 구전 문학이나 전설에서 용왕들은 신으로서의 위엄을 부리는 모습보다 실수를 저지르며 웃음거리가 되는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다분히 듣는 사람들의 재미를 위한 설정입니다. 한국의 민담에도 백두산 천지에 얽힌 용왕들의 싸움에 얽힌 우스꽝스러운 설화가 전해지는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무속과 불교에서 그려진 탱화에서 용왕들은 위엄이 있게 묘사됩니다. 그러나 민담에서는 이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내용들도 있습니다.)
먼 옛날, 동해와 흑룡강(중국 헤이룽장성 북쪽의 강)과 백두산 꼭대기의 호수인 천지를 다스리는 용왕 세 명은 서로 자주 만난 끝에 의형제를 맺기로 결심하고 서로의 나이를 확인했는데, 가장 나이가 많은 쪽은 동해 용왕이었고 흑룡강 용왕이 다음이고 나이가 가장 어린 쪽이 천지의 용왕이었습니다. 그래서 동해 용왕이 큰 형이 되고 흑룡강 용왕이 둘째 형이 되었으며, 천지 용왕은 막내 동생이 되었습니다.
더운 여름이 되면, 으레 동해와 흑룡강 용왕은 의형제를 맺은 천지 용왕이 사는 백두산으로 가서 폭포와 천지를 구경하며 시원한 휴가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천지 용왕은 두 의형제를 백두산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다니며 관광을 시켜주었는데, 도중에 용녀(龍女 여자 용)들 수십 명이 폭포에서 춤을 추는 장면도 보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용녀들 중 한 명이 무척이나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춤을 추어서 흑룡강 용왕은 그만 그 용녀한테 사랑을 느끼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흑룡강 용왕은 천지 용왕한테 “저 빼어난 미모의 용녀가 누구인가?”라고 물었고, 천지 용왕은 “저 아이의 이름은 ‘미홍’이라고 하며, 나의 애첩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에 흑룡강 용왕은 얼굴이 찌푸려졌습니다. 임자가 없는 여자라면 당장에 데려가 자신의 애첩으로 삼고 싶었는데, 의형제를 맺은 천지 용왕이 이미 그녀의 주인이라니 선뜻 나서기가 곤란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미홍에 대한 흑룡강 용왕의 집착과 애정은 더 커져 갔습니다. 아무리 의형제라고 해도 도저히 미홍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흑룡강 용왕은 천지 용왕이 대접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술을 잔뜩 마셔 취한 채로 “내가 자네한테 부탁이 있다네. 미홍을 나한테 주었으면 하네.”라고 말했습니다.
흑룡강 용왕의 말에 천지 용왕은 눈살을 찌푸리며 “미홍은 나의 애첩이고, 둘째 형님의 제수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안 됩니다.”라고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미홍에게 흠뻑 빠져버린 흑룡강 용왕은 “우리가 친형제도 아니고 의형제인데, 안 될 게 뭐가 있겠나?”라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자칫 두 용왕 간에 감정이 틀어져 싸움이 벌어질까봐 지켜보고 있던 동해 용왕이 급히 나서서 “이보게 흑룡강 아우, 미홍은 이미 천지 용왕의 애첩인데, 어떻게 자네가 달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말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동해 용왕과 흑룡강 용왕은 천지 용왕의 배웅을 받으며 백두산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흑룡강 용왕은 미홍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해가 바뀌고 6월 보름날이 되자, 동해 용왕과 흑룡강 용왕은 다시 백두산을 방문했습니다. 세 의형제는 온천에서 목욕을 즐기고 나른한 기분이 들어 잠을 잤는데, 동해 용왕과 천지 용왕은 깊은 잠에 빠졌으나 흑룡강 용왕은 두 형제가 잠을 자는 틈을 노려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로 향했습니다.
잠시 후, 폭포 쪽에서 한 여인의 비명소리가 들려와 동해 용왕과 천지 용왕이 잠에서 깨어났다. 천지 용왕이 비명소리가 들린 곳으로 서둘러 달려가 보니, 흑룡강 용왕이 미홍의 옷을 강제로 벗기려 하자 미홍이 이빨로 흑룡강 용왕을 물어뜯으며 저항하던 중이었습니다.
분노가 치민 천지 용왕은 칼을 들고 흑룡강 용왕한테 내리쳤습니다. 흑룡강 용왕은 재빨리 피하면서 자기도 칼을 들고 천지 용왕한테 휘두르며 싸웠습니다. 둘은 치열하게 칼싸움을 벌였는데, 그때 동해 용왕이 황급히 달려와 흑룡강 용왕한테 “네가 잘못을 저질렀으니, 어서 막내 아우한테 사과를 해라!”고 야단을 쳤습니다. 동해 용왕의 위세에 눌린 흑룡강 용왕은 대충 사과를 하며 자리를 떠났지만, 다음 해에도 백두산을 찾아와서 똑같이 미홍을 겁탈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동해 용왕은 더는 참지 못하고 천지 용왕과 함께 흑룡강 용왕을 상대로 큰 싸움을 벌였습니다. 동해 용왕은 흑룡강 용왕을 향해 뜨거운 물을 퍼부었고, 흑룡강 용왕은 차가운 우박을 일으켜 맞섰으며, 천지 용왕은 번개와 바람으로 흑룡강 용왕을 공격했습니다.
결국 세 의형제의 사이는 완전히 파탄났으며, 셋은 싸움을 계속했는데 그들의 다툼으로 인해 오늘날도 백두산 천지의 날씨는 천둥이 잦고 소나기가 자주 내리는 불안정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되었다는 민담입니다.
출처 | http://blog.daum.net/timur122556/1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