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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명의 귀신을 부리며 신선이 된 장산인(張山人)
게시물ID : mystery_89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9
조회수 : 469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8/15 11: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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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학자인 허균(許筠 1569~1618년)이 쓴 문집인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를 보면, 장산인전(張山人傳)이라는 짤막한 소설 한 편이 실려 있습니다. 이 소설은 신선이 된 장산인(張山人)이라는 사람의 일대기를 다룬 것인데, 그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장산인의 원래 이름은 한웅(漢雄)이었고, 그의 할아버지 때부터 3대에 걸쳐 의원으로 살아왔습니다. 장산인의 아버지는 한약의 일종인 상륙(商陸)을 먹고 나서 귀신을 보거나 부릴 수 있는 능력을 얻었으며, 98세가 되어서도 40세로 보일 정도로 얼굴이 젊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도를 닦기 위해 집을 떠났는데, 그 직전에 옥추경(玉樞經)과 운화현추(運化玄樞)라는 신선술에 관련된 책 2권을 장산인에게 주었습니다.


장산인은 아버지가 준 2권의 책을 만 번 이상 읽었는데, 그러자 자신도 아버지처럼 귀신을 부리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그동안 앓고 있던 병인 학질(瘧疾)도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에 장산인은 신선술에 대한 흥미가 생겨 하던 일을 그만두고는 40세가 되던 시절에 지리산(智異山)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장산인은 신비한 능력을 가진 이인(異人 도사)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고, 도교에 관한 10권의 책을 읽으며 수행을 했습니다.


하루는 장산인이 계곡을 지나는데, 두 사람의 승려가 그를 따랐습니다. 우거진 숲 사이에 이르자, 두 마리의 호랑이가 나타나 장산인 앞에 엎드렸습니다. 장산인이 호랑이들을 꾸짖자, 호랑이들은 귀를 내리고 꼬리를 흔들며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장산인 자신이 한 호랑이에 올라타고, 두 승려로 하여금 함께 다른 하나에 타게 하여 절의 문 앞에 도착하자 호랑이들은 사람들을 내려놓고 물러갔습니다.


그렇게 지리산에서 18년 동안 도를 닦다가 장산인은 한양으로 돌아와서 흥인문(興仁門) 밖에서 살았습니다. 나이가 60세였으나 용모는 그보다 훨씬 젊고 건강해 보였습니다. 그의 이웃에 빈 집 한 채가 있었는데, 그 집에 귀신이 들끓어 집 주인이 장산인을 찾아와서 귀신을 물리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장산인이 밤에 그 집을 찾아가니, 두 명의 귀신이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서 “우리는 이 집의 문과 부엌을 지키는 수호신입니다. 사악한 뱀이 이 집을 차지하고서 못된 짓을 하고 있으니 제발 그것을 죽여주십시오.”라고 빌면서 뜰 가운데의 큰 홰나무 밑둥을 가리켰습니다.


장산인이 주술을 외우며 홰나무 밑둥을 향해 물을 뿜어내자, 조금 뒤에 사람 얼굴 모습의 큰 뱀이 번쩍거리는 눈빛으로 꿈틀거리며 나오다가 죽어버렸습니다. 그 뱀의 시체를 태워버리자 집에는 더 이상 귀신이 나타나지 않고 조용해졌습니다.


한 번은 장산인이 사람들과 어울려 놀면서 화살을 꽂아 물고기를 잡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장산인은 죽은 물고기들을 물동이에 넣고는 숟가락으로 약을 떠 넣어서, 다시 살려내기도 했습니다. 이를 보고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죽은 꿩으로 시험해 보라고 하자, 장산인은 숟가락에 약을 묻혀 꿩의 입 속으로 넣으면 죽은 꿩이 날개를 치며 살아나곤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화(李和)라는 점쟁이는 자신이 점을 보다 틀리면 장산인이 가르쳐 주어서 맞게 하는 것을 보고 “장산인의 주위에는 항상 3백 명의 귀신들이 호위하고 있으니 참으로 이인(異人)이다.”라고 감탄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장산인은 74세였습니다. 그는 집안의 재산을 정리하여 조카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승려의 옷을 입고 지팡이 하나만 짚고 5월에 소요산(逍遙山)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소요산의 승려한테, “금년은 나의 수명이 다하는 해이니 반드시 화장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얼마 후에 일본군이 소요산으로 쳐들어와 조용히 앉아있는 장산인을 발견하고는 칼로 찔렀는데, 장산인의 몸에서 마치 하얀 기름 같은 피가 흘러내리고 시체도 가만히 있었고, 곧바로 천둥 번개가 치면서 비가 내리자 일본군은 겁이 나서 달아나 버렸습니다.


장산인의 말대로 소요산의 승려가 죽은 장산인의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 화장을 하자, 하늘에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은은한 빛이 사흘 동안이나 떠 있었습니다. 또한 장산인의 시체를 불에 태우자 사리가 72개나 나왔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나무 열매 같았는데, 짙은 파란색을 띠었다. 승려는 그 사리들을 모두 탑 속에 묻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죽었던 장산인은 다시 살아나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죽었던 해인 1592년 9월에 강화도에 사는 친구인 정붕(鄭䨜)의 집에 왔었다. 정붕은 장산인의 죽음을 몰랐으며, 나중에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장산인은 내 집에 사흘이나 머물다가 금강산으로 간다고 하였다.”라고 전했습니다. 


정붕은 1593년에야 비로소 장산인이 죽었음을 알았는데, 이를 두고 사람들은 “장산인은 진짜로 죽은 것이 아니다. 그는 이미 신선이 되었기 때문에, 삶과 죽음을 초월한 몸이 되었다.”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출처 한국의 판타지 백과사전/ 도현신 지음/ 생각비행/ 404~4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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