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졸업식이 여기저기 치러지는 마당에 알몸 뒤풀이 팬티 뒤풀이 이런 일을 듣고 보고 하면서 대부분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리고 혀를 차게 마련입니다. 별로 생각하는 바가 없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냥 별 생각 없이 애들이라 한 번 저래 보는 모양이지. 다만 다른 사람들과 좀 달랐던 점은, 아무리 저래도 아이들은 다 제대로 자란다고 여기는 정도였지요.
그런데 13일 아침 신문을 보다가 요즘 이런 사람 이런 선생이 있나 싶어서 깜짝 놀라는 한편으로 감격을 해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저보다 열 살 아래인 한 선생이 쓴 칼럼입니다.
이계삼이라고, 경남 밀양 한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계삼은 그러니까 아이들 일탈 현상을 보면서 그 원인을 생각했고 그러면서 그것이 어떻게 해야 치유될 수 있는지를 깨쳤습니다.
그 깨우침이 저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도록 만든 것입니다. <한겨레> 13일치 18면 '세상 읽기' 칼럼에 무서운 중딩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한 번 끌어와 보겠습니다.
"지금 이 아이들은 대체로 1990년대 중·후반에 태어났고, 그 얼마 뒤에 IMF 구제금융을 겪었다는 사실이다. …… 구조조정, 정리해고,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들이 이 때부터 생겨났고, 생계비용에 대비한 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할 수 없이 맞벌이를 해야 했고, 많은 부모들이 이혼과 별거로 아이들을 홀로 키우거나 시골의 조부모 댁에 맡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남겨진 아이들이 유소년기의 대부분을 학원과 인터넷, 텔레비전으로 시간을 보내며 자라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뛰어놀 수 없었고, '살아 있는 세계'와 교섭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아이들의 움터오르는 그 '정직한 에로스'는 억압되었고, 자폐적이고 파괴적인 놀음의 과정 속에서 '욕구와 충동의 덩어리'가 되었다. 그렇게 자라난 첫 세대가 지금 중학교를 졸업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이계삼의 혜안을 통째로 느끼게 합니다. 시대를 읽고 시대의 특징을 읽음으로써 그로부터 온전하게 규정받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읽었습니다. 한편으로 상큼하기까지 합니다. 이어지는 글입니다.
"누가 부모들을 탓할 수 있겠는가. 지난 10여 년 사이에 먹고사는 일이 너무나 가파른 곡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먹고살려고 몸부림치느라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없었다. 처지면 곧장 먹잇감이 되는 이 정글 같은 세상에서 그나마 처지지 않게 하려고 부모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야 했고, 그 학원에 다닐 비용을 대기 위해 더 많이 일해야 했고, 그래서 더더욱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없었다."
물론 '가파른 곡예'나 '몸부림' 따위를 하지 않으려면, '이 정글 같은 세상'을 거꾸로 살아버리면 되는 것이지만, 누구나 다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대부분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사정을, 그 밝은 눈으로 헤집어 보고 적은 글입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졸업식 날, 팬티를 입고 거리를 질주하는 이 아이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이 사회를 향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이들이 지금 지난 10여 년간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 질문에 이제 우리가 답해야 할 때다."
아이들 팬티 뒤풀이 알몸 뒤풀이를 듣고 보면서 그냥 대책 없이 '저 아이들도 나중에는 잘 될 거야', 이렇게만 여기고, 까닭은 '생각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저를 부끄럽게 만들고 눈물 짓게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이계삼은, 이번까지 쳐서, 벌써 저를 두 번이나 울게 만든, '아주 나쁜' 사람이네요. 하하. 2009년 11월 그이가 쓴 책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을 읽다가 살짝 울었습지요. (관련 글 : 내가 소개할 책을 고르는 몇 가지 기준 http://2kim.idomin.com/1276)
한 번 조금만 가져와 보겠습니다. 바로 이 대목입니다.
"(뇌병변 1급 장애인) 박상호씨 부부와 그의 친구들이 장애인 정책 8대 요구안을 내걸고 밀양시청 청사 앞에서 농성 채비를 차렸을 때, ……그는 다시 시청으로 들어가기 위해 휠체어로 바리케이드를 수도 없이 들이받았다.
그는 결국 휠체어를 팽개치고, 막아선 공무원들을 뿌리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절규를 하면서, 바리케이드를 넘었다. 100m는 족히 됨직한 시청 청사 앞마당을 그는 오직 그의 두 팔로 기어서 청사 앞으로 왔다. 기어오면서 그는 울고 있었다. 눈물이 그의 일그러진 얼굴 위로 줄줄 흘러내렸다."
아마 이계삼도 이렇게 쓰면서 울었을 것 같습니다. 쓰던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서 담배 하나 피웠을지도 모릅니다. 저 같은 무심한 인간조차 눈물을 떨어뜨렸을 정도니까요. 이어집니다.
"그날 나는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박상호씨 부부의 삶과 투쟁을 이야기해 주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며칠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박상호씨가 그날 시청 앞마당을 기어오던 모습이 떠올라 감정이 허물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감정이 허물어질 것 같아, 이야기해 주리라 다짐하고도 이야기해 주지 못하는' 마음가짐. 박상호보다 더 박상호를 깊이 느껴버려 말문을 열 수 없을 정도인 마음가짐. 이런 이계삼의 마음가짐이 울려오는 순간, 울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습니다.
김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