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윤기암, 마지막 변론하십시오.”
뿔테 안경을 쓴 판사가 말했다. 관중석을 힐끔 보았다. 안설희의 양친, 그 중 아버지는 안설희의 영정사진을 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설희의 남자친구인 이성민과 함께 나의 재판을 경청하고 있었다. 바깥 자리에는 나의 어머니가 긴장된,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경직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형법에서 가장 명심해야할 점은 열 명의 범죄자를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자를 만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날 설희의 목을 꺾은 건 명백한 사실이지만 제가 그녀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저는 그녀에게 살해당했을 것입니다. 저는 부당한 살인을 당하지 않기 위해 정당한 살인을 저지른 것이며, 안설희의 양친과 친인들은 저를 원망할 수 있겠지만 설희는 정당하고 합법적인 이유로 살해당한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10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 다시 안설희의 양친을 힐끗 봤다. 당장이라도 나를 죽일 듯한 얼굴로 이를 악물며 노려보는 설희의 아버지가 인상적이었다. 정적이 끝난 후 판사가 입을 열었다.
“판결합니다. 형법에서 정당방위, 즉 부당한 피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벌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있습니다. 살인 피해자 안설희는 집단적으로 피고인에게 강도를 시도하려 했던 점, 안설희와 그녀의 동료들이 쇠파이프를 흉기로 사용한 것에 반해 피고인 윤기암은 흉기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는 점, 피고인이 머리와 복부 등에 치명상을 입었다는 것에 반해 안설희는 목의 상처 외엔 외상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피고인 윤기암의 강도와 살인에 대한 정당방위를 인정. 피고인 윤기암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재판장에 희비가 갈렸다. 재판장까지 와준 희연은 양손을 얼굴에 쥐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 둔탁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영정사진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정당방위라고 봐주는 게 어딨어요?, 사람이 죽었는데!”
“진정하시죠, 설희 아버님. 안설희는 합법적으로 살해당한 게 맞습니다.”
어머니가 웃으면서 말했다. 설희의 아버지가 달려들었고 어머니 옆에 있던 어머니의 남자친구, 그러니까 예비 새아빠가 그를 말려들었다. 설희의 아버지는 보안관에 의해 제지당했고 나는 가족들과 함께 유유히 재판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