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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으.......”
몸이 아프다 오늘 비 온다는 말은 딱히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키며 창문을 열었다.
-짹짹짹
아무렇지 않은 맑은 하늘, 새벽 공기에 그에 맞게 새들이 지저기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뭐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총 8군데의 수술로 인해 이제 겨우 28살임에도 날만 궂으면 웬만한 기상예보보다 잘 맞추는 몸인데.......
“그냥 잠을 잘못 잤나?”
자리에 앉아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으로 기상예보를 보지만 여전히 이번 주 기상예보는 맑음이다.
“모르겠다~ 으아~~~”
한껏 기지개를 피고는 자리에 일어나 나는 오늘도 다시 출근 준비를 한다.
-띵
항상 들리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열리는 엘리베이터 안, 고개를 들자 우리 회사 사원 증을 단 사람들이 한번 문 쪽을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나도 그 누군가에 하는지 모를 꾸벅이는 인사를 하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항상 반복되는 일상, 출근, 업무, 퇴근, 저녁 겸 술 한잔, 그리고 다시 내일의 ㅈ같음을 생각하며 다시 잠에 드는 ㅈ같은 일상. 분명....... 처음엔 안 그랬던 같은데, 하루가 항상 다르고, 주말을 기다리며, 열심이었던 거 같은데....... 이제는 모르겠다.
-띵 9층입니다
기계음이 섞인 엘리베이터의 음성이 나오자 멍하던 생각을 접고 내려 사람들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섰다. 책상 위 가득한 서류와 도면들, 프로젝트 하나 끝날 때마다 정리했는데, 이제는 매일 추가 되서 깨끗한 책상을 본적이 없는 거 같다.
“좆같다. 시발”
버릇처럼 나오는 나의 말에 주변에 직원들이 한번 슥 보고는 다시 자신들에 일에 빠져든다.
“왔냐?”
누군가 어깨에 손을 얹고 뒤를 돌아 옆으로 앉았다.
“오셨어요?”
나와는 동갑이지만 부서에서는 이미 5년차 담당 업무에는 가장 선배인 최대리였다.
“부산이랑 대전은 이제 마무리 된 거야?”
오자마자 바로 시작되는 업무.
“부산은 수현대리가 어제 결제 받았고요, 대전은 이번 주 금요일에 마무리될 거 같습니다.”
나의 말에 컴퓨터 메신저 로그인을 마친 그는 마이를 벗어두고는 담배를 들고 다시 일어났다.
“가자”
그 말에 나도 내 가방에 들어있는 담배를 들고 말없이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밖에 나오니 이미 먼저 나와 있는 다른 선배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곤 담배를 하나 물었다.
“야, 너는 오늘 왜 그렇게 울상이야? 어디 안 좋아?”
부서에 팀장을 담당하는 김과장의 말에 다시 한 번 몸을 풀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날도 맑은데 몸이 계속 아프네요.”
“비 오는 거 아니야?”
기상예보도 틀린 날씨도 맞추는 나인지라 그리 말하곤 하늘을 보는 김과장에게 고개를 흔들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요 잠을 잘 못 잤나 봐요.”
내 말을 끝으로 모두 담배만 조용히 피던 우리는 다시 마스크를 올리고는 사무실로 올라갔다.
-띡띡띠리릭
문을 열고 들어서 집에 왔다. 분명 오늘은 그렇게 바쁜 일도 한 것도 별로 없는데 몸이 아프다.
‘진짜 뭐 문제 있나?’
샤워를 마치고 나와 냉장고에 캔 맥주를 먹는데 왜 이렇게 속이 허한지....... 결국엔 라면 하나를 끓여 먹고는 다시 침대에 누었다.
‘오늘은 푹 자면, 내일은 괜찮겠지 뭐’
꿈을 꿨다.
-투둑, 투두둑, 투투투투
소리가 너무 커서 뭔가 싶어 창문을 여니 비가 온다. 비가 너무도 많이 내려 밖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
‘아....... 회사 출근해야 하는데’
창문을 닫으려는데 고장이 났는지 닫히지가 않아 억지고 당기다 결국 문이 밖으로 떨어져버렸다.
-쏴!!!!
이제는 비 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비가 안으로 들어선다.
“아! 씨발! 진짜!”
욕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데 풀리지가 않는다. 내 욕지걸이보다 밖에 비 소리가 더 커서 그냥 묻혀 버린다.
시간을 보려 핸드폰을 보니 알람표시가 뜨며 알람이 울린다.
-띠디딕! 띠디딕! 띠디딕!
“어?”
분명 알았다. 처음엔 꿈이라는 걸 알았는데, 어느 순간 진짜라고 생각해버렸다.
“윽”
몸이 아프다.
버릇처럼 창을 보니 역시나 멀쩡한 창과 밖에는 햇살 가득하게 맑은 날을 보여줄 뿐이었다.
아침부터 몸이 너무 좋지 않아 병원을 갔는데 딱히 문제는 없다며 스트레스 이야기만 듣고 왔다.
“씨발 누가 모르나, 스트레스 안 받는 직장 있으면 소개나 해주던가.”
중얼거리며 담배를 하나 문 나는 하늘을 보았다.
“시발, 좆나게도 푸르네.”
왜 그랬을까. 회사도 가지 않고 나는 지금 한강변을 따라 그저 걷고 있을 뿐이다.
-징~ 징~
“그만 좀 징징대 시발”
조용히 중얼거리며 다시 핸드폰을 껐다. 부재중 60통. 내가 그래도 회사에 좀 필요한 건가 하는 쓸 때 없는 생각을 하고는 다리 난간에 기대며 물을 봐라봤다. 탁하다. 어릴 때 내가 좋아하던 그 물은 푸르디푸르렀던 거 같은데. 검은색? 파도가 칠 때면 갈색에 가까운 물색을 보며 오히려 기분이 더 좋지 않다.
“하.......”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초중고 개근, 대학교를 다니던 때도 한 번도 결석은커녕 지각조차 한 적도 없었다. 남들 다한다는 반차도 나는 왜 그렇게 불편한지 열이 나건 병이 나건 억지로 기어 나가 하루를 마쳤었다.
‘이게 맞는 건가?’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보다 운이 좋아 빠르게 취직하고, 영업점부터 본사까지 차례차례 잘도 진급해왔는데....... 뭐가 문제일까?
-징~
짧은 진동, 최대리의 카톡.
-무슨일 있는 거야? 보면 연락주고 노원 지점.......
길이가 길어 다는 보이지 않지만 일 얘기다 또
‘노원에 뭐 한다고 했더라?’
“하!”
나도 모르게 기가 찬다. 다 모르겠다고 던지고 나와 놓고 일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욱씬
몸이 아프다. 시발 스트레스 탓인가? 고개를 드는데 갑자기 시야가 돈다.
‘어?’
순간 주변을 보니 공중이고 내 위에 난간이 있다.
‘뭐지?’
잠깐에 생각과 함께 이게 말이 되? 라는 생각 중에 차갑고 더러운, 그리고 그 짙은 강물에 나는 빠졌다.
대학을 다니던 때, 래프팅 가이드로 5년간 일을 해서 일반 수영은 물론 급류 수영조차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 나였다. 그런데 몸이 움직이지 않고 그저 가라앉을 뿐이다.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으면 물에 들어가 있는 걸 좋아하던 나였는데....... 잠수가 내 특기였는데.......
-꼬륵
호흡이 없다. 무섭다.
‘살려줘. 시발.’
괴롭다. 참는 건 이미 넘어섰고, 차가운 물들이 목을 타고 들어온다. 몸이 경직되었는데 근육이 소리를 지르며 아팠지만 정신조차 들지 않는다.
‘죽기 싫어’
하지만 몸은 계속해서 가라앉고 결국 정신을 잃었다.
“쿨럭! 우...우웩!”
물이 뱉어진다. 계속해서 물이 토해지고 잠깐씩 공기가 들어오나 바로 다시 물을 토하느라 숨을 쉴 수가 없다.
“으허...... 헙! 웩!!”
몇 번을 토한 건지, 눈에 핏줄이 터진 듯 시야가 뿌옇다.
조금씩 호흡을 찾아가고 꾹 감고 있던 눈을 뜨니 숲이다. 주변엔 미스트처럼 기분 나쁜 비가 내리고 있고 나는 홀딱 젖은 정장을 입고 그냥 숲 중앙에 앉아 있다.
한 30분은 그냥 앉아 있었던 거 같다. 살려고 발버둥을 친 탓인지 온몸이 욱신거린다. 주변을 아무리 봐도 그냥 숲이고 여기가 어딘지조차 모르겠다. 핸드폰은 다행히 방수인지라 작동은 되는데 뭐가 문제가 있는지 수신이 안 잡힌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에 좋지 않은 몸이지만 억지로 일으켜 세우며 주변을 다시 살폈다.
‘도대체 뭐지?’
한강에 빠졌는데 지금 보이는 곳은 숲이다. 아무리 봐도 근처에 물은 보이지도 않는다. 아니 이 기분 나쁜 비는 계속 오고 있지만 강은커녕, 시내조차 보이지 않았다. 물이 흐르는 곳을 따라가면 보통 큰 줄기가 나오고 시야라도 보일까 싶어 다시 쓰러져 있던 곳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돌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핸드폰도 위성이 잡히긴 하는데 계속 서울을 기점으로 제대로 잡지 못하고 화면만 돌린 뿐이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속이 어지러워 핸드폰을 끄고 주변을 살폈다. 가장 높은 곳. 그나마 주변에 높은 언덕이 보여 그곳으로 향했다. 하늘은 계속 오는 비 덕분인지 그냥 어둡기 만해 보이지도 않는다. 얼마나 걸었을까. 젖은 옷이 더욱 무거워 빠르게 지쳐가는 몸을 억지로 이끌고 올라간 동산. 주변에 건물이 없다. 머리가 안 돌아간다. 여기는 도대체 어딘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내가 알아낸 것은 내가 있는 이곳은 원래 내가 알던 곳이 아닌 거 같다는 것. 어두운 상태로 계속해서 밤도 낮도 없었고, 항상 비가 내리고 있다. 일주일이 지났음을 알 수 있던 것은 핸드폰 덕분이었는데, 이곳에 어느 공간에 가면 무선충전기처럼 핸드폰이 충전이 된다는 것. 그 덕분에 나는 시간을 계속 알 수 있었다. 미친 듯이 배가 고팠지만 딱히 먹을 게 없어 주변 풀을 뜯어 먹었다. 그렇게 많은 나무들이 있었는데 열매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 저 기분 더러운 비가 계속 내려줘서 물은 걱정은 없다. 도대체 여긴 어디고 어떻게 온 거란 말인가. 어릴 적부터 보던 판타지 소설처럼 그저 물에 빠져 이계에 온 것이라면 적어도 영웅이나 능력은 아니라도 사람이라도 보여야 할 텐데, 생물 자체를 보지 못했다. 비가 계속 내리는 이곳 때문에 마이는 이미 버렸고, 혹시 몰라 옷감과 주머니 부분만 뜯어서 가지고 다녔다. 생각나는 게 없어 오늘부터는 그냥 계속 걸으려 한다. 한 방향으로 걷다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드디어 길을 발견했다. 풀이 꺾여있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무언가 계속 지나가야 생기는 게 길이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이주일이 지났을 때 알았다. 내가 크게 원으로 돌고 있다는 것을....... 내가 버린 옷감이 중간에 있었다. 어둡고 똑같은 풀숲을 나는 병신같이 계속 크게 돌고 있으며 내 스스로 길을 만든 것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냥 죽고 싶은데 높은 나무가 없어 목을 멜 수도 없다. 시발.
하루정도 멍청히 앉아 있다 잠이 깨니 다시 걷기로 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게 다였다. 이제는 생겨버린 길을 보니 알겠다. 앞에 작은 장애물을 피하다 보니 한쪽으로 계속 꺾여서 걸었다는 것을. 그래서 멀리서 보고 일부러 반대쪽으로 살짝 틀어서 걷기로 했다. 뭐라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걸었다.
-쏴!
어느 순간부터 비가 쌔지고 있다. 강수량이 많은 곳이라 풀이 더 자라서 내가 피해 돌게 되었던 건가. 비가 약한 쪽으로 가면 역시나 내가 만들어둔 길이 나오고 장애물을 헤치고 들어갈수록 비가 강해진다. 머릿속으로 계속 이런 곳에 사람이 지낼까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미 지친 상태로 걷고만 있다. 무언가 바꿀 생각이 들지 않아 걷고 걸었다. 그러다 드디어 무언가를 발견했다. 동굴이 있고 입구에 잡풀이나 쓰레기 같은 것들을 버린 흔적. 반가움도 컸지만, 반대로 무서움도 컸다. 그곳엔 무엇이 있을지 모르니까.
일부러 비를 맞아가며 이틀을 지켜봤지만 아무것도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않았다. 혹시 이미 떠난 자리가 아닐까를 생각하다가도 무서움이 앞서 들어가진 못했다. 하지만 이젠 나도 너무 지쳤다. 차라리 나를 죽여 줄 무언가라도 있길 바라며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동굴로 들어서니 오히려 약간은 따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는 죽느니 마느니 해놓고 겁이 나서 핸드폰 불빛도 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들어갔을 때 불빛이 보였다. 따듯한 공기는 저 불이었던 거 같다. 그곳에는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 사람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불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불이 많이 밝진 않아 얼굴이 보이지는 않아 자고 있는 것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구세요.......”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든 얼굴이 어쩐지 낯이 익은 그 사람을 보며 나는 천천히 걸어갔다.
“누... 누구야.”
주변에 있던 돌을 들며 쳐다보는 그 여자의 모습에 나는 가던 발을 멈춰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연아?”
어릴 적 내 첫사랑이자 4년을 만나 내 모든 것을 던졌던 그녀. 사귄지 3년이 되었을 때 바람이 나서 한번 헤어졌다가 다시 돌아왔지만, 이미 의심 병이 도진 나와 그저 상처만을 가진 체 1년을 더 끌다가 결국 헤어졌던 그녀, 그런데 사실, 그 당시 의심도 헤어지고서는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난 잊지 못했던 그녀가 왜 이곳에 있는 건지.......
나를 알아본 그녀도 처음엔 놀란 듯 보였으나 내 행색을 보고는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결국 궁금했던 것인지 입을 열었다.
“너... 넌 여기가 어딘지 알아?”
잠시 쳐다 보던 나도 결국 고개를 숙이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 너도 모르나 보네, 넌 어떻게 온 거야?”
나는 오랜 시간을 대화를 나눴지만 서로 기운도 체력도 없는 탓인지 많은 말은 할 수 없었다. 단지 놀라운 것은 그녀는 나와 헤어졌던 2년 전 그때 이곳에 오게 되었고, 지금까지 사람은 나 말고는 본적이 없다는 말에 오히려 더욱 암울해졌다.
그 뒤로 계속 얘기를 한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은 이곳에 음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열매도 내가 찾지 못했을 뿐 베리류에 열매와 두더지와 같은 설치류도 있었다. 사냥이나 나무를 타지 못했기에 먹을 것을 더 먹지 못했던 그녀였지만, 다행인지 유에스비 라이터와 이곳에 있는 이끼를 통해 불을 계속 붙여서 살아왔다고 한다. 사람을 오랜만에 봤기 때문인지 그녀는 나에게 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나도 그렇게도 미웠던 그녀였지만 그녀를 위해 사냥도 열매도 더욱 더 많이 모아왔다. 그녀에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배부르게 먹는 음식이었을 것이고, 나는 음식다운 음식을 먹었다. 그렇게 둘은 끌어안고 의지하며 누었고, 그녀와 몸을 나눴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다음날 비가 그쳤다.
“어디 가려고?”
그녀의 걱정스러운 말에 나는 훈제로 만든 쥐 고기와 열매를 바지로 만든 가방에 담으며 말을 이었다.
“너도 2년 동안 처음 봤다며? 비가 그치는 게 언제일지도 모르고 그동안에 뭐라도 더 찾아봐야지.”
그러자 갑자기 나를 끌어 안아버리는 그녀에 내가 멈추고 쳐다보았으나 그녀는 그저 몸을 떨며 나를 안고만 있었다. 사람이 없는 곳에 계속 있어서 그랬을까.
“걱정 마 너 안 버려, 같이 나가서 찾아보자.”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계속 조용히 울뿐이었다. 안쓰럽다. 그 생각에 나도 모르게 그녀를 같이 안았고, 그녀는 내 입술을 덮쳤다.
어디도 가지 못하고 있는지 일주일. 이제는 안 된다 생각이 들어 그녀를 두고 나왔다. 그런데 그 순간 다시 내리는 비. 멍청했다.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지만. 이미 그녀를 다시 좋아하게 된 나는 화도 내지 못하고 동굴로 돌아왔다. 그렇게 다시 한 달이 지낸 뒤, 비가 그쳤다.
이번엔 그녀의 어떤 방해에도 짐을 챙겨 나왔다. 그녀가 소리를 지르며 방해했지만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었다. 그녀는 못가겠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두고 나는 매일 오후에는 돌아온다는 약속을 하고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깨달았다. 그녀와 멀어지고 그녀가 불안해하면, 비가 온다.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그녀는 듣지 않았다. 나도 짜증이 났지만 그녀가 울게 되면 비가 더욱 많이 내린다. 그녀를 어떻게든 달래고 안아주었다. 그녀를 안게 되면 비가 멈춘다. 그러다 그녀와 나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
결국 어디도 가지 못하고 나는 동굴에서 지냈다. 얼마나 지난 건지 모르겠다. 그녀의 배는 만삭이 되었고 이제는 나도 이 삶에 만족을 하게 된 거 같았다. 그동안 왜 그랬는지 모르게 잊었던 핸드폰을 보기 전까지. 핸드폰에 날짜가 그녀가 임신을 하고 2년이 지나있었다. 체감 상으로도 말이 되지 않았고, 임신을 2년이나 할 수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그래서 그냥 밖으로 나왔다. 한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리자 비가 내린다. 더욱 거세게. 그렇게 걷던 중 뒤에서 그녀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녀의 배는 임신 전의 가라앉은 배가 되어 있었다.
“너... 너 뭐야?”
나의 물음에 그녀는 슬픈 표정으로 그저 나에게 팔을 뻗을 뿐이었다. 아주 옛날 우리가 싸우고 나면 그녀가 하던 화해방법, 하지만 난 가지 않았다. 그녀를 보며 더 거세지는 빗속으로 들어갈 뿐. 그리고 결국 뒤를 돌아 빠르게 뛰어갔다.
얼마나 달렸을까? 비가 아니라 물속을 달리는 것 같다. 그렇게 달리던 중 갑자기 몸이 뜬다. 정말 물속에 있는 느낌. 그리고 그때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고통이 떠오르며 몸에 힘이 들어간다. 나도 모르게 물에서 벗어나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나를 안아주는 그녀가 있었다.
“가지마. 무섭잖아. 힘들잖아. 나랑 있자.”
미친 몸이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에 반응을 한다. 그러나 난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랑 갈래? 마지막 권유야.”
헤어지던 날, 내가 물었던 그 말 그대로. 그러나 그녀는 그 날처럼 그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다시 그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점점 떠오르며 막히는 숨과 경직되는 몸을 느끼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녀가 나를 보고 있었고, 다시 몸을 틀면 그곳으로 갈수 있단 생각이 더 들었지만, 포기 하지 않았다. 굳은 몸을 움직여 물 위로 계속 오르기 시작했고 결국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나는 방향도 모른 채 움직이고 있었다. 괜히 들어왔단 생각이 들고 있을 때쯤, 무언가 소리가 들려온다.
-지잉
아주 오래전 들었던 그 소리
-지잉 지잉 지잉
그 소리와 함께 난 물 밖으로 나와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앞에는 한강 산책로 그곳에서 나는 숨을 뱉으며 기절했다.
“정신이 드세요?”
사람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지만 눈이 떠지지 않았다. 머리가 다 젖어있는 느낌.
‘물 밖으로 나온 건가? 살았나?’
“눈 뜨셔도 됩니다. 치료 끝나셨어요.”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난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갔다. 일반 병원이 아니라 정신병원에. 그리고 오랜 상담 끝에 최면치료를 했고, 그저 내 안을 보고 오기로 했었다. 눈을 뜨고 핸드폰을 보니 15분 정도 지나있었다.
“비가 오면 몸이 아프시다하더니 마음에 비가 계속 와서 아프셨나봐요.”
의사의 말에 멍한 표정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접수대에 섰다.
“마음에 비가 오는 건 어쩌냐..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