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의 부모님께

포근한 이슬비가 내리는 겨울밤입니다. 내심 기대했던 함박눈이 아니어서 실망했지만 가로등에 고깔 모처럼 빛나는 이슬비의 모습은 마치 한겨울의 크리스마스트리 같이 보여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작년 이맘때쯤 ㅇㅇ와 교제를 시작하고 전주는 잠시 들렀을 때 날씨도 이처럼 포근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당시 ㅇㅇ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런 올바르고 아름다운 사람을 길러 주신 분이 어떤 분인지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해 아쉬웠던 기억도 납니다.

한사람과 이렇게 오래도록 깊은 이야기와 경험을 나눈 적이 없기에 그 사람의 부모님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저뿐만이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ㅇㅇ의 부모님 또한 자신의 사랑하는 따님이 어떤 사람과 교제 중인지, 가족은 어떤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녀석인지, 또 딸의 교제 상대에게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 등등 깊은 고민을 하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평소에 따님과의 전화통화 건너에서 들리는 소음 같은 저의 목소리와 몇몇 과장된 사진만으로는 저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충분히 해소해 드리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이 채 해소되기 전, 저와 ㅇㅇ가 단둘이 일본여행을 간다는 이야기가 두 분께 얼마나 충격이었을지. 저로서는 감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ㅇㅇ에게 애정을 가지고 배려하는 만큼 두 분에 대한 배려 또한 하여야 했는데 누군가와 이토록 두텁게 교제에 임하는 것이 처음인지라 미쳐 경솔하게 행동하게 된 점 무척 반성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ㅇㅇ를 아끼고 사랑하시는 두 분께 어떤 말을 해야 저의 행동이 용서될지 참으로 막막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랑하는 따님인 ㅇㅇ와 함께 많은 것들을 해나가고 싶은 마음 또한 제 한쪽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이 두 분께 얼마나 우려스러운지 완전히 이해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래서 반대로 ㅇㅇ와 저는 편지에 저희의 생각을 적어 보내드리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비록 부모님의 깊은 생각에는 미쳐 따라 가지 못하겠지만 부모님의 넙은 마음으로 자식을 이해해주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을 담아 이 편지를 씁니다.

여행이 삶과 인생관을 얼마나 윤택하게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분명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여행을 언제 누구와 함께하는지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여행을 가는 목적은 단순히 놀기 위해서라기보다 이러한 경험을 익히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험은 ㅇㅇ뿐만 아니라 저 또한 더욱 성숙해지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지난 제주도 여행 때 저는 다양한 경험을 ㅇㅇ와 함께 하였고 다투기도 하고 서로의 허물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은 ㅇㅇ와 저를 보다 성숙하게 하였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ㅇㅇ가 참으로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일을 하기 전 반드시 후에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고,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고,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자신의 허물과 마주할 줄 아는 강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본 여행은 이런 현명한 따님이 반 년 전부터 심사숙고 끝에 결정한 여행입니다. 그런 따님의 결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시면 저는 더없이 기쁠 것입니다.

저희는 이번 여행이 분명 유익한 경험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만약 두 분께서 이 여행에 반대하신다면 저희는 기꺼이 부모님의 의견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2015년 01월 26일

ㅁㅁㅁ 올림

조금 마음이 전해지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