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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
12. 악마의 음모(7)
인원 동원이 여의치 않으니 며칠이 지나도록 예비검속은 별 진전이 없었다. 청년단이 빠져 버리는 바람에 일이 되지를 않았다. 박충금은 너무나 안타까웠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투쟁경력 하나를 추가할 수가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체면상 남들 먼저 도망칠 수는 없는지라 잘못 어물거리다간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 있었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멋지게 일을 처리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었다. 하야시를 불렀다. 조선의 주먹잡이들에 비해서 숫자부터가 훨씬 적었지만 그래도 잘만 다좆치면 생색을 낼 만큼은 성과가 있을 것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쓰다 의원님.”
재깍 달려온 하야시는 박가에게 허리를 반으로 접었다. 하야시로서는 조선인으로서 제일 두려운 상대가 박충금이었다. 조선의 주먹잡이들도 두렵긴 했지만 그들은 싸우는 데까지 싸워보고 정 안 되면 왜국으로 후퇴를 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박가는 달랐다. 왜국의 깡패세계에서도 영향력이 막강해서 비위를 거슬렀다가는 왜국으로 돌아가서도 다리를 뻗지 못할 판이었다.
머리를 조아리며 박가의 이야기를 들은 하야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그런데 쓰다 의원님, 저희들은 내지로 돌아가려고 애들에게 다 준비시켜놨는데요.”
사실이었다. 하야시는 내지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전황으로 볼 때 왜국이 승리하기는 애초에 글러먹었고 끝까지 조선에 남아 있다가 대본영이 덜컥 항복이라도 해버리면 맞아죽기 십상인 만큼 남들보다 남들보다 한 발 먼저 빠져나가는 게 좋다는 것이 하야시의 약삭빠른 판단이었다. 그런 중에 박가가 부른 것이었다.
“이런 나쁜 새끼들! 너희놈들은 황국신민들이 아닌가? 천황폐하의 은덕을 그렇게 많이 입고도 정작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울 때 저희놈들만 살겠다고? 이런 찢어죽일 새끼들!”
박가가 고함을 지르며 길길이 날뛰었다. 금세라도 주먹을 휘두를 기세였다. 하야시는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총독부에서도 알면 좋아하지 않을 일이었다. 국민이면 누구나 국가의 혜택을 입게 마련이고, 깡패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오히려 하야시 일당은 누구보다 국가의 혜택을 많이 받은 것이 사실이었다. 총독부에서 조선내 왜인들의 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끌어주고 받쳐주지 않았다면 조선에서 이만큼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래도 조선의 주먹들과 붙기만 하면 번번이 깨지는 판이었다. 그러나 하야시는 속으로 웃고 있었다.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우리 일본이 산다, 이놈아. 박가도 그렇지만 조선의 부왜분자들을 보면 그자들이 조센징들인지 진짜 왜인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이건 명령이다. 내지로 건너가는 준비는 당장 중단하라. 오늘부터 당장 예비검속을 실행에 옮겨라. 다시 한번 말하겠다. 이건 명령이다. 지금은 전시다. 우리 대일본제국 국민들은 모두 성전을 수행하는 군인이다. 나, 쓰다 이치로는 지금부터 네놈들의 직속상관이다. 전장에서 명령을 거역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천황폐하의 이름으로 내 손으로 네놈들을 즉결처분하겠다. 명심하라!”
박가는 권총을 꺼내들고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듯이 하야시를 겨누고 거품을 물었다. 하야시의 얼굴이 노래졌다.
“예예. 알, 알겠습니다. 지, 지금 당장 착, 착수하겠습니다.”
그러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말이 문제였다. 왜어만을 상용하도록 그렇게 닦달했건만 대다수의 조선인들은 아직도 왜어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일부러 안 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하야시 일당이 조선말을 잘 모른다는 것이 더 문제였다. 통역까지 달고 다녀야 되니 자연히 사람 하나를 찾는데도 시끌벅적할 수밖에 없었다. 은밀하게 해야 될 일을 꽹과리를 치고 다니는 격이었다. 그러니 잘 될 리가 없었다. 박가도 전혀 계산에 넣지 못한 것이었다. 거기다가 주요인사들은 이미 피신을 해버린 뒤였으니 일은 더 안 될 수 밖에 없었다. 예비검속은 그렇게 흐지부지되고 있었다.
홍군에 소속됐던 병력은 류청의 제안에 따라 ‘광복군 3군단’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인원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임시정부의 주도로 창설한 기존의 광복군을 '1군단'이라 하고, 국내의 병력을 '2군단', 자신이 이끄는 병력을 '3군단'으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류청의 겸손이 배인 '3군단'이었다. 2월 말에 연안에서 출발한 3군단은 처음부터 유격전에 맞게 부대를 편성한 상태였다. 소규모로 흩어지기도 하고 모여서 제법 큰 규모를 만들기도 하면서 진격을 계속했다. 중간중간 왜군과 전투를 벌여 확보한 보급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며 진격하느라 그들의 주력이 단둥 근처에 당도한 것은 7월 초순이었다. 단둥에는 미얀마 전선에서 이동한 광복군 1군단 3백여 명이 은신하고 있었다. 3군단의 절반 정도 병력은 어디쯤 오고 있는지 파악도 되지 않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벌써 2백여 명의 병력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며칠 후, 탈진했던 병사들이 몸을 추스르자 류청은 1군단과 함께 부대를 재편성했다. 1천여 명으로 10개 대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압록강 도강 작전을 시작했다. 밤을 택해 2개 대대가 기습전을 펴면서 압록강을 끼고 신우평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왜군 국경수비대는 전병력을 동원해 맹렬하게 추격했다. 그 틈에 류청이 지휘하는 8백여 명의 광복군은 압록강을 건너 경성으로 향했다. 왜군을 유인했던 2개 대대는 뒤에 올 3군단 병력과 함께 국경에서 계속 유격전을 벌여 최대한 많은 왜군들을 압록강에 붙잡아 놓는다는 계획이었다.
7월 중순, 마동주는 소련군이 독일군의 무장해제를 완료하고 이동을 시작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군사위원회의 소집을 요청했다.
“소련군은 이달 10일 경부터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왜군들을 공격할 만큼의 소련군 병력이 접경지역인 연해주에 집결하는 데는 약 한 달 정도가 걸릴 것입니다. 집결이 끝나면 선전포고를 하고 바로 공격을 시작하겠지요."
“5월 초에 독일이 항복했을 때 미군이 주축인 연합군이 태평양까지 이동하는 데 두 달이 걸릴 것이고, 이후 왜놈들은 한 달을 버티기 힘들 거라고 저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제 시기를 못박아야 됩니다.”
"소련군이 선전포고를 한 다음에 시기를 잡으면 우리가 연락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있어서 너무 늦어지게 됩니다. 왜군은 사기가 바닥이니 별 저항도 못할 것이고 어쩌면 소련군은 개전 하루만에 국경을 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습니다."
마동주와 강성종의 정밀한 분석에 따라 논의를 거듭한 끝에 거사 일시는 8월 13일 03시로 결정되었다. 더욱이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중간에 계획이 바뀌어도 임정과는 연락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중경의 청사를 벗어나면 연락은 두절이었다. 통신 장비를 가지고 이동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만약 그 안에 왜국이 항복을 하더라도 우리의 거사에는 변동이 없소. 하늘도 우리를 도울 거라 믿읍시다. 무슨 일이 있어도 8월 13일 3시부터는 여기 이땅은 확실한 대한민국이오! ”
여운형이 결연하게 선언했다.
전문을 받은 임정도 회의를 했다. 중경에 남아 있던 광복군 특공대 1대는 요인들을 호위하는 것으로 하고, 2대는 강성종의 계획대로 하얼빈으로 출발시켰다.
"이제 후퇴는 없소. 후퇴는 곧 우리 동포들이 다시 노예가 된다는 것이오. 왜놈들은 놓치더라도 부왜분자들은 반드시 발본색원해서 처단해야 되오. 그렇게만 된다면 차후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거사는 성공이오. 하눌님도 반드시 우리 대한민국을 도우실 것이오."
김구 또한 결연했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독립 만세!"
"대한동포 만세!"
임정요인들 모두 목놓아 만세를 부르고 산둥을 향해 출발했다.
국내에서는 전 병력의 전진배치가 시작됐다. 광복군과 건국유격단 도합 5천여 명은 각 공격 목표를 정하고, 거사일 사나흘 전에는 그 지역에 잠입해 청년단・인민위원회와 연계해 작전계획을 최종 점검하도록 했다. 당연히 제일 많은 병력이 경성에 배치됐다. 총독부와 조선군사령부의 신속한 접수가 거사 성공의 열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