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그대에게 드리는 꿈(13-2)
게시물ID : lovestory_956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2
조회수 : 148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09/26 10:33:12
옵션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13. 위기(2)



 혹시, 이놈들이 정말? 깡패새끼들 주제에 독립운동을 한답시고 나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놈들의 조종을 받고?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제일 미심쩍은 놈이 장태식이었다. 그놈은 장호우의 아들이 아닌가. 깡패로 살고는 있어도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제 아비처럼 뒤로는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 아닌가. 머리를 굴릴수록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야시 일당이 아무리 소문나게 설쳤다고 해도 3만으로 잡았던 예비검속  대상자들이 어떻게 며칠 사이에 다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조직적인 연통이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예비검속 대상자 명단에 문제가 있기는 했다. 시간이 없어 오래전과 최근에 작성한 요시찰인 명단을 취합만 한 채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건네준 것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하야시 일당이 겨우 잡아온 몇 놈들이 어떻게 한결같이 현재는 부왜파로 분류될 수 있는 놈들인가 말인다. 그것이 더 수상했다. 잡혀온 그놈들만 빼고는 모두 미리 알고 피신을 해버렸다는 말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여운형이 강도를 당한 것도 자작극일 것 같았다. 깡패놈들이 예비검속에서 발을 빼려고 꾸민 연극일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 이 새끼들이야! 여기까지 생각을 맞춘 박가의 입가에는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 새끼들아, 네놈의 새끼들이 이 천하의 쓰다 이치로를 속이려고? 차라리 공자 앞에서 문자 쓰고, 노자 앞에서 여비타령하고, 예수 앞에서 빵공장을 차려라, 이 새끼들아! 그래봤자 네놈의 새끼들은 아직 피래미야, 이 새끼들아!

 아까부터 남우현은 그런 박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남은 박가의 눈빛에서 무슨 일이라도 꾸미고 말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박가는 어떻게라도 구겨버린 체면을 살리려 할 놈이었다.

 “박가놈이 가만있지 않을 것 같애. 무슨 일을 꾸밀 것이 분명해. 각자 마음의 준비를 하자구.”

 “박가 그 새끼가 뭐를 어쩐단 말이오?”

 남우현의 말에 장태식이 불퉁스럽게 반문했다. 스스로에게 화가 난 것이었다. 조금만 더 참았어도 됐는데 그놈의 성질이 문제였다. 다른 단원들에게도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원망의 눈빛을 보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두고봐. 우리를 족치려고 들 거야. 그러나 피해서는 안 될 것이야. 그러면 더 의심을 사게 될 테니까.”

 “......”

 “어떤 일이 있어도 입을 열면 안 된다구. 그랬다간 죽어. 왜놈들이 살려 준다고 해도 스스로를 어떻게 용서할 거야? 그러니 무조건 우리는 모르는 걸로 해야 돼. 꼭 명심하라구. 자, 우리 며칠만 더 버티자구!”

 남우현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차라리 고문받다 죽으리라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이건 태식이 때문이 아니야. 그전부터 우리는 의심받을 만했어. 거사 준비 기간이 본의 아니게 너무 길었던 거야. 힘들고 어려워도 태식이 원망하는 사람은 없어야 될 거야. 이번에 우리, 대한 협객의 의리를 제대로 한번 보여주자구. 이 고비를 넘기면 거사는 무조건 성공이니까.”

 그동안 박가와 총독부에 비협조로 일관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그것은 거사를 위해서 당연한 일이었다. 놈들이 시키는 대로 다 하면 누구와 독립을 되찾는단 말인가.

 “내가 우리 전부 끌려갈 거 확신하고 말하는데 이번은 우리가 경찰서 들락거리던 그런 일하고는 달라. 일단 조지고 시작할 거라구. 그래도 절대로 유도신문에 넘어가면 안 돼. 무조건 모르는 거야. 그리고 최대한 덤비라구. 끝까지 대들란 말이야. 그놈들이 약올라서 더 세게 고문하도록 만들란 말이야. 그래야 기절할 행운이라도 잡을 수 있는 거야. 처음부터 고분고분 그놈들이 계획했던 순서대로 당하면 더 힘드는 거야, 명심해!”

 남우현의 예견이 적중한 것을 알게 되는 데는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경성의 청년단 간부 모두가 종로경찰서로 끌려간 것은 다음날 새벽이었다. 그 자리에서 여러가지로 말을 맞춰 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곧바로 지하실로 끌려간 그들은 아무런 질문도 받지 않은 채 기절을 할 때까지 두들겨 맞았다. 맞는 데는 이골이 난 그들이었지만 애원하고 싶었다. 모든 것을 털어놓고서라도 당장의 고통에서 놓여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의 머리속에서는 태극기의 물결이 출렁이고 있었다.

 유도신문이 시작됐다.

 “다들 불었어. 네놈이 말을 안해도 아무 상관은 없어. 하지만 우리는 네놈에게 듣고 싶어. 그래야 네놈을 풀어줄 명분이 서지 않겠어? 다 네놈을 위해서니까 빨리 불어!"

 "불기는 뭘 불라는 거요?"

 "예비검속 작전을 네놈들이 흘렸잖아?”

 “이보시오! 정보가 새나갔다면 하야시가 흘린 걸 거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다른 놈들이 다 불었어. 우리는 단지 네놈 입으로 듣고 싶은 거야.”

 “불기는 뭘 붑니까? 알지도 못하는 일을 어떻게 부냐구요!”

 “이 새끼가, 안 되겠어. 그래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군.”

 갖은 고문이 번갈아가며 이어졌다. 온몸이 찢겨져 나가는 듯한 고통 속에서 그들은 순간순간 마음이 변했다. 불어버릴까? 아니지. 불어버릴까? 아니지. 그들은 필사적으로 삶에 집착했다. 불었다간 왜놈들에게 죽지 않더라도 스스로 죽어야 했다. 협객으로 자부하며 살았는데 그렇게 되면 부끄러워서 어떻게 살겠는가. 이 정도 고통 쯤은 이겨내야 협객의 이름값을 하는 것이라고 이를 악물었다.

 장태식은 자신의 잘못으로 다른 동지들을 고생시킨다는 자책감 때문에 죽고 싶었다. 박가의 주문에 따라 가해지는 고문은 다른 사람들보다 고강도임에도 고통은 오히려 적게 느끼고 있었다. 남우현의 당부가 없었더라도 내가 죽어버리면 이 자식들이 겁을 먹고 고문을 중단하겠지 싶은 생각에 장은 더 강하게 저항했다. 고문하는 자들을 향해 욕도 서슴치 않았다. 악을 쓰면서 가리지 않고 욕을 하다보면 덜 아픈 것도 같았다. 그리고 기회만 되면 고문하는 자들의 얼굴에 침을 뱉았다. 안이 갈가리 찢어진 입에서 나오는 것은 침이 아니라 피였다. 그럴 때마다 장은 까무라칠 때까지 고문을 당했다.

 “아니,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을 잡아다가 패면 어쩌자는 거야, 이 개새들아아!”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덜 차렸구만. 그러니까 불면 될 것 아니야, 이 새끼야! 다른 놈들이 다 불었는데 혼자서 독하게 군다고 될 일이야, 이 새끼야!”

 “뭐를 알아야 불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야, 이 개새들아아!”

 모두들 까무라쳤다가 깨어나기를 수도 없이 되풀이하고 있었다.

 건국연맹에서는 그들의 피체에 비상 회의가 계속됐다. 강성종은 그들을 굳게 믿고 있었지만 극심한 고통은 사람의 의지를 파괴시키는 법이라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연맹 결성 이후 최대의 위기였다. 박가가 사주하고 있는 일인 만큼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란 게 모두의 불안이었다. 만약 그들 중 하나가 발설하는 날에는 거사계획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거사만 그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숱한 사람들이 극심한 고통을 당할 것이고, 그중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었다. 피체된 청년단 간부들을 믿고 모험을 하기에는 위험이 너무 컸다.

 여운형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직 지하로 숨지 않은 동지들도 다 잠행하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냉정을 잃지 않는 마동주의 생각은 달랐다.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선생님이나 이기범, 노운 선생님 같이 예비검속에도 피신하지 않으신 분들이 지금 행방을 감춰보십시오. 그러면 놈들은 정말 의심을 하고 들 것입니다. 지금 상황으로는 그 동지들이 이겨내기를 기원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일리가 있군.”

 한숨을 한번 쉬고 여운형은 강성종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그들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 묻고 있었다. 강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천천히 말했다.

 “한번 믿어 보십시오. 그 동지들은 분명히 이겨낼 것입니다.”

 한껏 힘이 실린 말이었다. 이래도 저래도 가망없는 일이라면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이라도 큰소리를 쳐야 그나마 모두가 안심을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 동지들이 돌아올 때까지 긴장을 풀지 않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