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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13-4)
게시물ID : lovestory_957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0
조회수 : 155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10/10 11: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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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에게 드리는 꿈


    13. 위기(4)



 "38도선 이북에는 그렇게 하면 되고, 38도선 이남에는 계획대로 거사하면 되겠습니다. 김대철 동지의 보고에 따르면 미군은 8월 중으로는 여기에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김경재의 정리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외교위원회는 만일을 대비해서 여러개의 방안을 짜두기로 하고 날이 밝으면 바로 연락책들을 함경도로 보내기로 했다.

 회합이 끝나고 여운형은 구본오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구동지, 우리는 해방이 되면 칩거합시다.”

 “그게 무슨 말이오?”

 “어쨌거나 우리는 부왜파가 아니오? 대한민국에서는, 특히 정부에는 티 한 점 없는 인물들만 있어야 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소이다.”

 “중노릇하는 건 괜찮겠소?”

 여운형의 말뜻을 알아들은 구본오가 빙그레 웃으며 되물었다.

 “아닌게 아니라 나도 앞으로 중노릇이나 해볼까 생각 중이오. 어째 소생에게도 불심이 있는 듯 하오이까, 큰스님?”

 “예끼, 여보슈!”

 구본오는 팔을 들어 여운형의 등을 때리는 시늉을 하며 껄껄 웃었다.

 “나는 사실 임정의 제의를 받고 건국연맹을 구상할 때부터 백의종군을 각오하고 있었소. 구동지나 나나 우리 모두가 죽기를 각오하고 독립투쟁에 나선 동지들이 아니오. 부귀영화를 바라고 했던 일은 아니잖소. 독립만 된다면 범부로 살아간들 어떻소. 뜻했던 바를 이루었으니 말이오. 주석 각하께서 백의종군하시겠다고 한 것도 다 그런 충정이 아니겠소? 그리고 우리가 또 나서 보시오. 인민들이 얼마나 혼란스럽겠소. 22년에 죽은 김윤석의 경우를 생각해보시오. 독립운동한 전력이 거창하니 사회장을 해야 된다느니, 나중에 열렬한 부왜행각을 했으니 무시해야 된다느니 싸우다가 우리 진영의 분열이 시작된 거 아니오. 그때 나는 이 자는 죽어서까지 왜놈들에게 충성을 다하는구나, 생각을 했었소. 그러니 우리처럼 위장으로라도 부왜를 했던 사람들은 알아서 사라지자는 말이오.”

 “아니, 여동지가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소?”

 구본오가 놀리는 어투로 물었다.

 “어허, 이래 봬도 생각이 많은 사람이외다. 동지는 내가 행동부터 하고 보는 사람이라 생각되시오?”

 “그게 그러니까......”

 퉁명을 가장한 여운형의 말투에 구본오는 웃으며 자신도 백의종군하리라 마음먹었다.

 6일 아침에 투하된 '리틀 보이'라 이름 붙은 원자폭탄에 히로시마는 순식간에 폐허가 돼 버렸다. 마침내 미국은 원자탄의 개발을 마치고 실제로 써먹은 것이었다. 곧 ‘미국의 소리’ 방송에서는 미국 대통령 트리탄의 성명이 전파를 타고 세계로 전해졌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폭탄은 전쟁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원자탄이며, 왜국이 항복하지 않으면 계속 투하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왜국의 방송들은 신형폭탄으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고만 보도하고 있었다.

 그 소식은 막 산둥에 도착한 임정 요인들에게도 전해졌다.

 “이러다가 왜놈들이 곧바로 항복해 버리는 것은 아니오?”

 김구가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각하, 어제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투하됐다고 해서 왜놈들이 즉각 항복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당장 원자탄임을 밝혔을 것입니다. 미국의 태도로 봐서 적어도 또 한번의 원자탄 공격이 더 있을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때 가서 왜놈들은 지난번 것도 원자탄이었던 모양이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 항복해야만 하겠다고 나올 것입니다. 그렇게 연합국의 비인도적 처사를 부각시켜 자국민들의 저항으로부터 정권을 지켜내려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며칠은 여유가 있겠다는 근거는 아직 소련이 대왜선전포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저께 국민당 간부로부터 얻은 정보에 따르면 소련군의 일부는 이미 두만강 접경지역까지 진격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소련이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분할신탁통치의 명분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두 나라는 소련이 개입한 상태에서 왜국의 항복을 받으려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아직 며칠의 시간 여유가 있다는 게 저의 판단입니다.”

 “이제 와서는 어쩔 수가 없소. 만에 하나 우리의 거사일이 왜노들의 항복보다 늦다 해도 그 날짜에 강행해야 하오. 국내에서도 그렇게 알고 있지를 않소. 최악의 경우, 부왜파들만 철저히 처단해도 우리 계획이 9할은 성공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소!”

 손광규의 의견에 주먹을 불끈 쥐는 김구였다. 


 8일 오전, 경기경찰부 회의실에서는 긴급 과・서장회의가 열렸다. 경찰부장 오카가 침통한 낯빛을 하고 들어왔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것같소. 지금부터 우리의 임무는 더욱 막중한 것이오. 조센징놈들의 준동을 막고 국민들이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는 일이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이오. 그러나 우리 대일본제국이 패망을 한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오. 우리는 곧 다시 반도로 돌아오게 될테니까 말이오.”

 "......"

 모두 오카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우리 대일본제국이 패망하면 조선은 불행해질 것이오.”

 오카가 조선인 과・서장 몇을 둘러보며 덧붙였다. 조선이 불행해진다. 조선이 불행해진다, 조선이 불행해진다. 도경찰부 고등과장인 전봉득은 몇 번이고 오카의 말을 되뇌어 보았다. 왜국이 패망하면 조선이 불행해지다니. 선뜻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의 뜻을 이해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조선이 불행해진다는 것이 아니라 조선에 있는 부왜분자들이 불행해진다는 뜻이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그동안 해온 악랄한 짓거리들로 인해서 맞아 죽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렇다고 왜국으로 가는 것도 문제가 있었다. 지금 왜국은 오히려 조선보다 식량문제가 더 참담하다고 했다. 거기다가 히로시마에는 원자폭탄이라는 것이 투하돼서 도시전체가 잿더미가 돼 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왜놈들을 따라가봤자 찬밥 신세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저희놈들 먹을 것도 없는 형편에 아무리 조선을 압제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는 하지만 부왜파들에게까지 식량을 베풀 놈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패망한 왜국에 간다는 것은 정승이 죽고 없는 집에 벼슬을 부탁하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제 자신과 같은 부왜분자들은 실 끊어진 가오리연이나 다름없이 돼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부왜파들이 없다면 이 나라는 또 누가 이끌어갈 것인가. 부왜분자들을 빼면 조선에 뭘 좀 아는 인재가 있기나 한가 말이다. 그런 점에서도 조선이 불행해질 거라는 오카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항복하기 전에 살길을 찾아야 했다. 아니, 왜국이 항복하고 나서도 자신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아야 했다. 지금까지는 크게 힘든 일이 없었지만 이제부터는 애로가 많을 것이었다.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도 같았다. 왜국이 항복하면 남쪽에는 미국이, 북쪽에는 소련이 점령하게 된다고 했다. 풍파가 일어날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소련은 자본가들을 가차없이 때려잡겠지만 미국은 공산당도 버젓이 간판을 내거는 자유주의 국가니까 가만 놔둘 것이다. 그러나 팔은 안으로 굽고, 가재는 게편이라고 누구라도 공산당을 때려잡아 주길 기대할 것은 분명했다. 바로 그것이었다. 자신은 남쪽에 남아야 했다. 미군들이 올 때까지만 목숨을 부지하면 다시 자신의 세상은 오게 될 것이었다. 고등계 경력만 20년이 넘었다. 공산주의가 허구임을 입증할 정도의 이론은 갖췄다고 자신하고 있는 터였다. 그러면 된 것이다. 내가 아니면 누가 공산당을 때려잡을 것인가. 전가는 새로이 기운이 솟고 있었다. 빨리 움직여야 했다. 그때까지 목숨을 부지하려면 부왜파들을 규합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공산당을 때려잡는 데도 세력은 필요했다. 혼자서 다 때려잡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카가 다시 불러도 모르는 척하고 전가는 경찰부를 나섰다. 이제는 왜놈들의 지시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이미 허울 밖에 없는 놈들이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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