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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4현에 있었던, 그러나 안타깝게도 멸종된 우리의 닭과 개
게시물ID : history_304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우익승리
추천 : 0
조회수 : 132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03/25 10:37:31

일제와 강단유사사학은 임나4현에 대해 음상사를 통해 임나4현을 경남, 전북, 충남, 경북, 전남, 부산 등 다양한 위치에 비정하는데, 김태식, 『사국시대의 가야사 연구』, 서경문화사, 2014. 180쪽.

강단유사사학은 주로 전남 일원이나 섬진강 유역의 전남 동부지역으로 비정한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 『國史館論叢 第91輯 > 전남지역 고대문화의 성격(최성락) > 3. 전남지역 고대문화의 배경 > 2) 문헌적 배경』

위치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현을 군단위로 보아 4현을 4군 정도의 영역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문은 임나4현을 4군 정도의 크기로 보지 않고 있다. 이들이 근거로 하는 「일본서기」 원문은 다음과 같다.

「일본서기」 계체 6년 冬十二月, 百濟遣使貢調. 別表請任那國上哆唎下哆唎娑陀牟婁, 四縣. 哆唎國守穗積臣押山奏曰, 此四縣, 近連百濟, 遠隔日本. 旦暮易通, 鷄犬難別. 今賜百濟, 合爲同國, 固存之策, 無以過此. 然縱賜合國, 後世猶危. 況爲異埸, 幾年能守. 大伴大連金村, 具得是言, 同謨而奏. 迺以物部大連麁鹿火, 宛宣勅使. 物部大連, 方欲發向難波館, 宣勅於百濟客. 其妻固要曰, 夫住吉大神, 初以海表金銀之國, 高麗百濟新羅任那等, 授記胎中譽田天皇. 故大后息長足姬尊, 與大臣武內宿禰, 每國初置官家, 爲海表之蕃屛, 其來尙矣. 抑有由焉. 縱削賜他, 違本區域. 綿世之刺, 詎離於口. 大連報曰, 敎示合理, 恐背天勅. 其妻切諫云, 稱疾莫宣. 大連依諌. 由是, 改使而宣勅. 付賜物幷制旨, 依表賜任那四縣.

「일본서기」 512년 12월

겨울 12월, 백제가 사신을 보내어 조(調)를 바치고 따로 표를 올려 임나국(任那國)의 상다리(上哆唎), 하다리(下哆唎), 사타(裟陀), 모루(牟婁) 4현을 청하였다. 다리국수인 수적신압산이 아뢰기를, “이 4현은 백제에 근접해 있고, 일본과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백제와 4현은) 아침저녁으로 내왕하기 쉽고 닭과 개도 어느 쪽의 것인지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백제에 주어 같은 나라로 합치게 한다면, 굳게 지키는 대책이 이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나라를 합쳐도 후세에는 오히려 위험할 수 있는데, 하물며 따로 떨어져 있다면 몇 년도 제대도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대반금촌대련(大伴大連金村)도 이 말을 믿고 뜻을 같이하여 상주(上奏)하였다. --- 대련은 그 청에 따라서 사자를 바꾸어 칙을 알렸다. 하사품과 칙명의 뜻을 전하고, 상표에 따라 임나 4현을 주었다.

원문이 ‘(백제와 4현이) 아침 저녁으로 내왕하기 쉽고 닭과 개도 어느 쪽의 것인지 구별하기 어렵다’고 하므로, 백제나 임나4현이나 모두 아주 작은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일본서기」의 이 부분은 닭과 개를 명시하여 열도 마을국가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정당한 해석은 백제 관료인 왜왕(일본서기의 천황)이, 마을 국가들(주로 백제 사람이 열도로 건너 가서 만든 백제국과 가야에서 간 사람들이 만든 임나국)간 관할 조정을 하였다는 것이다. 5세기 말이나 6세기 초 열도에서 고구려를 몰아내고 백제는 열도를 통일하였다. 새 점령지인 나라에 별도의 왜왕을 파견한 백제는 백제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세운 백제마을을 더 신뢰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가야 사람들이 만든 임나마을의 일정 부분을 백제가 관리하게 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나라 주변의 마을국가들에 불과한 나라들이므로 임나 4현은 아침저녁으로 내왕할 정도의 조그마한 지역에 불과하다.

그런데 강단유사사학은 닭과 개를 무시하고, 이 이야기를 임나4현을 한반도의 광대한 지역에 위치시키면서 가공의 야마토왜의 한반도남부에 대한 영향력이 컸다는 자료로 활용한다.

김태식은 “결과적으로 백제가 임나 4현을 빼앗은 것이니, 원래는 그 곳이 임나, 즉 가야의 영역에 속하고 있었다는 셈이 된다. 이 임나 4현의 위치는 섬진강 유역의 전남 지역에 해당하여, 상·하다리는 전남 여수시와 돌산읍, 사타는 전남 순천시, 모루는 전남 광양시 광양읍에 비정된다. 여기서 다리국수란 그 해 4월에 왜에서 이 지역으로 파견했던 사신을 가리킨다.”고 하여 김태식, 위 책, 364쪽.

가야가 순천 광양 여수까지 차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김태식은 개와 닭을 어느 나라의 것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하므로 임나4현이 작은 지역이라고 말하면서도 김태식, 위 책, 364쪽.

광양, 순천, 여수 지역을 임나4현이라 주장한다. 당시에는 순천에서 닭이 지나가면, 그 닭이 광주 닭인지 여수 닭인지 순천 닭인지 하동 닭인지 몰랐다. 그렇게 활동범위가 컸던 우리의 닭과 개가 현재 전해지지 않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나라만의 손실이 아니라 세계적인 손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닭과 개가 있었다는 것을 밝힌 우리 강단유사사학의 위대함에 자부심을 갖는 것으로 안타까움을 대체할 수 있다.

강단유사사학은 닭과 개는 과장법이라고도 하는데, 그렇다 하여도 1현이 1군은 될 수 없으며, 「일본서기」가 일본왕의 하사 지역을 일부러 작게 과장했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점은 「일본서기」로도 강단유사사학의 주장이 소설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상고사 에서 인용]

출처 https://blog.naver.com/bbondd0/22305512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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