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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전반기에 고구려가 중국의 영토를 뺏었다는 낙랑군 교치설은 사기
게시물ID : history_305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우익승리
추천 : 2
조회수 : 115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01/28 20:21:30

 

사기꾼들은 낙랑군이 평양에 있다가 4세기 전반기에 어딘가로 이동했다고 주장한다.

 

사기꾼들은 낙랑군을 평양에 가져다 놓았다가 없애야 하는데, 찾다찾다 찾은 것이 미천왕의 낙랑군 공격기사와 장통의 모용외로의 귀부기사이다. 그런데 장통의 귀부가 더 이른 시기여서 말이 맞지 않는다. 

 

그러자 사기꾼들은 313년을 4세기 전반이라고 하면서 사서의 기록이 정확하지 않은 것처럼 사기를 친다. 

 

그런데 4세기 전반은 고구려가 중국으로부터 영토를 탈취하여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4세기 전반기에는 고구려가 가장 약할 때이다. 고국원왕 때 수도가 파괴되고 미천왕의 시신까지 탈취당한다. 결국 전연과 조공관계를 맺는다. 미천왕 사후 고구려는 전연에게 완전히 처발리고 있는 상황이다. 낙랑군을 고구려가 점령 했다하더라도 전연이 자기들 땅이었다고 바로 뺏어갔을 상황이다. 

 

서진의 수도에서 낙랑군까지의 거리는 전연의 수도보다 훨씬 멀었다. (한나라와 조위도 마찬가지이다. ) 서진은 수도가 낙양이고, 전연은 수도가 용성이다. 용성은 유주로 유주 바로 남쪽에 평주가 있고 낙랑군은 평주 소속의 군이다. 서진이 유지했던 낙랑군을 전연이 유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낙랑군을 고구려가 차지한 것은 광개토대왕이 후연을 멸한 후이다. 고구려는 서진의 유주와 평주, 즉 하북성 중부를 멸망 시까지 보유했다. 낙랑군 평양설은 그냥 개소리이다. 

 

낙랑군은 평양이고, 4세기 전반기에 평양에서 요서로 이동했다는 허위사실을 믿는 사람은 조선총독부의 개돼지에 불과하다. 

조선총독부 소설을 유지하려는 교수들은 일제의 간첩이다.   https://www.youtube.com/shorts/KwP74Ghzq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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