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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태어나 처음으로 미워했던 사람의 장례식에 갑니다.
게시물ID : humorbest_11499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수분크림
추천 : 111
조회수 : 13649회
댓글수 : 4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5/11/11 16:30:11
원본글 작성시간 : 2015/11/04 21:4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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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내일 태어나 처음으로 미워했던 사람의 장례식에 갑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가장 오래 미워했던 사람, 할머니 장례식에 갑니다.

남아선호사상 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을 때, 먼저 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던 사람.

둘째도 딸이라는 소식에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집으로 내려갔다는 사람.

내게는 동전을, 4살 어린 남동생에게는 지폐를 쥐어주던 사람.

내가 정말 많이 미워했다는 것도 모를 사람, 그 분이 돌아가셨답니다.....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꼬장꼬장하기 그지없고, 긴 머리를 늘 정갈하게 비녀로 꽂고 있던,

그 연세에도 본인 치아로 고기를 잘만 드시던 그 슈퍼 할머니가 돌아가셨답니다.

정말 많이 미워해서 돌아가셨다고 하면 아무 느낌이 없을 줄, 아니, 차라리 좋아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늦어 내려가지는 못하고 평소 먹지도 않는 술을 사다가 이러고 있네요...ㅎㅎ

마지막으로 뵌 게 지난 추석이었는데.....

약간 치매끼가 있으시다더니, 기억에서 저를 아예 지우셨나보더군요.

누구냐고 몇 번을 물으시더니, 제 이름을 듣고도 모른다더니...

그런 내 손을 잡고

이제 가야하는데 목숨줄이 질겨서 가지도 못한다고 연거푸 하소연을 하시던.......

거기에 차마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냐고도 못했던 게

마지막이라니......... 

그게 미안해서인지, 정말 진짜, 많이, 오래 미워했던 사람인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왜 울고 있는건지.......ㅎㅎ

평생 보고 싶을 일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왜 이제 와서 보고싶은 걸까요

다시 보게 된다고 해도, 손 잡을 용기도, 용서한다는 말도

그래도 고마웠다는 말도 못할텐데 말이죠..





할머니, 내가 많이 미워했고, 싫어했고

빨리 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게 아니었나봐요

미워해서 미안했어요. 

조심해서 가세요. 

가는 길에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갑자기 내가 기억나게 되면 꿈에라도 잠깐 들러줘요.

물론 우리 엄청 많이 어색하겠지만,

그냥.....마지막으로 한 번 보고싶어서요

할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시던 손자 꿈에 갔다가 

아주 잠깐 들러줘도 괜찮아요.

긴 여행이 될 텐데, 할머니는 슈퍼 할망구니까 

잘 갈 수 있을거에요.

이제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을게요.

그냥 할머니로 있어줘서 고마웠어요.

조심히...조심해서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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