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마약중독자를 사랑했었다. 1
게시물ID : humorbest_15355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비부위
추천 : 20
조회수 : 2796회
댓글수 : 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7/12/17 12:34:51
원본글 작성시간 : 2017/12/14 19:18:05
옵션
  • 본인삭제금지
4년전 결혼을 앞두고 집안에 큰 우환이 있었다. 
결혼 후에도 그 우환의 휴유증이 집안 곳곳에 드리웠고 결국 불안장애와 불면증 그리고 전환장애(심인성의 요인이 실제로 육체에 나타나는 것. 나의 경우엔 편마비로 스트래스가 컨트롤 되지 않는 경우 왼손에 마비가오고 힘이 빠졌다. 심한날은 왼발까지 힘이빠져 비틀거리며 걸었다.)를 얻었다. 그 우환이 무었인지는 너무 길어서 생략. 간단하게 말하면 우리집에 기생해살던 외가를 어머니가 선을 그어 쳐내는 과장에서 불미스런 일이 많았다. 사람의 바닥을 다 보았고, 머리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자립 자활의 의지없이 남에게 빌어살던 사람들은 지원이 끊기는 순간 짐승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여파는 어머니께 오래갔고 오래도록 식구들이 가슴아팠다.

 극심히 피곤한 상황에서도 72시간을 자지 못했다. 물론 10~15분정도 생존을 위한 쪽잠은 한두번 정도 잘 수 있었다.  병원을 찾아 처방받은 약은 졸피뎀이었고 그 졸피뎀 마저 어느 순간 듣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술과 졸피뎀을 먹는 일이 잦아졌고 심신이 피폐해진 나는 2년의 결혼생활에 실패했다. 

 지금도 전 부인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미안함이다. 그리움이나 애틋함이 아닌... 그리고 지금 와서는 그 때 그녀가 영악하게 혹은 조금만 더 속물적으로  처신해 내 곁에 남았다면 적지 않은 재산을 상속 받았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이혼하던날 서울 남부지법앞에서... 그 추웠던 그 날... 미안하다 행복해라 라고 말하고 당시 내가 챙겨줄 수 있는 모든 돈이었지만 2년간의 헌신과 고통을 보상하기엔 너무 작은 위자료 밖에 주지 못해 아팠다. 정말 좋은 사람 만나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혼후의 난 더욱 피폐해졌다. 더 많은 술을 마셨고 미래가 없는 것처럼 살았다. 인테리어 관련일을 하면서 때로는 현장 하나를 맡아 내장 전반을 모두 소화하거나, 일이 없는 날은 헬퍼로 다른 현장에 일당을 받으며 일했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어렵진 않았다. 품질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 수금을 잘 받는 부분은 있었다. 하지만, 노가다의 특성상 사람과 술자리는 빼놓을 수 없었다. 다 핑계지만 술자리가 잦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내가 술을 찾았다.

 점점 더 술에 의존하게 됐다. 그리고 밤마다 기억이 끊겼다. 졸피뎀과 함께 술을 마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술을 못이겨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일을 재껴버리는 날이 늘어갔다.  내 현장마저 그랬다. 그리고 어느새 버는 돈 보다 많은 돈을 술에 쓰고 있었다.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은 매일 들었다. 하지만 하루종일 집에서 자다가 동내 슈퍼에가면서 한 병만 마셔야지 라고 다짐해 놓고 한 병을 마시면 또 한 병만 더 마셔야지 라고 생각하며 술을 또 사고 밤중에 슈퍼를 수도 없이 들락거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참아왔던 아버지의 분노가 폭팔했다. 내 불면증과 전환장애의 기저원인이 결혼전 사건이라는 것을 알기에 미안한 맘으로, 결혼생활 실패에 일정부분의 책임이 있음을 알기에 인내하며 다시 재기하기를 바라던 부모님도... 이젠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어느날 술에취해  자고있는 나를 찾아와 엄청나게 화를 내시고 최근 2년간의 통장기록 사본을 요구하셨다. 거기에 술 값으로 지출된 항목을 일일이 읽으며 지적하셨고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집에서 마시는 날이 아니면, 비지니스바에서 양주 두세병 오픈하는 일은 일과로 살았으니 아주 큰 돈이라는 것만 말하겠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눈물로 금주를 호소하셨고 한 번 병원에 입원해 도움을 받아 보는 일은 어떤지 물어보셨다.  혼자 밥 먹는 일도, 1인 사업이다보니 때때로 내장 전반의 거의 모든 분야를 두루 살피는 동안 가끔 바쁘면 현장청소할 때 용역이니 불러 썼지 주로 파트별로 책임시공을 맡기는 동안 어울릴 동료조차 없던 외로움도 다 지쳤다. 말 그대로 너무 오래 혼자 걸러왔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리고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몸둥아리도  다스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병원행을 약속드린 뒤, 관련 병원을 검색했고 국립정신건강센터를 알게 됐다. 전화로 입원이나 상담에 관련한 문의를 했고 마침 다음날 오전 진료예약 중 한 자리가 특진으로 빈다는 답변을 받았다.  지방에 살고 있었지만 즉시 비행기표를 예약했고 바로 서울로 향했다. 티셔츠 몇 장과 속옷 몇 장만 챙긴체. 내가 없는동안 공무와 현장 마무리는 아버지께서 해주기로 하셨다. 그렇게 아침에 어리둥절한체로 혼이나다가 저녁에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결론적으론 다음날 오후 중독자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 나머진 내일 적어보련다.

- 정리가 필요해서 쓰는 글.  나의 글 맞음. 루리웹에도 올렸을 뿐.
출처 http://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35758556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