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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발전소 사고 피해자의 이야기 (끔찍함 주의)
게시물ID : humorbest_8808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프리핏
추천 : 109
조회수 : 7822회
댓글수 : 4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4/05/11 13:47:08
원본글 작성시간 : 2014/05/09 01:20:23


첨부파일 .Gothic Storm - Whisper Of Hope.swf





  어느날 밤 난 소음을 듣고 창 밖을 내다보았어요,


 남편이 나를 보며 “창문 닫고 다시 가서 자, 발전소에 불이 났어, 금방 돌아올게.” 라고 말했죠.


난 직접 폭발을 보진 못했어요, 그저 불꽃만 봤죠. 모든게 광적이었어요,


 하늘 가득 뻗은 불꽃. 연기.


 열기가 엄청 뜨거웠고,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아침 7시가 되어서야 남편이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서둘러 달려갔지만 이미 경찰이 입구에서 앰뷸런스를 제외한 아무것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어요. 


경찰들은 “구급차에 방사능이 있으니 물러서요!” 라고들 했죠.


난 의사 친구를 찾아 “안에 들여보내줘!” 라고 떼를 썼어요,


그 친구는 “안 돼. 그이는 심각해. 다들 지금 상태가 심각해.” 라고 했죠.


난 그녀의 팔에 매달리다시피 하며 “보기만 하게 해줘!” 라고 했어요.


“알았어.” 친구가 말했습니다. “15-20분 정도뿐이야.”


난 남편을 봤어요. 


온통 부풀어올라 눈을 겨우 알아볼 수 있었죠,



“네 남편은 우유가 필요해.” 친구가 귀띔해줬어요.


 “적어도 하루에 3리터는 마셔야 돼.”


“하지만 남편은 우유를 안 좋아하는데?”

“이제 마시게 될 거야.”





그 병원의 많은 의사와 간호사, 특히 청소부들이 그 이후에 아프더니 죽었어요.


물론 그 당시엔 몰랐죠.



















아침 10시에, 카메라맨 쉬스녹이 처음으로 죽었어요.


난 남편에게 “바셴카. 난 뭘 해야 하지?” 라고 물었어요.


그러자 남편은 “여기서 나가! 당장! 넌 우리 애를 가지고 있잖아."


나는 임신중이었지만. 어떻게 그를 버리고 갈 수 있겠어요?


남편과 다른 환자들은 우유를 마시자마자 끔찍하게 토해내곤 했죠.



수시로 기절했고. 정맥주사를 늘 꽂고 있었어요. 

의사들은 그들이 가스에 중독되었다고 했고. 


왜인지 누구도 방사능에 대해선 말해주지 않았어요.




















난 남편에게 달려가 키스했죠.


“내 사랑! 내 유일한 사랑!”


남편이 갑자기 으르렁거리며.


 “의사들이 뭐라고 했어? 날 안지 마, 키스도 하지 마!”


















대변이 하루에 25번에서 30번까지 나왔어요. 점액과 피가 섞인 대변이요.


팔다리 피부가 점점 부서지고 배게에서 머리를 돌리자 엄청난 양의 머리털이 배게에 묻어나왔죠,


누군가 말했던 게 기억나요.



“이해하세요. 이제 저 사람은 당신 남편이 아니에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방사능에 찌든 농도 짙은 독극물이라구요. 자살하고 싶으신건 아니죠? 정신 차리세요.”















어느날 밤, 다들 조용할 때였어요.


남편이 말했죠.



“우리 애가 너무 보고 싶어.”

“애 이름은 뭘로 지을까?”

“그건 네가 혼자 생각해봐.”

“왜 나 혼자야, 우리 둘이 지어야지.”


“그렇다면. 아들이면 바샤, 딸이면 나타샤로 지어.”





난 마치 장님처럼, 임신 6개월인데도 심장고동 소리 하나 느끼지 못했다는걸 몰랐죠.
















마지막 며칠동안 그의 간. 신장 등의 장기 조각이 입으로 나오고 있었어요. 


그는 그의 장기 때문에 질식했던 거에요.


 난 손을 붕대로 감싸고 그걸 다시 입 안으로 밀어넣어줬어요.





마지막에는 - 


“바셴카, 산책 좀 다녀올게. ”


남편은 눈을 깜빡거리는 걸로 날 보내주었죠.



호텔 방에 잠깐 앉아 있는데, 청소부가 문을 두드리며


“빨리 뛰어가봐요! 남편이 당신을 미친듯이 부르고 있어요!”


난 병원으로 달려갔죠.




“남편은 어때요?”

“15분 전에 죽었어요.”





난 내내 같이 있었는데. 고작 3시간 떨어져 있었는데.














공시소에서 남편이 묻힐 때 무슨 옷을 입겠는지 보고싶냐고 묻길래 봤죠.



그의 소방수 정복을 보았어요, 

그런데 몸이 부풀어올라 결국 신발은 신기지 못하고 맨발로 묻히게 되었어요.

정복도 가위로 잘라내야 했어요.


비상대책위가 와서는 말하기를




“여러분의 남편, 또는 자식의 시신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들은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어 모스크바의 공동묘지에 특별한 방식으로 묻히게 될 겁니다.


 밀봉된 아연 관에다가. 시멘트 층 아래에 묻히게 될 것입니다.”


















아이를 낳았어요.


딸이었어요.


 “나타셴카” 


내가 말했죠. 


“네 아빠가 너를 나타셴카라고 부르기로 했어.”



겉보기엔 건강해 보였죠. 


그런데. 아이는 간경변증이 있었어요.


간이 28 뢴트겐의 방사능을 흡수했던 거에요.


심장에도 문제가 있었죠.





아이를 낳은지 4시간만에 의사들이 애가 죽었다고 했어요.


 그리고 또다시.



“아이 시신을 드릴 수 없습니다.”



“드릴 수 없다는게 무슨 소리야! 내가 당신들에게 줄 수 없어야 하는 거라고!”






















이상은 루드밀랴 이그나톈코의 수기 중 일부.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당시에 

현장에 맨 처음 도착한 소방수 중 한명인 바실리 이그나톈코의 미망인이다.








바실리 이그나톈코를 비롯한 여러명의 소방수가 비슷한 방식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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