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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 (1-5)
게시물ID : lovestory_941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1
조회수 : 156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03/30 11:4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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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씨앗(5)



 어둠살이 제법 두터워지자 여운형은 한달음에 김인수에게로 향했다. 감시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다급해지고 있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황을 보면 왜놈들이 당장이라도 항복을 해버릴 지 몰랐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어긋날 수도 있었다. 그만큼 상황은 긴박했다.

 상해시절의 임정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는 김인수는 여운형과 임정 간의 연락을 도맡다시피 해왔고, 작년 그때의 좌우합작계획에도 관여했던 사람이었다. 김은 일체의 활동을 중단하고 은거하고 있었다. 

 “김동지, 다시 기회가 온 것 같소.”

 만면에 희색을 띤 여운형이 작년과 같은 계획을 설명해 나갔다. 잠자코 듣고 있던 김이 여운형의 말이 끝나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작년에도 느낀 것이지만 왜놈들이 이렇게 그악스럽게 설쳐대는데 선생님이나 임정에서 생각하시는 대로 잘되겠는지요?”

 “물론 조심은 해야 되지 않겠소. 작년에는 너무 서두른 감이 없지 않았소. 그리고 그때보다 왜놈들이 훨씬 더 다급해졌으니 상황도 더 유리해졌다고 볼 수 있소. 틈이란 이럴 때 생기는 게 아니겠소. 하늘도 우리를 도울 것이오.”

 “좌우파 사람들을 어우르는 데도 애로가 많을 것인데요. 노선 차이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고.....”

 “노선 차이야 뭐 그리 문제가 되겠소. 왕정복고주의자나 사대주의자가 아니면 좌파나 우파나 다 같은 민족주의자들 아니오. 자주독립을 원하는 운동가들은 모두 합작에 응할 것이오. 왜놈들 압제 하에서 민족보다 더 절실한 이념이 어디 있겠소.”

 “그렇게 되면 엄청나게 큰 조직이 될 텐데요. 규모가 방대한 조직을 드러나지 않게 하는 일도 쉽지는 않을 텐데 말입니다......”

“결속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쉽게 드러나지 않으리라고 믿소만...... 설사 드러나더라도 이제는 강행하는 것이 옳지 않겠소.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왜놈들의 패망을 맞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소.”

 둘은 작년 그때와 별다를 바 없는 말들을 주고 받았지만 여운형의 어조는 훨씬 더 단호해져 있었다.

 “저도 왜놈들이 곧 패망한다는 데에는 선생님과 생각이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또 합작을 시도하다가 왜놈들에게 부서지는 것보다 이대로 보전을 하고 있다가 왜놈들이 완전히 패망하면 그때 일거에 일어서자는 것이지요.”

 “김동지의 말에 일리가 있소. 그러나 문제는 연합국들이 우리나라의 신탁통치를 획책하고 있다는 점이오. 왜놈들이 항복할 때까지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의 주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오. 주장하는 것이야 우리 마음이지만 지금까지도 임정을 인정하지 않은 연합국들이 순순히 우리의 주장을 받아들여 줄 리가 없다는 게 문제라는 말이오. 그러니 부딪혀서 부서질 때 부서지더라도 싸워야 한다는 말이오. 싸워서, 이겨서, 우리도 전승국이 돼야 한다는 말이오."

 어금니를 지그시 깨문 김은 잠시 생각했다. 어차피 싸울 수밖에 없었다. 싸우지 않고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또 힘든 날들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국내에서의 무장투쟁이라...... 어쩌면 이번에는 진짜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몰랐다. 앞으로 전개될 상황은 투쟁이 아니라 전쟁이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

 “예. 잘 알겠습니다. 분골쇄신하겠습니다, 선생님.”

 “고맙소, 김동지! 지난번과 같이 가칭 ‘건국연맹’으로 하고, 이번에는 좌우 따질 것 없이 한꺼번에 합작을 시도해야겠소. 우파 사람들이야 마음만 먹으면 접촉이 가능한 것이고...... 조공 사람들하고는 선이 닿을 수 있겠소?”

“ 다들 워낙 깊숙이 숨어들어서요. 현재로서는 직접 선이 닿을 수 있는 사람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윤성보 동지와 인천에서 식량조합 일을 하는 김익태 동지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그 동지들은 아직도 일선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상태 그대로요?”

 “예. 현재로는 그렇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워낙 열성적으로 활동하던 동지들이니 토대가 달라지면 또 다르겠지요. 드물게이긴 하나 요즘도 조공 동지들이 가끔씩 윤동지의 주점에 걸음을 한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습니다.”

 “그것 잘 됐구려. 그러면 조공 쪽은 두 동지를 축으로 규합을 해보도록 하시오. 우파는 김경재 동지와 구본오 동지를 축으로 하는 것이 좋겠소. 그리고 아예 합작이 되지 않을 사람들과의 접촉은 시작하지 말았으면 좋겠소. 왕정복고주의자들과 위임통치를 주장하는 우낭 쪽 사람들 말이오. 그렇게 낭비할 시간이 없소. 임정에는 어차피 김동지가 한 번 가야 되겠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에 큰 힘이 돼 줄 동지가 또 한 사람 있소.”

 여운형이 임창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임창식은 무도인으로 도장을 차리고 후배들에게 각종 무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재작년, 여운형이 하야시 일당으로 짐작되는 대여섯 명의 왜인 무뢰배들에게 봉변을 가장한 테러를 당했던 적이 있었다. 모든 운동에 능하고 덩치에 걸맞게 완력도 보통이 넘는 여운형이었지만 나이도 있는데다 기습을 당하다시피 했던 터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 임이 우연히 그 광경을 보고 뛰어들어 그자들을 제압하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이미 그자들에게 몇 차례 제대로 가격을 당한 뒤라 굴신을 못하고 헐수할수없이 앉아서 바라본 그날의 활극은 탄성이 절로 나왔다. 임의 전광석화 같은 몸놀림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것은 담력이었다. 그자들이 그렇게 살기등등하게 설쳐대는데도 일말의 두려움도 없어 보였다. 나중에는 하나가 주머니에서 칼까지 꺼내 휘두르는데도 너무나 쉽게 제압을 해버리는 것이었다. 담력이 경지에 이른 사람 같았다. 여운형은 굴신을 못하게 아픈 것도 잊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꼭 필요한 사람을 얻었다는 생각이었다. 그 일로 둘은 아는 사이가 됐다. 임은 볼수록 듬직한 사나이였다. 점잖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고 했던가. 담력과 완력으로는 당할 사람이 없을 텐데도 조금도 표시를 내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깍듯하게 예의를 갖췄다. 독립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무장투쟁에 의한 독립을 표방했던 여운형에게 임은 너무나 귀한 존재였다. 어차피 전투는 몸으로 하는 것인지라 애초에 문약한 인사들에게 무기만 쥐어주면 전투를 수행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스스로 앞장서서 신체운동에 열심을 다하고, 자신이 사장으로 있는 ‘동양신보’를 통해 ‘체력은 자신감이다!’ 라는 구호 아래 인민들에게 체력을 기를 것을 장려하고, 운동선수들을 육성하고 격려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무장투쟁을 염두한 것이었다. 실제로 중국에서 다년간 한인혁명당이라는 무장단체를 조직하고 지휘한 경험이 있는 여운형이었다. 누구나 훈련을 시키면 가능할 수는 있겠으나 그럴 시간과 여건이 안 되는 것이 지금의 가장 큰 문제였다. 그렇다면 군인이 되는데 적합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의 현실에서 가장 적합한 사람들은 담력이 있는 운동하는 사람들과, 협객과 무뢰배들이었다. 운동선수들과 협객들이야 그대로도 훌륭한 군인이 될 것이고, 무뢰배는 순화시키면 되리라고 생각하는 여운형이었다. 해방이 돼도 군대는 있어야 되고, 치안도 필요할 것이 아닌가. 임과 같은 사람들이 군대도 이끌고, 치안도 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던 터였다. 그러나 때가 아닌 것 같아 거기에 대해서는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껏 독립운동에 관여한 적이 없는 사람이어서 더욱 좋았다. 무술도장 또한 아지트로 맞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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