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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관광 나들이
게시물ID : lovestory_952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천재영
추천 : 0
조회수 : 171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05/04 09:31:23

어르신 관광 나들이

 

농촌 산골 어르신들께서

일생 처음으로 나들이 여행을

궁금증 발동 요기는 조기는 어디

 

제 고장 들에서 평생 묻혀서

한평생을 황소처럼 일만 하면서

그렇게 살아오신 순박한 어르신들

 

산골 동네라는 우물 속에서

대도시라는 동네 밖의 세상으로

나들이 나와 보이는 것 모두 생소한

 

그래서 차창으로 보이는 것마다

하나하나 물어보고 고개 끄덕

또는 놀라움으로 크게 감탄

 

관광버스 가이드의 말에 귀는

쫑긋 쉬지 않고 눈은 차창 밖으로

하나도 놓치지 않을 듯한 어르신들

 

가이드가 계속해서 이어가며

곳곳 자세하게 안내 말씀 올리는

제가 아는 지식 모두 총동원하는듯

 

경상도는 예부터 산골이 많아서

참 가난했던 시절에는 초근목피로

간신히 연명했었다는 말이 전해지고

 

좀 더 깊이 산골로 들어가면 갈수록

높은 산 태백산맥에 쌓여 풀과 나무껍질

등으로 엮어 만든 집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한편 강원도는 산이 높아 약초를 캐고

또 바다에 의지하여 먹고사는 문제가

차이는 나도 그래도 좀 살만했다는

 

또 더러는 바다의 전혀 알 수 없는 날씨로

수시로 날마다 거친 파도 풍랑 이겨내며

목숨을 거는 듯한 고된 삶을 살았다는

 

그러나 대체로 날씨 따뜻하면서도

사시사철 먹을 것이 풍부한 평야

곡식 창고 옥토가 문전에 있었던

 

지리산의 풍부한 약초와 본바탕이

넉넉한 인심으로 넓은 들에서 생산한

알곡 생산 평야가 많아 지주들이 많았고

 

그래서 근대시대 당시 전국으로 볼 때는

호남평야를 소유한 알부자들이 참으로

많았다는 그런 말도 전해 온다고

 

기호지방 충청과 경기도는 한양 인접

지금의 서울 한양과 가까워서 벼슬아치들

흘리는 그 부스러기만 먹어도 살 수 있었다는

 

서울에서 내려온 양반이라는 벼슬아치들

그들은 남다른 권력도 있고 국가에서 나눠준

땅도 많아 먹고사는데 별문제 없었다는 그런 말도

 

그 당시 상황을 표현했던 말이

시골 선비들이 한양전 과천서부터

눈치로 슬금슬금 기었다는 말도 들려오는

 

말죽거리는 농촌에서 좀 산다는 이들

시골 선비나 지주들이 타고 온 말 또는

소달구지들 돌보는 일을 하며 먹고살았다는

 

예나 지금이나 가진 것 또는 힘이 있으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가진 것 없으면 남의 눈치 상황 살피고 살았던

 

세상 바뀐 지금 하루 생활권 아침은 광주에서

12첩 반상으로 먹고 점심은 자갈치에서 생선회

저녁은 서울 양식집에서 칼질하고 또 커피 마시는

 

옛날 어느 소설에서 난봉꾼이 혼인하여

한양 기와집에 가족을 만들어 두었는데

또 다른 어느 도시에 다른 가정 만들어

 

양쪽 집에서 따로 살림하고 살았다는

그런데 양쪽의 제 자식들이 공부 잘해서

서울 유명 대학 오며 두 집 살림 탄로 났다는

 

바람둥이 남편을 둔 양쪽 아내들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고 감당 못 해서

하는 수 없이 형님 동생 하면서 살았다는

 

그 옛날의 소설 속의 이야기지만

어른들 남긴 귀한 말씀을 빌리면

누구나 뿌리를 잘 놀려야 한다는

 

입속의 세 치 혀 말조심하라는 뿌리

어디든지 돌아다니는 두 발 그 뿌리

그리고 남정네들 상징이라는 그 뿌리

 

옛날 소설 속 이야기라면서 쉽게 처리해

행여 오늘날 같으면 절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하지만 요즈음도 그 뿌리 잘못 놀려 가정 망치는

 

모처럼의 시골 연식 든 어른들 관광 나들이에서

주고받는 이야기 젊은이들 깊이 생각하고 배웠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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