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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마흔에 어리석은 일기를 쓰고 이제 버리려고 왔습니다.
게시물ID : menbung_597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ICENTENNIAL
추천 : 3
조회수 : 532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3/02/19 22:2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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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23.02.19

 출근길 차안에서 마주하는 빨간 신호등마저 사무치는 아침이다. 보통은 아침부터 이리 마음이 아려오지는 않는데... 그래서 갑작스레 차를 세우고 글을 써본다.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눈에 시리다. 내가 원하는 것들은 무엇 하나 쉽게 허락되지 않는게 삶이라는 것을 절절하게 이해한다. 그래도 머리로 이해한다고 덜 아파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오랜만에 일기를 써본다. 갈무리되지 않는 감정에 아프다. 그래서 일기를 쓸 수 밖에 없다.

 그날 저녁 한잔의 술과 함께 전화를 하며 나누었던 대화는 마음 한켠에 아름다운 그림처럼 걸려있다. 일 이야기에 한장면, 지나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한장면, 가족이야기에 한장면, 그안에서 살고 있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에 한장면, 그리고 야구이야기에 또 한장면, 그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또 애절해지기까지 한다. 그저 참 좋았다... 아니 지금도 좋다.

 하지만 뭐라할까... 그저 허락되지는 않는다. 내 비루한 일상에 초대하는건 안된다 하는 마음에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다가도 불현듯 다가오는 사소한 욕심에 흔들린다. 일상은 사소하기 짝이 없고 그런 작은 나를 새삼스레 발견한다.

 작은 욕심이었지만 멀어지기만 하는듯한 너를 바라보며 궁금해한다. 내가 뭔가 잘못한게 있는걸까. 아니면 그저 내가 아니었을 뿐인걸까. 그것도 아니면 힘든 나날에 바보같은 이야기를 건넨 내가 차라리 미워졌을까. 자기 일상에만 집중해야 할 시기에 번거롭게 한걸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없이 많은 망상이 범람한다.

 그래도 괜찮다... 아니 괜찮아야 한다.

 그 저녁 불려간 자리에서 따스한 가족을 자랑하던 모습이 아른하다. 맛있는 음식솜씨에 우쭐한 어깨가 화사하다. 옆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말하는 중간중간 삐죽거리는 입매가 선명하다. 불판에 둘러앉아 나눈 이야기가 참으로 알록달록하다. 그 그림속에 주인공인 네가 있다. 그리도 멋진 그림을 보여주었으니 아쉬움보다 고마움을 가져야 할테다.

 그보다 앞선 다른날 저녁 함께한 술자리에서 본 자책과 원망에 울음을 참던 표정들이 다채롭다. 더 살아내기 위한 이유를 찾던 그 필사적인 표정이 마음한켠에 날카로이 새겨진다. 그렇게 창백한 뒷모습으로 서서 멀어지던 순간이 진하게 인쇄되어 마음한켠에 전시된다.

 고맙다. 10여년을 무채색으로 살아왔는데 여러 색들이 눈에 보이니 나에게도 이런 감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내를 아는 사람이 세상에 한명 생겼다. 내 심심한 삶에 몇장의 멋진 그림을 그려준 너에게 감사한다. 너는 내게 위로가 되어주어 고맙다고 했지만 사실은 내가 더 많은 것을 받았다.

 우리는 또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하지만 약속한대로 그저 아는 사람으로 있겠다. 멀리 서서 쳐다보지도 않도록 노력하겠다. 다시 충동적인 행동으로 부담주지 않겠다.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다가서지 않겠다. 그저 네가 충실한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응원하고 바라던대로 일적으로만 돕겠다. 어쩌면 내가 더 많이 배워야하지 않을까 싶지만 내가 아는건 많이 알려주고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에만 도움을 주겠다.

 나는 네가 평화롭기를 바란다. 마음의 평온을 되찾고 행복해지기를 기원한다. 억지로 짜내던 유쾌함이 진짜가 되기를 바란다. 부담없이 진짜 웃음을 지으며 의미있는 일상을 보내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거든 잔잔해지려 노력하는 물결위로 돌을 던지려했던 어설픈 나도 역시 용서받고싶다... 그런데 이건 지나친 욕심이겠지.

 너는 참 괜찮은 사람이다. 나쁜 사람은 자책하지 않는법이다. 너는 따뜻한 사람이다. 받은 사랑에 감사해하는 사람은 언제나 온기를 갖기 마련이다. 그러니 너는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이제 온전히 타인으로 서는 내가 이 말을 담보하겠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온전히 타인에 불과했을 나이지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너는 참 좋은 사람이다.

 이리도 어설픈 감수성에 온갖 감정이 파도친다. 하고싶은 이야기가 수없이 밀려들고 있다. 단어들이 범람한다. 최선을 다해 줄인 결과가 이모양이다. 이 어설픈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흘러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언제나 그랬듯 나는 또다시 무채색으로 돌아갈것이다. 

 짧은 시간이었고 너에게 나는 별 의미없는 사람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소망했던 사람과 어떤 의미에서의 작별을 할 시간이다. 다시 얼굴을 마주하고 다시 서로를 호칭하며 평범한 대화를 나누겠지만... 그래도 어떤 의미에서 작별인사를 건넨다. 반가웠고 고마웠다... 잘지내... 안녕... 그리고 내일부터 만나거든 평범한 타인을 만나 일상적으로 하는 인사를 나누자. 안녕하세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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