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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 시간 장의사의 실직
게시물ID : mystery_93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xlros0000
추천 : 4
조회수 : 172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0/09/01 18: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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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장의사는 매일 시간의 시체들을 모아 봉인한다. 사람들이 쓸때 없이 하루에 죽인 시간들을 모아 보관하는 게 그의 일이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생전에 죽인 시간들을 되돌려 준다. 그 시간 동안 그 사람은 유황불에서 벌을 받는다. 누구는 40년의 시간을 돌려 받기도 하고 누구는 10년의 시간을 돌려받기도 한다. 이승에서 허투로 시간을 쓴 만큼 저승에서 오랫동안 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시간 납골당이 지진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시간의 시체들을 모아둔 항아리가 깨지고 말았다. 봉인된 죽은 시간이 다시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죽은 시간들은 복수심에 불타 올랐다. 좀비처럼 이 세상을 배회하며 자신을 죽인 주인에게 찾아갔다.

"너의 살아있는 시간을 죽이려고 왔다." 

시간의 좀비들은 주인의 살아있는 시간을 죽였다. 그렇게 죽은 시간들은 또 다시 다른 살아있는 시간을 죽였고 그 죽은 시간은 또 살아있는 시간을 죽이며 시간의 좀비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세상을 덮어갔다. 그렇게 시간들이 마구 죽어가자 97살까지 살 수 있던 남자는 일주일만에 사망했다. 그의 살아있는 시간들이 모두 시간 좀비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점점 이 세상은 죽은 시간들이 지배하게 되었다. 시간 좀비 때문에 갓 태어난 아기는 태어나자 마자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세상은 점점 죽음의 시간들로 채워졌다. 세상은 사막처럼 삭막해졌다. 죽어버린 시간 때문에 이 세상은 그저 공간의 영역만 남았다. 낮과 밤이 사라지고 세상은 무(無)가 되었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이 세상에 사라지자 모든 시스템이 멈추고 먹통이 되었다. 이 세상에 더 이상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염라대왕은 시간 장의사에게 이 문제를 당장 해결할 방책을 내놓으라고 했다. 이승의 시간이 멈추니 더 이상 사람들이 죽지 않아 죽은 자의 공급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 장의사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염라대왕에게 방책을 내놓았다.

"죽어버린 시간을 다시 환생시켜야 합니다. 죽은 시간을 다시 살아있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염라대왕은 고심하다가 죽은 시간을 다시 환생시키도록 허가 했다. 죽은 시간들은 다시 살아났다. 세상은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다시 시스템이 돌아가기 시작하고 낮과 밤이 생기기 시작했다. 생명은 다시 태어났다. 모든 것이 제대로 흘러 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죽은 시간들을 모두 환생시키면서 살아 있는 시간의 양이 너무 많아 졌습니다. 이제 하루의 양이 24시간이 아니라 240시간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10배로 많아지면서 인간의 수명도 10배로 많아졌다. 80년 수명이 이제 800년이 되었다. 시간 인플레이션으로 시간의 가치가 하락했다. 시간의 가치가 하락한 만큼 사람들은 더욱 더 많은 시간을 죽였다. 이에 따라 시간 장의사의 할 일도 늘어났고 시간 납골당의 규모는 10배로 키워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10배로 납골당의 규모를 키우기에는 예산이 부족했다.

죽은 시간들은 납골당에 들어가지 못해 세상을 배회했다. 죽은 시간과 살아 있는 시간이 이 세상에 공존하면서 이 세상은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인 카오스가 펼쳐졌다. 잠 자고 일어나면 50년 뒤 미래로 훌쩍 뛰어넘고 다시 자고 일어나면 400년 전 과거로 돌아갔다. 모든 시간들이 혼재되면서 이제 죽은 시간과 살아있는 시간의 경계가 사라졌다. 시간의 경계가 무화되자 사람들은 이 무한한 시간의 루프 속에 갇혀서 영생을 살게 되었다. 

시간 장의사는 일자리를 잃었다. 죽은 시간과 산 시간의 경계가 없어지자 더 이상 시간의 시체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더 이상 죽지 않아 저승은 텅텅 비었다. 염라대왕도 실직했다. 더 이상의 저승은 없었다. 이승이 저승이고 저승이 이승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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