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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空의 기억 0-5
게시물ID : mystery_94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유율
추천 : 0
조회수 : 152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01/24 20:3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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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 공의 기억 표지-01.jpg

 

 

0.

 

아파트 놀이터 통미끄럼틀을 탔을 때였다. 분명 들어갈 때는 아파트 1동 놀이터였지만, 나와 보니 12동 놀이터였다. 지나치게 예민한 감수성의 아이였던 영후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에 납득 가능한 설명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안심할 수가 없었다.

이라는 위험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긋난 단추처럼 잘못 끼워진,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큰 소리로 우는 것 말고는 없었다.

 

동과 동 사이로 장난감 사이렌 같은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1.

 

조수석에서 잠들어 있던 영후를 깨운 것은 서하였다.

일어나요, 노땅. 맨날 졸고 있으면 일은 언제 해요.”

네가 이 나이 돼봐.”

겨우 육십 올라가면서 엄살은.”

육십 무시하냐?”

자료는 봤어요?”

서하는 일 얘기로 가볍게 무시했다.

외상은 없지만 즉사, 검은 고사리가 머리랑 가슴 쪽으로 파고들었겠네.”

괜히 늙은 건 아니네요.”

괜히 늙은 건 아니지.”

그런데 특이한 건, 살인 현장치고 너무 깨끗하다는 거예요.”

특이하지 않으면 π가 아니지.”

영후는 다시 조수석 등받이를 뒤로 눕혔다. 새벽 6시였다. 잠시 더 눈을 붙여도, 그다지 욕먹을 만한 시간은 결코 아니다. 이 나라, 이 직장은 그 기본적인 상식을 종종, 아니 항상 잊는 것 같았다. 늦잠이 시에스타처럼 나름의 문화로 이 도시에 자리 잡을 수 있다면, 범죄율은 적어도 20%는 줄어들 것이다. 느긋한 동네엔 소란이 없다. 소란을 일으키는 것은 이 도시의 속도이다.

 

애석하게도 수사 단짝인 서하에겐 쉼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향후 60년간은 없을 예정이었다. 시동을 걸었고, 엔진이 몸을 털었다. 브레이크가 풀린, 서하의 애마, 레시트가 터지는 샴페인처럼 시원하게 튀어나갔다. 한 성격하는 주인에, 한 성격하는 차였다.

탈것 공포증이 있는 영후에게 질주광인 서하의 운전은 롤러코스터와 다름없었다. 잠을 청하려던 영후는 두 손으로 얼굴을 누른 뒤에 일어났다. 오랜 동료가 오랜 동료를 깨우는 방식이었다.

 

2.

 

현장에 도착한 둘은 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해리 민의 집은 투 룸으로 특이하게도 거실에 책장 여러 개를 두어 도서관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원과 타원의 교차점’, ‘해일의 법칙등 과학서적으로 빼곡히 채워진 책장에선 빳빳한 종이 냄새와 꿉꿉한 곰팡이 냄새가 섞여났다. 거실부엌 왼편에는 깔끔하게 정리된 방이 있었다. 살인이 이루어진 장소였다.

 

청소 업체 부르고 간 거 아냐? 유튜브 봤을 땐, 완전 돼지우리더만.”

 

아마추어 과학자인 해리 민은 심야 과학실이란 채널을 운영하고 있었다. 책상에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현상을 연구한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그는 자신의 방에 도사리는 복잡계의 미스터리는 풀 생각이 없어보였다. 누가 방을 통째로 잡고 쉐이커처럼 흔들지 않는 이상, 유튜브 영상 배경으로 보이는 해리 민의 방보다 더 난장판이긴 어려울 것이다. 아니, 그렇게 흔들어도 이 방을 이기긴 어려울 것이었다.

그 방이 지금 깨끗했다.

영후의 말대로 어질러진 것을 죽어도 못 보는 사람이라면, 치워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통은 자신이 죽일 상대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지는 않는다.

 

정리된 물품에선 모두 해리 민의 지문만 나왔어요. 팔을 자른 것도 아니니 진짜로 해리 민이 옮긴 건 맞을 거예요.”

결계라도 치려고 한 거 아냐, 보니까 말은 과학자라 하지만 그냥 오컬트 마니아더만.”

따지고 보면, 우리가 하는 일이 제일 오컬트일 걸요.”

그렇지만 우린 상대적으로 이론적이야.”

수업 땐 맨날 지성보단 요령이랬으면서.”

그건 그거고.”

 

서랍과 옷장, 침대 밑 책 사이사이를 살폈지만,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것들이 죄다 옷장과 서랍에 넣어 깔끔히 치웠다는 것 말고는 특별히 보이는 건 없었다. 감식반 보고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작부터 제로였다.

 

3.

 

둘은 다시 차로 돌아와 해리 민의 사망 전에 올린 마지막 유튜브를 보았다. 주파수를 모방한 듯한 신시사이저 소리의 시그널이 지나가고, 해리 민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해리 민입니다. 오늘도 심야 과학관의 밤이 깊었습니다. 신비로운 과학의 마법에 빠질 준비가 되셨는지요.”

싸구려 오프닝멘트에 진지한 목소리였다. 은근히 채널 컨셉이랑 통하는 면이 있었다.

물과 식물이 모든 것을 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있을 겁니다.”

사이비 과학으로 끝장난 지 오래된 미신이다.

모두 애석하게도 설득력이 없는 주장들이었지요.

그러나 빛이 나선다면 어떨까요?”

해리 민은 진지하게 헛소리를 이어나갔다. 영후와 서하는 헛소리에 시간을 착취당하고 있는 자신들이 가여웠다.

 

잠깐.”

서하가 하품을 크게 하고 있을 때, 영후가 재생바를 맨 앞으로 당겼다.

오프닝 시그널이랑, 엔딩 시그널이 같아.”

맞췄나보죠.”

그런데 달라, 들어봐,”

다시 엔딩 시그널을 듣고 오프닝 시그널을 들었다.

엔딩 시그널에서 혀 빠르게 스르륵 날름거리는 소리 들려?”

서하가 눈을 흘겼다. 무슨 이런 변태 영감탱이가 어디있냐하고.

뭐야, 그 눈은. 잘 들어봐,”

둘은 다시 들었다. 이제 서하에게도 들렸다.

백마스킹이야.”

아이돌 노래 거꾸로 돌리면 이상한 가사 나오는 거요?”

그건 그냥 역재생 낚시고. 백마스킹은 일부러 담는 거야. 이거 거꾸로 돌릴 수 있어?”

아마, 앱 찾아보면 나올 거예요.”

스토어를 검색하니, 바로 편집기가 나왔다. 이 시대에 앱은 현대의 마법이었다. 그들은 영상을 역재생시켰다. 그러자 속삭이는 듯한 쇳소리가 들렸다.

 

, 소녀, 위험, 발견 시, 회수,’

 

, , , 영후는 곰곰이 생각했다.

다시 올라가보자.”

 

마지막 영상을 올리고 난지 두 시간 만에 살해당했고, 한 시간 뒤에 발견되었어. 깔끔하게 정리된 물건들은 감식반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어.”

그럼 죽을 줄 알고, 일부러 정리를 했다. 뭔가를 가리려고.”

무슨 생각이 났는지 서하가 옷장을 열고 물건을 하나씩 조심히 내렸다.

뭐 하는 거야? 너 미쳤어. 현장보존 해야지.”

그것 때문에 못 본 게 있다면서요!”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노련한 수사관을 믿는 거예요.”

너 이러다 진짜 잘린다.”

그러나 대화하는 동안 서하는 물건을 모두 꺼내 내려놓았다. 물건을 비운 옷장 안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었다. 그냥 옷 볼 때 쓰려고 붙인 건가. 해결점이 드러나길 기대했던 서하는 실망했다.

꽝이네요, 이건 비밀로 해주세요.”

꽝 아냐.”

영후가 거울 가까이 갔다. 유심히 거울을 살피던 영후는 상이 살짝 떠있는 것이 보였다. 테두리를 살며시 잡아보니, 거울 앞에 반투명한 거울이 덧씌워져 있었다.

거울 뚜껑이에요?”

아니, 문이야.”

무슨 소리예요?”

빛이 나선다면 보일 거야.”

영후는 플래시를 켠 폰을 반투명 거울과 거울 사이에 두었다. 그러자 양 거울에 수없이 반사된 불빛이 끝없이 이어진 길처럼 나타났다. 인테리어 DIY 툴킷으로 만들기도 하는 무한 거울이었다.

문이 열렸어. 홀이야.”

그럼 들어가죠.”

홀 건이면, 본부에 연락하고 우린 대기하면 돼.”

소녀가 위험하다는데 어떻게 가만히 기다려요. 연락은 연락이고, 수사는 수사대로!”

 

가르칠 때부터, 성질 하나 제대로 급한 녀석이었다. 그리고 제대로 골치 아픈 녀석이었다. ‘절차보다 사람이 먼저다.’라고 영후 스스로도 늘 말해왔지만, 홀 사건이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수사권을 남용하면, 절차끼리 마찰을 빚는다.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을 마찰을. 하지만 잃어봤자 퇴직금을 날리는 것일 테다. 애 하나 살리는 일이라면, 그 정도면 양호한 거래다. 물론 앞으로 한참은 더 굴러야할 서하는 큰 떡을 삼키겠지만.

 

지 팔자, 지가 알아서 하겠지.

 

너 구멍 넘어가본 적 있어?”

아뇨.”

이거 겁나 무서워.”

오십이 년 만에 들어가 보는 홀이다. 어릴 때 트라우마는, 나이가 들수록 진해진다. 영후는 눈을 감고 성호를 그렸다. 둘은 옷장에 함께 들어갔다. 두 사람에게 딱 맞는 크기였다.

그럼 닫을게요,”

감은 눈으로 보이던 어둠이 더 어두워졌다.

 

4.

 

다시 문을 열었을 때는 콘크리트 먼지가 뿌옇게 방 안을 메우고 있었다. 오래된 집이라도 콘크리트가 공중에 날아다니지는 않는다. 지금 집을 부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서하가 캑캑거렸고, 영후 역시 기침을 두어 번 했다. 연기가 조금 가라앉자, 반쯤 헐린 벽이 보였다. 그리고 영후는 아직 벽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왼쪽!”

 

영후가 서하를 잡고 왼쪽으로 뛰었고, 철거용 쇠공이 벽을 뚫고 들어왔다, 남아있던 밑단도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공포에 정신이 깬 둘은 당장 집을 빠져나왔다.

 

얼빠진 얼굴로 건물에서 뛰어나온 영후와 서하를 본 크레인 기사가 크게 소리쳤다.

거기서 뭐해요!”

영후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여긴 어디에요?”

서하가 크게 되물었다.

크레인 기사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철거지 주택에서 튀어나온 잔류 주민들이 여기가 어디냐고 묻다니.

어서 나가요!”

옆에 있던 십장도 그들을 발견하고 공사판 밖으로 둘을 끌고 나갔다.

아니, 이야기 끝난 지가 언젠데 언제 들어가셔서 이러세요. 진짜.”

공사장 바깥 가림막에는 새롭게 거듭날 양정동의 중심 나르디스!’라고 크게 적혀있었다. 양정동이면 끝에서 끝으로 온 것이다. 영후는 그다지 멀리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홀의 끝에는 반드시 우주가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구멍 잘못 뚫린 거 아냐, 이런데 애가 왜 있어.”

잘못 온 거 아니에요.”

서하의 손엔 쪽지가 들려있었다.

양정동 271-31, 여기로 가야해요.”

그건 어디서 났어?”

옷장 안에 떨어져 있었어요.”

그새 챙겼냐? 너도 참 대단하다.”

영후는 기가 찬 감탄을 뱉었다. 성실한 파트너는 성실한 게으름뱅이를 힘들게 한다. 이 녀석이랑 같이 다니면, 은퇴 직전까지 잠복 수사라도 할 판이었다. 호랑이 자식을 길렀어. 미운 호랑 것. 영후는 서하가 말한 주소를 지도앱에다 찍어보려다, 폰을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좋은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날이었다.

, 다시 공사장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

대신 지도를 찾아본 서하가 폰을 보여주며 말했다. 공사장 한복판이었다.

생각해봐, 서하야. 여기 집들은 다 낡았고, 한쪽에선 철거용 굴삭기가 건물을 내리쳐대고 있어. 어떤 건물이 흔들리다 폭삭 무너져도 안 이상해. 그런데 저 중앙으로 들어가자고?”

다행히 그쪽은 아직 철거 안 했어요. 부수는 쪽이랑 거리도 멀고요. 문제는 어디로, 어떻게 들어가냐인데. 흐음.”

사람 말은 또 오지게 안 들어. 영후는 포기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

달동네라 고지로 가면 판 좀 낮은데 나오지 않을까요?”

너 맘대로 해. 가자, .”

 

5.

 

추측은 맞았고, 두꺼운 담을 타넘어 다시 공사판 안으로 들어왔다. 이곳은 아직 마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람이 모두 빠진 건물들은 전쟁에 버려진 건물처럼 보였다. 콘크리트도 쓸쓸한 표정을 짓는 것 같았다. 이렇게 갈면 여기 있던 사람들 다 어디 가서 살라고. 영후는 좌파적인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면 왼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정치적 신념이라곤 전단지보다 얄팍한 사람이지만.

 

찾았다! 여기에요. 영감님.”

서하가 멈춘 곳에는 오래된 교회가 보였다. 지어진 지 30년은 넘어보였다. 입구에는 흰 판에다 초록 글씨로 소망교회라고 크게 쓰여 있었다. 낡았지만 은근한 품위가 느껴졌다. 건물은 나이가 들수록 멋있어진단 말이야. 영후는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본당 앞에는 미처 챙기지 못한 분홍색 현금 봉투 뭉치와 주보가 남겨져 있었다. ‘선한 사람은 왜 고난을 받는가.’ 그 주의 말씀제목이었다. 성당에서도 자주 듣던 주제였다. 답은 보다 굳건히 단련시키기 위해서였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신의 친절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단단해져야 신은 만족할까. 영후는 고개를 저었다.

 

서하는 본당 문을 살며시 열었다.

계세요?”

조용했다. 따라 들어온 영후는 긴 교회 의자에 놓인 다 해진 성경책을 집어 들었다. 둘러보니 성경책이 제법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나가면서 신앙도 다 버리고 갔나. 허리를 숙여 다른 책을 주우려 할 때, 서하가 소리쳤다.

 

아이한테서 물러서.”

무릎을 굽히고 의자 사이 틈으로 단을 보았다. 장신의 사내가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어린 여자 아이 곁에 서있었다. 그의 손에는 칼이 들려있었다.

사내는 팔로 아이의 어깨를 감쌌다.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해리 민의 동료인가?

경찰이다. 칼 버려.”

서하는 총으로 사내를 겨누었다.

경찰? 해리 씨가 죽었구나. 그는 속으로 애도했다. 사내는 아이를 한 손으로 끌어안고, 다른 손으론 칼을 단단히 쥐었다. 시선의 실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칼날은 금방이라도 여린 살집을 베어낼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사내는 뒤꿈치에 힘을 주었다. 그때 머리 뒤에 차가운 금속이 대어졌다.

 

아이한테서 손을 떼게나

영후가 말했다. 서하가 시선을 끌고. 영후가 다가간다. 익숙한 플레이였다.

안타깝지만, 이 아이는 미륵이 아닙니다.”

무슨 소리야.”

그러나 그건 서하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소녀는 필요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나타난 파란 셔츠의 남자가 달려들었고 사내는 아이의 머리를 눕혔다. 영후는 본능적으로 뛰어오는 파란 셔츠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남자는 멈춰 섰다.

균형이 새롭게 짜여졌다. 서하가 사내를 겨누고, 영후가 파란 셔츠를 겨누었다. 뒤섞인 판이 적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서하와 영후는 처음부터 시작점을 놓치고 있었다.

순간 사내가 아이를 바닥에 눕혔다. 그걸 본 파란 셔츠는 다시 앞으로 달려들었다. 영후는 발을 노리고 두 발을 쏘았지만 맞추진 못했다. 서하는 칼을 든 사내를 쏘고 싶었지만, 영후가 너무 가까이 있었다. 사내가 아이의 목을 내리치려는 순간, 파란 셔츠가 맨손으로 칼을 잡았다. 손바닥이 반으로 잘렸지만, 비명하나 지르지 않았다. 그리고 천이 풀렸다.

 

소녀의 얼굴엔

눈이 있어야 할 자리는 뻥 뚫려 있었고,

두 눈에는 서로 다른 우주가 느리게 돌고 있었다.

 

사내는 재빨리 칼을 빼어 다시 쳐내려고 했지만, 뒤틀려진 공간을 바로 잡을 순 없었다.

 

도망쳐!”

 

영후가 서하에게 외친 후 몸으로 아이를 감싸 안았다. 그러자 영후의 등에 커다란 금이 생기면서 빛이 터져 나왔다. 가시처럼 날카로운 빛이었다. 가까운 곳에 있던 두 남자의 몸엔 무수한 칼집이 났고, 하얀 세계가 방을 메웠다.

 

그것이 서하가 기억해낼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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