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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 슈퍼마켓에 얽힌 미스터리 1
게시물ID : mystery_94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남극곰316
추천 : 1
조회수 : 113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11/21 13: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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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말부터 역병이 돌아서, 멀쩡히 장사를 하던 가게들도 견디지 못하고 하나 둘 문을 닫았다. 책을 읽어봐도 전 세계적으로 역병이 돈 적이 있었다는 얘긴 없었으니, 와도 정말 큰 것이 온 것이다. 그런 걸 전대미문이라 한다. 나도 역병은 처음이라서, 그럴 땐 가게 문을 닫는 게 맞는 건지 가게 문을 여는 게 맞는 건진 모르겠다.

   닫혔던 국경이 부분적으로 다시 열리던 작년 초, 꽤 히트를 친 피자 연쇄점 Manoosh Pizza(마눗시 피자) 옆에 중국 슈퍼마켓이 생겼다.
   동네 쇼핑센터에서 원래부터 중국 여자가 조그맣게 운영하는 중국 슈퍼마켓이 하나 있었으니까 중국 슈퍼마켓이 또 생겼다고 하면 그건 이상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중심가라고 해봐야 우리 집이 있는 길을 따라 남북 방향으로 가게들이 좀 있고 2층짜리 쇼핑센터 하나가 있는 정도다.
   우리 동네는 시드니 안에서도 종합대학과 종합병원이 있는 이름난 해변가의 백인동네였다. 그러면서도 전문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대부분이란 센서스 통계 결과를 몇 년 전에 본 기억이 난다. 돈 많은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기보다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란 뜻 같아서 좋았다.
   동양인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인디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타이랜드, 베트남 사람들이 더러는 있는데, 주민은 아니고 근처 종합병원이나 상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거나 역시 근처에서 대학을 다니는 중국 유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Asian Grocery coming soon (아시안 잡화점이 곧 열립니다)
   길 건너에 붙은 포스터 광고를 처음 봤을 땐, 우리 동네에 중국 슈퍼마켓이 두 개나 필요하던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아시안 잡화점이라고 했지 중국 슈퍼마켓이라 하지 않았다.

   Kikki’s I Love Food: Oriental Supermarket
   2021년 2월 29일 우리 동네에 아시안 잡화점이 문을 열었다.
   중국 슈퍼가 됐든, 아시안 슈퍼가 됐든, 아님 오리엔탈 슈퍼가 됐든 하여튼 변할 수 없는 사실 이란 게 있는 건데, 잡화점은 처음부터 뭔가 달랐다.
   아시아 태평양 상회(亚太超级商场), 박리 상점(薄利超级商店) 같은 좋은 가게 이름도 많은데 억지스럽게도 키키네, 난 음식을 사랑해요(Kikki’s I Love Food)라고 이름을 지은 것부터가 그랬다.
   10 am to 8 pm 
   두서없는 영업시간 좀 봐라. 머리랑 꼬리가 짤리는 것 보다 더 불길할 게 없는데 말이다. 동양인의 정서라면 9am to 9pm에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내장은 분홍색 페인트칠을 했다. 알고 보면 분홍과 하늘색이 테마다.
   사업자 등록증도 걸어놨다. 키키의 아이 러브 푸드니까 젊은 주인 여자는 이름이 키키일텐데, 등록증에 쓰여있는 대로라면 키키의 본명은 탕핑펭이었다. 성 빼고 이름이 핑펭인지 탕핑이 이름인지 알 수가 없다.
   너무 친절한 탕핑펭도 문제였다.
   분홍색 폴로셔츠에 하늘색 앞치마를 찬 탕핑펭은 중국 슈퍼 여주인들처럼 마스크를 쓰지도 않았고 잔 돈을 집어던지지도 않았으며 유창하고 명랑한 영어로 인사를 꼭 챙겼다.  
   “Hi, how are you today? Anything else? Thanks for shopping here today. Have a good rest of the day. (하이, 안녕하세요! 또 뭐 다른 거 필요하신 게 있으신가요?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보통의 중국 슈퍼마켓이라면 진열대와 진열대 사이에서 엉덩이를 빼고 몸을 숙여 맨 아랫 칸의 물건을 집을 수가 없다. 뒤에 있는 선반에 엉덩이가 닿아 그렇다. 웅크리고 앉아 마른국수 한 단을 빼는 게 뭐 그리 어색한 일도 아니잖는가. 그런 건 문제도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댓 평이나 될까 한 작은 가게에 굳이 슈퍼마켓을 차린 것도 이상했지만, 키키는 상식적인 진열방법을 따르지도 않았다.
   천장이 내려앉을 새라 라면박스며 잡동사니들을 높이 쌓는 진열방법이 아닌 스타일을 내세웠다. 깔끔하고 정갈하며 쾌적한 쇼핑공간 말이다.
   내가 참견 할 일은 아니지만, 게으른 건지 사업에 대한 안목이 없는 건지 일본, 중국, 타이완, 말레이시아, 타이랜드, 베트남, 인도네시아의 온갖 군것질거리, 한국의 쫀득이 같은 거 말이다, 키키네 아이러브 푸드는 오리엔탈 잡동사니로 채워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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