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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설] 아버지는 사이비 교주 (1)
게시물ID : panic_1032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최평화
추천 : 2
조회수 : 392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11/02 08:5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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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시판에 올리긴 하지만, 

1도 안 무서운 창작 소설입니다. 

장르를 굳이 따지자면 미스테리 정도 되지 않을까 하네요.

그럼 시작합니다.



.

.

.

 


 

아버지는 사이비 교주 (1)



“뭐라고?!”

박 부장의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순간 움찔 했지만 나도 물러설 생각은 없다.

나는 박 부장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방금 한 말을 또박또박 반복했다.

“열흘짜리 연차 낸다고 했습니다.”

“김영식! 너 제정신이야? 다음주에 태선실업 계약 갱신 조율 들어가는 거 몰라?”

“뭐, 저보다 훌륭한 최 대리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 이건 내가 속이 좁은 게 맞다.

어제 퇴근 길에 생산팀 종수를 만났다.

사장실 비서와 사귀고 있는 종수는 우리들 사이에서 회사 소식통으로 통한다.

그리고 종수에게 들은 이야기.

이번 3분기 실적 발표 때 내년 진급자 공고도 함께 나오는데, 영업팀 과장 진급자는 내가 아닌 최두석 대리가 될 거라고.

내 입에서 최 대리라는 말이 나오자 박 부장 표정이 굳어졌다.

젠장…… 종수 말이 사실이구나.

박 부장이 인사총무팀에 보낸 진급 심사자 명단에, 내가 아닌 두석이 형 이름이 올라간 게 맞다는 뜻이다.

두석이 형은 나보다 나이만 두 살 많다 뿐이지, 회사 짬밥은 내가 무려 3년 반이 더 많다.

그리고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영업팀에서 나보다 실적 좋은 사람은 없다.

당연히 내가 진급 심사에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쳇, 김칫국을 거하게 마신 셈이다.

특히 과장급부터는 영업 인센티브 계산이 바뀌기 때문에, 연말에 들어오는 성과금이 정말 쏠쏠한데… 하아—!

아무튼 종수에게 이야기를 듣고, 오늘 출근하자마자 남은 연차를 몽땅 신청한 것이었다.

내가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는지, 박 부장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래, 한 2주 푹 쉬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그런데 한가지 조건이 있어.”

박 부장은 가늘게 뜬 두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휴가 끝나면 회사로 돌아 와. 딴 생각하지 말고.”

“그건 쉬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목례를 하고 박 부장의 파티션을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영식아.”

고개를 돌려 박 부장을 바라보자 그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휴게실로 가자. 같이 커피 한잔 하게.”



휴게실.
나에게 미리 알려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박 부장이었다.

박 부장은 종이컵에 남은 커피를 입안에 털어 넣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석이 와이프… 둘째 임신했다더라……. 그런데 쌍둥이래.”

“…!”

“나도 알아, 네가 먼저 과장 달아야 하는 거. 영업부 에이스잖아. 그래서 두석이 이름 올릴 때 나도 고민 많이 했다. 정말 미안한데, 이번만 네가 이해해 줘라. 대신 내년에 시작하는 중국 수출 건, 그거 너에게 맡길 게.”

나는 박 부장의 시선을 피했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너 휴가 끝나고 출근 안하면, 내가 추노하러 갈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박 부장이 휴게실에서 나가자,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오고 말았다.

“후우우우—!”

차라리 두석이 형과 사이라도 나빴으면, 그냥 이대로 회사를 때쳐 치워도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을 텐데… 젠장….

빈 종이컵을 우그러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띠리리리리—!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 발신인을 확인하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영식아, 너 지금 통화 가능하니?

휴대폰 너머 누나의 목소리는 꽤 상기되어 있었다.

“왜, 무슨 일인데?”

나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누나의 목소리가 확 낮아졌다.

-아… 바쁘면… 이따 이야기하고….

“아니야, 안 바뻐. 말해.”

흡—! 하는 심호흡 소리와 함께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어디서 계신지 알아냈어….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누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영식아…… 너 듣고 있니?

“듣고 있어. 그런데 그건…….”

그건 알아내서 뭐하려고? 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나야 아버지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지만 누나는 아니다.

누나는 아버지에게 많이 서운해 하고 있거든.

아니다, 서운함이라는 단어로는 충분치 않구나.

원망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할 것이다.

나는 닫았던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데?”

-석륜도에 있는 사랑기도원이라고…….

기도원?

아버지와 기도원… 전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우리를 키우는 동안 아버지가 성당이나 교회에 나간 적이 있었나?

아니, 아버지가 종교라는 걸 믿기나 했었나?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사이, 전화기에서 누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석륜도가 인천항에서 배타고 3시간 반 정도 들어가야—

누나의 말을 잘랐다.

“아니 됐고, 기도원에서 아버지가 뭘 하고 있는데?”

-아, 그게… 그러니까……. 그게 말이야…….

“뭔데?”

나의 짜증 섞인 재촉에 누나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이비 종교… 교주를 하고 계신가 봐…. 지난주 목요일…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뇌정지가 왔다고 해야 하나…

입력된 정보를 뇌가 거부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나의 뇌는 누나가 한 말 중에 ‘지난주 목요일’이라는 정보만 받아들인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낮은 목소리로 내뱉듯 말했다.

“지난주 목요일이면… 억수같이 비가 쏟아진 날인데…….”

-……맞아… 비 많이 왔어…… 그날 밤에….

머리가 다시 서서히 돌아가는 느낌과 함께 나는 입을 열었다.

“검찰이면… 매형이 알려준 거야?”

-응….

“아버지는? 그럼 지금 구치소에 있고?”

-아니, 그건 아니야. 그날 조사 받고 바로 불기소인지… 무혐의인지… 나왔대.

누나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로 조사를 받은 건데?”

-……사이비… 교주라서…?

누나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박혀 있는데, 사이비 교주라는 죄가 있을리 없잖아.”

-아… 그러니? 그건 안 물어봐서…. 그런데…… 영식아… 나 부탁 하나만 하자….

누나가 무슨 부탁을 하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왜? 나 보고 아버지 만나라고?”

-응… 나는 지금도 손이 다 떨려서… 네가 먼저 만나보는 게 어떨가 해서….

나는 아버지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다.

정말이다. 정말로 별다른 감정이 없다.

보고 싶다거나 애틋한 감정도 없고.

그래도 아버지에게 몇가지 묻고 싶은 건 있다.

뭐… 대답을 안 들어도 상관없는 뻔한 질문들인데…… 정말이다.

예컨데 왜 그렇게 갑자기 사라졌느냐와 같은 질문들 말이다.

8년 전… 아버지는 나의 군 입대와 동시에 사라졌었다.

나야 군생활 하느라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했지만, 대학 졸업과 함께 취업을 앞두고 있던 누나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았어. 아버지 연락처는?”

-그게… 아버지 전화번호가 없어…. 네 매형도 겨우 기도원 주소만 알아낸 거래.

* * *

그날 나는 퇴근하자마자 매형이 근무하고 있는 인천지검으로 향했다.

신기시장 내 삼겹살 집.

나는 지글거리는 두툼한 삼겹살을 뒤집으며 물었다.

“류 검사 담당 사건도 아닌데, 아버지는 어떻게 알아 본 거예요?”

매형은 인천지검 수사관이고, 류 검사는 매형이 함께 일하는 검사다.

그리고 매형은 아버지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아… 사진으로 봤으려나…?

나의 물음에 매형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입을 열었다.

“어휴—! 지난주 형사과에 소문이 자자했어.”

“소문이요?”

“응.”

매형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형사 2과에 강철혁 검사라고 있어. 조사실 들어가면 아주 피도 눈물도 없는 걸로 유명하거든.”

나는 삼겹살을 자르기 위해 가위를 집으며 말했다.

“강철혁, 이름부터 강력하네요.”

“그 양반은 눈빛부터가 달라. 뭐랄까… 살기 같은 게 느껴진달까? 복도에서 지나가다 눈 마주치면 자동으로 시선을 피한다니까.”

“그럼… 그 강철혁이라는 검사가 담당했던 사건이 바로 그 성추행 사건인가요?”

아버지가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이유는 성추행 혐의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기도원에서 여성 신도 한 명이 아버지가 자신을 추행했다는 신고를 했다고 한다.

다행히 혐의 없음으로 결론났지만 말이다.

매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삼겹살과 마늘 조각을 올린 상추쌈을 입에 넣었고, 나는 가위로 익은 고기를 자르며 말했다.

“그래서 아까 말한 소문은 뭐에요?”

입 안의 내용물을 삼킨 매형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다시 확인하며 말했다.

“강 검사가 아버님을 심문하다가… 갑자기 울면서 조사실에서 뛰쳐 나갔대. 그때 기록 담당한 직원 말로는… 조사실 안에서 통곡 소리가 나서, 강 검사가 또 피의자를 잡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강 검사 울음 소리였다고 그러더라구.”

매형의 말에 내 손에 들린 가위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럼… 아버지가… 그 강 검사라는 사람을 울렸다고요?”

“아마… 그랬겠지? 조사실에 아버님이랑 강 검사, 두 사람만 있었다고 하니까.”

“헐…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그건 강 검사 말고는 모르지, 뭐.”

매형은 소주병을 들어 자신의 잔을 채우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강 검사 있잖아… 지난주에 그 일 있고 사람이 좀 변했어.”

매형은 소주 잔을 집어 나를 향해 내밀었고, 나 역시 잔을 들어 매형 잔에 살짝 부딪치며 말했다.

“사람이 변하다니요?”

매형은 자신의 잔을 비우고는 입을 열었다.

“강 검사가 창원지검에서 여기로 올라온 게… 코로나 터지기 한참 전이니까… 벌써 4년 전이야. 그런데 강 검사 웃는 거, 나 이번주에 처음 봤어. 그것도 두 번씩이나.”

솔직히 강 검사라는 사람이 변했고 말고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나는 소주병을 들어 매형의 빈 잔을 채우며 말했다.

“그런데 누나가 말한 기도원 주소는요?”

“아, 맞다. 그게 있었지.”

매형은 자켓 안 주머니에서 반으로 접은 종이 쪽지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쪽지를 받아 펼치자……

응? 기도원 주소가 아니다.

‘하은경’, 이렇게 이름 석 자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고개를 들어 매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기도원 주소가 아니네요?”

“주소를 알아도 못 들어간대. 출석요구서가 반송되어서, 거기 파출소 통해서 직접 전달하느라 애 먹었다고 하더라.”

“아… 그럼 여기… 하은경? 이 사람은 누구예요?”

“그 기도원에 다니는 사람. 경찰 쪽 수사관 말로는 사랑기도원에 가고 싶으면, 그 사람 통하는 게 빠를 거래. 그리고… 아버님 무혐의 결과 나오는데, 그 사람 증언이 꽤 중요했던 모양이야.”

“아… 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매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나한테 연락처 받은 거… 조심해야 하는 거 알지?”

이 여성에게 연락할 때, 검찰 직원을 통해 받은 연락처라는 사실을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나는 왼손을 들어 입에 지퍼를 채우는 제스처를 하며 말했다.

“그럼요. 걱정마세요. 아버지 찾는 거 도와줘서 고마워요.”

나의 말에 매형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마눌님 지시사항인데, 당연히 해야지. 그런데 처남… 아버님 이야기 나온 김에 뭐 하나만 물어보자.”

“네, 말씀하세요.”

“영미 있잖아…….”

누나를 말하는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매형은 조심스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결혼식에서 그렇게 울었던 거… 혹시 아버님 때문이야?”

“아… 그건 누나한테 직접 물어보시죠.”

“영미 앞에서 아버님은 거의 금기어나 다름 없어서, 차마 묻지를 못하겠어서.”

금기어… 매형 말이 맞다.

나 역시 누나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함부로 꺼내지 못하니까.

“글쎄요…. 결혼식에서 신부가 많이들 울지 않나요?”

“그래도 영미는 그때 좀 심했잖아.”

이것도 매형 말이 맞다.

본식이 시작하자마자 흐느끼기 시작한 누나는 피로연과 폐백이 다 끝날 때까지… 마치 두 눈에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듯 쉬지 않고 눈물을 흘렸었다.

오죽했으면 예식 업체에서 특수 세탁을 해야 한다면 드레스 세탁비를 따로 청구했을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때 누나가 그렇게 서럽게 울은 게… 아버지 때문은 아닌 거 같아요.”

“그래? 왜?”

“누나가 아버지 이야기하는 거 싫어하는 거, 결혼하기 전부터 그랬어요. 10년 전 아버지 사라지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쭉이요. 그런 사람이 갑자기 결혼식에서 아버지 생각이 난다고 울 리가 없잖아요.”

* * *

다음날.

매형에게 받은 쪽지의 여성에게 전화를 했고, 사랑기도원에 가고 싶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며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약속 장소에 2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평일 저녁 서울에 나오면 늘 이런 식이다.

20분 일찍 도착하거나,

아니면 20분 늦게 도착하거나.

나는 카페 안으로 들어가 음료수를 주문하고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에는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플라타너스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다.

고개를 들자 하늘을 덮고 있는 가로수에 가을색이 완연하다.

이제 가을이 끝나면, 곧 어머니 기일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중학교 2학년, 누나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내가 아버지를 처음 만난 곳이 바로 어머니의 장례식장이었다.

아버지가 처음 집을 나갔던 건… 누나의 첫돌 즈음이라고 했으니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이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나뿐 만이 아니라 누나 역시 아버지를 알아 보지 못했었다.

우리에게 아버지는 피만 섞였다 뿐이지 남이나 다름 없는 존재였으니까.

그래서 가만히 그때를 돌이켜 보면…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별다른 거부감 없이 아버지와 한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할 따름이다.

인간 관계에 비교적 무덤덤한 나는 그렇다고 해도… 예민함 끝판왕을 찍고 있던 여고생 누나가 아버지와 무난하게 지냈던 건, 아무리 생각해도 미스테리에 가깝다.

“김영식 씨?”

나는 창밖에서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반가워요. 하은경이에요.”

상대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나는 엉겁결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 안녕하세요….”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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