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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설] 아버지는 사이비 교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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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최평화
추천 : 2
조회수 : 354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11/19 0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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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사이비 교주 (2)



그렇게 짧은 인사를 나눈 후, 궁금한 마음에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저를 어떻게 알아본 건가요?”

카페 내부에는 나 말고도 혼자 자리를 지키는 남성이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물음에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내가 촉이 좀 좋은 편이에요. 이시목청 같은 사람이죠.”

뭐? 이시목… 뭐라고…?

무슨 말인지 물으려는데 상대는 입가에 웃음기를 지우며 말을 이었다.

“선생님 기도를 받고 싶다고요?”

아버지를 말하는 거다.

참고로 나는 이 하은경이라는 여성에게 사랑기도원 원장이 내 아버지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네… 선생님을 꼭 만나고 싶어서요.”

“무례한 질문이 아니라면, 무슨 일로 선생님 기도를 받고 싶은 건지 물어도 될까요?”

나는 매형이 알려준 대로 답했다.

“아까 전화로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요즘 많이 힘들어서…….”

에휴… 진짜… 영업할 때도 그렇고… 거짓말 하는 건 정말이지 나랑 체질적으로 맞지가 않다.

테이블 너머 상대는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마치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흠—! 힘들다는 사람 치고, 얼굴에 그늘이 있어 보이지는 않은데요?”

사랑기도원을 알고 있는 게 마치 벼슬이라도 되는 듯한 태도.

이게 오늘 오전에 통화할 때부터 은근히 불쾌하다.

기분 같아서는 솔직하게 말하고 도와주기 싫으면 관두라고 말해버리고 싶지만…… 누나를 봐서라도 조금 더 참아 보기로 했다.

나는 시미치를 뚝 떼고 입을 열었다.

“제가 그렇게 보이나요? 큼—! 내가 요즘 얼마나 힘든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다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쩌죠?”

말을 하며 살짝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는데… 상대 역시 쉽게 물러설 생각은 아닌 듯하다.

“기도원에 오시는 분들 보면… 뭐랄까… 벼랑 끝에 몰린 게 느껴지는데, 영식 씨는 그런 게 없어 보여서요.”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사랑기도원을 찾는다는 말.

어제 매형도 같은 이야기를 했었다.

이거 갈수록 궁금해진다.

아버지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려고 자식들까지 버리고 외딴 섬에 숨어 들어간 것인지… 그것도 사이비 종교 교주라는 손가락질까지 감수하면서 말이다.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실 어제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왔어요.”

이제서야 상대의 얼굴에서 의심하는 표정이 살짝 걷힌다.

그래… 뭐,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니까.

나는 다시 한번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이었다.

“회사에서는 다시 생각해 보라고 휴가까지 줬는데… 이거 도저히 회사에 복귀할 엄두가 나지 않네요.”

상대는 진지한 표정으로 테이블 앞쪽으로 살짝 상체를 기울이며 말했다.

“미안한데 혹시… 무슨 일인지 물어도 될까요?”

“사람 때문이죠, 뭐.”

잠시 나를 바라보던 상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름이… 김영식이라고 그랬죠?”

“네….”

나의 대답에 그녀는 두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영식 씨, 나이가 어떻게 돼요?”

“서른 하나에요.”

“서른 하나면……93년생? 닭띠?”

“네….”

나의 대답에 그녀는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럼… 내가 인생 선배로서 조언 하나만 해줄까?”

뭐? 이거 조금 당황스럽네….

말을 놓은 건 그렇다고 해도, 지금 만난지 몇 분이나 지났다고 나에게 조언을 해주겠다고?

하지만 그녀 입가에 걸린 은근한 미소 때문인지… 아니면 눈빛에서 느껴지는 묘한 매력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버지에 대한 궁금한 마음 때문인지…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부탁한다는 말까지 함께 말이다. 허… 김영식, 이 비굴한 새끼.

“영식 씨 회사에 나가는 거, 무슨 대단한 자아 실현 같은 거 하는 게 아니라, 돈 벌러 가는 거잖아. 안 그래?”

“……뭐… 그렇죠.”

“그럼 돈 버는 곳에서 사람 때문에 상처 받지 마.”

“아… 네…….”

썩어들어가는 나의 표정 때문인지 상대는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선생님처럼 상처를 치유해주는 그런 대단한 사람은 아닌데… 나 예전 생각이 나서 해준 말이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이만큼 참았으면 충분하다는 생각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런데 기도원에는 언제 쯤 갈 수 있을까요?”

그녀는 이제서야 생각이 났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사랑기도원…….”

어제 매형이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사랑기도원에 처음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곳을 잘 알고 있는 신도와 함께 가야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5년 전부터 매년 2-3번씩 사랑기도원을 방문하고 있다는 상대방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까 전화 통화로 조만간 기도원에 갈 거라고 하셨잖아요?”

나의 물음에 그녀는 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고, 잠시 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번주는 내가 어렵고… 다음주 수요일 어때? 그날부터 내가 오프 신청을 낼 수 있거든.”

“다음주 수요일 괜찮아요. 정말 고마워요.”

고맙다는 말과 함께 꾸벅 고개를 숙이자, 상대는 손을 내저었다.

“고맙긴… 나도 어차피 선생님께 기도 받으러 가는 건데, 뭐.”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죠.”

“그런데 기도원에 외부인이 머물 수 있는 방이 세 개 밖에 없어. 그래서 방이 모두 차있으면 선생님 못 만나고 돌아와야 해.”

“아, 그런가요? 혹시 그런 건 전화로 미리 확인할 수는 없나요?”

나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좋은데, 기도원에 전화가 없어.”

하긴 매형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나는 다음주 수요일 인천항 연안여객 터미널에서 은경과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수요일.
석륜도에 도착해 배에서 내렸을 때, 시각은 이미 오후 4시 30분을 넘어 있었다.

인천항 터미널에서 은경의 갑작스런 복통으로 오전 첫 배를 놓친 탓이다.

“바로 기도원에 가는 거 아니었나요?”

나의 말에 은경은 두 눈을 찡긋하며 입을 열었다.

“조금 이르긴 한데 저녁부터 먹고 가자. 기도원에 들어가면 앞으로 나흘 동안 고기 구경은 못할 테니까.”

사랑기도원은 수요일과 토요일, 일주일에 두 번 신도를 받으며, 한번 기도원에 들어가면 3박 4일을 지낸다.

배를 타고 오면서 기도원 생활에 대해 은경에게 들은 이야기다.

물론 원한다면 중간에 기도원에서 나와도 되지만 지금까지 그런 사람은 없었다고.

“방이 셋 밖에 없다면서요?”

인천항으로 돌아가는 오늘 마지막 배는 5시 30분에 출발한다.

즉 기도원에 남은 방이 없다면, 한 시간 안에 이곳 선착장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뜻이다.

나의 걱정과는 달리 은경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마. 토요일에는 종종 방이 다 차는데, 수요일은 평일이라 오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야. 그리고 방이 하나만 남았으면 내가 양보할게.”

그리고 그녀는 선착장 맞은편 <식사/민박>이라고 적힌 입간판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집 수육이 꽤 먹을 만해. 가자.”

* * *

저녁 식사를 마친 시각은… 마지막 배가 떠나는 5시 30분을 훌쩍 넘은 6시 10분이었다.

은경은 자신이 계산을 하겠다며 카운터로 향했다.

“사장님, 여기 얼만가요?”

“8만 5천원이요.”

주문할 때 차림표에 가격이 없어서 설마 했는데, 이거 완전 바가지다.

하지만 은경은 전혀 당황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며 말했다.

“그럼 사장님, 9만원 드릴테니까 우리 삼곡초등학교까지 좀 태워주세요.”

“지금이요?”

“네.”

“지금은 영업 중이라 좀 그런데…….”

은경은 난처한 표정을 짓는 식당 사장을 향해 두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에이, 지금 손님도 없잖아요. 차로 가면 5분도 안 걸리는 지척인데, 좀 부탁드려요. 대신 계산은 현금으로 드릴게요.”

식당 사장은 은경이 내민 돈을 받으며 말했다.

“뭐, 그럼 그럽시다.”

식당 사장이 외투와 자동차 키를 챙기는 사이, 은경이 그를 향해 말했다.

“아까 배에서 보니까 섬에 들어오는 사람이 꽤 많던데, 오늘 민박집 방은 다 나갔겠네요?”

“에이, 방이 다 나가긴. 여름 피서철이나 되어야지 민박 장사가 되지, 요즘은 안 그래요.”

“아… 그렇군요….”

식당 사장은 자신의 자동차 키를 슬쩍 들어보이며 말했다.

“그럼 지금 갑시다.”



삼곡 초등학교.
작은 폐교였다.

학교 건물을 개조해 1층에는 아버지와 기도원 관리인이 살고 있고, 2층은 방문자용 숙소와 기도실로 사용한다고 한다.

은경과 나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 건물 문 앞에 섰다.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되냐… 참…….

흐읍—!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낡은 철제 문을 두드렸다.

-탕, 탕—!

“계십니까.”

잠시 기다렸지만 대답이 없다.

1층 커튼 사이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어서 안에 사람이 있는 건 확실하다.

-탕, 탕, 탕—!

이번에는 목에 힘을 주고 외치 듯 말했다.

“계십니까! 안에 아무도 없나요!”

잠시 후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문을 열었는데, 문득 낯이 익다는 느낌이 든다.

어디서 봤더라…?

“누구시죠?”

남성의 물음에 은경이 먼저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집사님, 저 은경이에요, 하은경.”

남성은 이제서야 은경을 알아본 듯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고… 은경 씨. 이거 어두워서 못 알아봤어요. 미안해요.”

“에이, 괜찮아요.”

두 눈을 찡긋한 은경은 한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쪽은 김영식 씨라고, 선생님 기도 받으면 좋을 것 같아서 함께 왔어요.”

은경의 말에 남성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당분간 선생님께서 기도를 못 하십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자세한 사정은 이야기하기 어려운데, 아무튼 당분간 기도 손님은 받지 않습니다.”

“혹시 선생님 조사 받으신 것 때문인가요?”

2주 전 성추행 혐의로 인천지검에서 조사 받은 걸 말하는 거다.

은경의 물음에 남성의 미간이 좁아졌다.

“네… 그날부터 선생님께서 독감으로 일주일 내내 고생하다 이제 겨우 회복하시는 중이거든요.”

“독감…이요?”

남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날 조사 받고 인천에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때 비를 많이 맞으셨어요.”

“아… 그렇구나… 어쩔 수 없죠. 그럼 선생님께 몸조리 잘하시라고—”

“아니, 잠깐만요.”

은경의 말을 자른 사람은 나였다.

나는 은경을 향해 미간을 좁혔다.

아니, 뭐라고? 어쩔 수가 없어?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남성을 향해 말했다.

“보통 3박 4일 머문다고 그러던데, 저희는 딱 하룻밤만이라도 좋으니, 선생님을 꼭 만나고 싶습니다.”

남성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어렵습니다.”

내가 지금 여기까지 어떻게 해서 온 건데, 그냥 돌아설 수는 없는 노릇.

“저 선생님 한번 만나려고 지난주부터 수소문하고 준비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선생님 건강 문제 때문에… 정말 미안하네요.”

미안하다고 말하는 남성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단호했다.

이거 어쩌지…?

기도원 원장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그과 동시에 은경을 향해 슬쩍 고개를 돌렸는데… 그녀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를 속여왔다는 사실을 밝힌다고 생각하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 젠장…….

그렇게 잠시 고민하는 사이, 은경이 끼어들어 남성에게 말했다.

“집사님, 정말 어떻게 안 될까요? 이렇게 부탁드려요.”

하지만 남성은 짧은 고민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 건강 문제도 있지만, 사실 검찰에서 조사 받으시고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 하세요. 그러니 오늘은 그만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정말이지 나는 이대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나는 남성을 향해 따지듯 말했다.

“기도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건 누구 결정인가요? 선생님 결정인가요?”

남성은 미간을 찡그리며 나를 응시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선생님 결정입니다.”

“그럼 제 이름을 선생님께 전해주실 수 있나요? 선생님과 딱 10분만 이야기하고 싶다고요.”

남성은 난감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고, 나 역시 물러설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제 이름, 김영식입니다. 선생님께 꼭 전해주세요. 그래도 선생님이 거절하신다면, 두말 않고 돌아가겠습니다.”

“하… 그럼 선생님께 한 번 여쭤보죠.”

남성이 몸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사이, 나는 은경을 향해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이름까지 말했는데, 아버지가 거절할 리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돌아온 남성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고, 은경과 나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선착장 앞 식당.
식당 주인이 부른 민박비는 방 하나당 하룻밤에 15만원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민박비를 지불하고 방으로 들어와 가장 먼저 샤워부터 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는데… 몸을 뒤척이자 침대 아래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올라온다.

15만원짜리 숙소의 침대 수준이라니… 참나….

원래는 25만원인데 비수기라 15만원만 받겠다며, 마치 큰 인심 쓰는 듯 말하던 식당 주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데 식당 주인에 대한 얄미움보다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이 앞섰다.

무려 11년만에 아들이 아버지를 수소문해 이곳까지 찾아 왔는데, 이런 식으로 문전박대를 하다니…….

긴 한숨을 내뱉는 사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문을 열자, 두툼한 패딩을 입은 은경이 봉투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심심하지? 우리 같이 맥주나 한잔 하게.”

미안하지만 지금은 술 마실 기분이 아니다.

그냥 쉬고 싶다는 말을 하려 했지만… 은경은 이미 신발까지 벗고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 뭐야? 나도 똑같이 15만원 냈는데, 이 방이 왜 더 좋은 건데? 침대도 훨씬 널찍하고.”

은경은 봉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입고 있던 검정색 패딩을 벗었는데…… 어우야… 무슨 옷을 저렇게 입고 온 거야…?

이거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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