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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설] 아버지는 사이비 교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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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최평화
추천 : 1
조회수 : 440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12/17 0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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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사이비 교주 (4)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 사서함으로—.

전화를 끊고 주위를 다시 둘러 보았지만…… 잠깐 비를 피할 곳이 없다.

젠장….

석륜도를 다녀 온 사이, 원룸 건물의 입구 비밀번호가 바뀐 것이다.

며칠 전 건물 관리인에게 택배가 분실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는데, 그것 때문인 듯하다.

나는 건물 관리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 진짜 이거… 죽겠네….”

인천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탈진 상태였다.

뱃멀미가 이렇게 무서운 건지 오늘 처음 알았다.

점심으로 먹었던 내용물은 물론이고, 나중에는 노란색 담즙까지 게워내서 더이상 뱃속에서 나올 것이 없는데도 쉬지 않고 헛구역질을 하며 멀미를 했으니까.

그래서 인천항에 도착해 서울로 향하는 은경을 보내고, 1분이라도 빨리 쉬고 싶은 마음에 바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온 것이었다.

그런데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니… 젠장!

이 뿐만이 아니다.

택시에서 내렸을 때부터 빗방울이 굵어지고 있다.

머리는 이미 한참 전에 다 젖었고, 목덜미를 타고 외투 안쪽으로 빗물이 스미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건 방금 깨달은 사실인데, 이 근처 비를 피할 곳이 없다.

포치라고 그러나? 그 건물 입구 위에 볼록 튀어나와 하늘을 가려주는 작은 지붕 같은 거, 그게 없다.

내가 사는 원룸 건물은 물론이고, 양옆 건물들 모두 포치가 없다.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비를 맞고 있을 수도 없고, 이거 어디서 비를 피한다…?

이 몰골을 하고 식당이나 카페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생각이 난 곳은 버스 정류장 앞 편의점이었다.

출퇴근 때마다 매일 들르는 곳인데, 그곳 사장님과 알바와 안면을 텄거든.

거기서 잠깐 음료수라도 마시면서 비를 피하기로 했다.

그런데 외투는 물론이고 안쪽 상의까지 이미 반쯤 젖은 상태.

몸이 으슬거리기 시작했는데, 건물 관리인과 연락만 닿으면 집에 들어가 뜨뜻한 물로 씻을 수 있다.

그래서 옷이 젖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서 편의점까지 뛸 기운도 없었고.

그렇게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편의점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말 그대로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 있었다.

-딸랑—!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카운터에 사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평일 저녁이면 알바가 있어야 하는 시간이다.

사장님이면 살짝 부담스러운데….

아니나 다를까 사장님은 약간 오버한 목소리로 나를 맞았다.

“어이쿠! 영식 씨!”

“사장님, 안녕하세요.”

“이게 무슨 일이야?”

“지금 건물 입구에 비번이 바껴서… 집에 못 들어가고 있어요.”

말을 하는 사이 외투를 따라 물이 뚝뚝 흘러 내린다.

아, 밖에서 좀 털어내고 들어올 걸.

나는 시선을 옮겨 젖은 바닥을 확인하며 말했다.

“죄송해요. 이건 제가 닦을게요. 마포대 있는 곳이 어딘가요?”

“아유—!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매장 청소하는 게 내가 하는 일이야. 그런데 마포대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여기 또 있네? 허허허.”

마포대.

어릴 때부터 집에서 쓰던 말인데, 종종 밀대 또는 대걸레, 이렇게 말해야 알아듣는 사람도 있으니까.

나는 온장고 안의 캔커피 두 개를 집어 카운터 위에 내려놓았다.

“그 말 쓰는 사람이 저 말고 또 있나 봐요?”

사장님은 음료수의 바코드를 찍으며 말했다.

“응. 언제더라? 한… 보름 쯤 됐나? 아무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었어.”

“네….”

“중절모를 쓴 손님이었는데, 그 손님도 지금 김 대리처럼 아주 온몸이 흠뻑 젖어서 들어와서는, 바닥에 떨어진 물을 닦겠다고 마대포를 찾더라구. 허허—!”

사장님의 말에 대충 대꾸를 하며 카드 단말기에 신용카드를 꽂는 순간,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물에 젖어 뻑뻑해진 바지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건물 관리인이다.

* * *

다음날.

“영식아, 정신이 좀 드니?”

누나의 목소리에 눈을 뜨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지끈거리는 두통에 두 눈을 찡그리고 말았다.

“어으— 그런데 누나가… 여기는… 왜 왔어…?”

“네가 연락했잖아. 기억 안 나? 아까 문까지 열어줘 놓고는….”

“아… 맞다….”

그게 꿈이 아니었구나.

“너 지금 열이 40도야. 구급차 불러야 할 것 같은데?”

열 때문인지… 두통 때문인지… 누나가 한 말이 머릿속에 둥둥 울리는 느낌이다.

나는 짧은 숨을 몰아 쉬며 말했다.

“구급차는 무슨…….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 질 거야….”

누나가 뭐라고 대꾸를 했지만, 나는 기절하듯 다시 잠이 들었고, 그렇게 서너 번… 아니, 그것보다는 많이 잠들고 깨고를 반복한 것 같다.



열이 38도 아래로 떨어진 건 하루가 더 지난 일요일 늦은 오전이 되어서였다.

침대에서 내려와 이틀 전 편의점에서 샀던 캔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삑삑삑, 삑삑삑삑—!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며 누나가 들어왔다.

“어? 일어났구나? 좀 어때?”

원룸으로 들어오는 누나의 손에는 포장 죽이 들려있다.

“이제 괜찮아. 전화하지 뭐하러 또 왔어?”

누나는 대답 대신 식탁 위에 포장 죽을 내려 놓았고, 식탁 한쪽에 있던 약 봉투를 확인하며 말했다.

“뭐야? 약 하나도 안 먹었네?”

“아, 그거…… 빈속에 약 먹기 좀 그래서….”

누나는 냄비를 뚜껑을 열며 말했다.

“어휴—! 여기 죽 해놓았다고 그랬잖아!”

“그건 방금 먹으려고 했는데… 미안… 하하—!”



잠시 후.

나는 포장 죽을 열어 식사를 시작했고, 누나는 식탁 맞은편에 앉아 나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석륜도에서…… 만났니? 아버지?”

나는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저었고, 누나 역시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도원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가 나와 만나는 걸 거절했고 말하려다 생각을 바꿨다.

“……다음달에 한번 더 가 보려고.”

“아니야… 그러지 마….”

나는 고개를 들어 누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너 거기 보내고… 이런 생각이 들더라…….”

“무슨 생각?”

“아버지가 인천까지 오셔서… 우리한테 연락을 안 했으면… 아마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게 아버지 뜻이라면, 우리가 아버지를 찾아가지 않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더라….”

누나의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사실… 나 기도원 입구에서 퇴짜 맞았어.”

놀란 듯 누나의 두 눈이 커졌고,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거기 기도원 집사를 만났어. 그 사람 통해서 내 이름을 전했는데… 아버지가… 그냥 돌아가라고… 그랬대.”

누나는 말없이 눈을 감았고, 한참이 지나서야 눈을 뜨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랬구나…….”

나는 남은 죽을 다시 먹기 시작했고, 누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게 식사를 마쳤을 때, 나는 포장 용기를 정리하며 누나에게 말했다.

“누가 그러는데, 내가 다 가진 사람이라더라.”

나의 말에 누나는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다 가진 사람? 네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누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누가 그러는데?”

“있어, 그런 사람.”

누나는 두 눈을 얇게 뜨고 나를 응시했다.

“혹시, 여자?”

나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표정으로 양쪽 어깨를 으쓱해 보였고, 누나는 원룸을 쓰윽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런 곳에 반전세 살고 있는 네가 다 가진 사람이라고?”

누나의 말이 조금 불쾌하게 들리긴 하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돈 말고 다른 거.”

나의 대답에 누나는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다른 거, 뭐?”

나는 누나를 향해 씨익 웃음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어릴 때 듬뿍 사랑받고 자란 사람들만 가지고 있는 특유의 정서적 부유함이 나한테 느껴진데.”

“푸흡—! 정서적 부유함? 너한테? 푸흐흐—! 흐흐—! 아흐흐흐흐—!”

이거 참… 기분이 좀 그렇다.

아버지 이야기로 누나가 다운돼 보여서 웃으라고 꺼낸 이야기가 맞기는 한데, 이거 너무 찐으로 웃는다.

“에휴—! 그래, 마음껏 웃어라.”

은경이 그렇게 말했을 때, 나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웃던 누나가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며 입을 열었다.

“너 그 여자 조심해. 그런 멘트 치는 거, 너한테 뭔가 빼먹으려고 수작부리는 거야. 알겠어?”

누나의 말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내가 영업만 8년이야. 설마 영업용 멘트랑, 진심으로 하는 말이랑 구별 못할까 봐?”

그런데 석륜도에서 은경이 그 말을 했을 때, 그녀는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아무튼 그 여자 조심해. 정서적 부유함? 이런 말 하는 것 자체가 딱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거야, 얘.”

사기꾼 운운하는 말보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누나의 오만한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해.”

“어머어머, 얘 봐.”

누나는 딱—! 하고 두 손바닥을 부딪히며 말을 이었다.

“벌써 그 여자한테 홀랑 넘어갔구나! 뭐? 정서적으로 부유해? 허! 김영식, 정신 차려. 너는 내가 아는데, 어릴 때부터 여자 보는 눈이 진짜 없었어. 대학생 때 만나던… 걔, 누구야? 이름이 은화였나? 걔가 너 브레드 피트 닮았다는 말에 홀랑 넘어가가지고—”

나는 꽥—! 하는 소리와 함께 누나의 말을 잘랐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자기가 어머니 노릇 하려고 하는 거, 그걸 내가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가끔 선을 넘을 때가 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누나의 외투를 집어 누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나 씻고 쉬어야 하니까, 이제 좀 가라.”

누나는 외투를 입으면서도 말을 쉬지 않았다.

“야, 김영식, 듬뿍! 사랑받고 자랐다는 말이 그렇게 달콤하디?”

“어휴—! 그런 거 아니야. 빨리 좀 가.”

“우리 홀어머니, 홀아버지 밑에서 컸어. 그렇게 듬뿍! 사랑받고 자랄 만큼 우리집 상황이 여유로웠던 것도 아니고. 생각을 해 봐. 그때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하—! 진짜. 브라더, 제발 좀 가주세요! 쫌!”

나는 떠밀다시피 누나를 내보냈고, 원룸 밖으로 나가는 순간까지 누나는 입을 다물지 않았다.

“너 아주 눈에 벌써 콩깍지가 씌었구나. 야, 김영식! 정말 정신 좀 차려.”

“알았으니까, 좀 가라고.”

“야! 너 곧 어머니 기일인 거 알지?”

“알아, 알았으니까! 가라구!”

-철컹—!

그렇게 누나를 쫓아내고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다 씻고 나왔을 때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가 하나 찍혀 있었다.

은경이다.

곧바로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마도 일부러 받지 않는 게 아닐까?

방금 화장실에서 나올 때 살짝 벨소리를 들었거든.

부재중 전화 기록을 확인했는데…… 역시나 1분 전에 찍힌 거다.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고 잠시 후 수신음과 함께 은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누나, 저 영식이에요.”

한 템포 쉬고 대답이 돌아온다.

-……알아.

건조한 목소리.

이제 알 것 같다. 이게 은경의 화난 목소리라는 거.

“누나, 미안해요.”

-뭐가?

“우리 토요일에 같이 영화 보러가기로 한 거요….”

-아, 내가 그런 약속을 했었나?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좀 아팠어요.”

-…….

휴대폰 너머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나는 말을 이었다.

“석륜도에서 돌아와서 몸살에 걸려서 어제는 거의 기절해서 누워 있었어요.”

아! 하는 탄식음과 함께 은경이 말했다.

-너 지금은 어때? 좀 괜찮니? 약은 먹었어?

은경의 목소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방금 먹었어요. 열이 좀 있긴 한데, 누나 괜찮으면 오늘이라도 같이 영화 보러 갈래요?”

-아픈데 영화는 무슨. 나중에 보면 되지.

“나는 정말 괜찮은데….”

-괜찮아. 그리고… 너 자취한다고 그랬지?

“네….”

-내가 먹을 거 좀 사서 너한테 갈게.

“여기로요?”

-응, 지금 갈게.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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